6. 문학의 윤리- 타자를 향하여
정치가 인간 개인끼리 ‘소통’하는 것이라면, 문학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평등을 강조한다. 랑시에르가 볼 때,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형이상학”에 내재한 정치(politics)이다. 이런 정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간 개인의 평등 문제를 분자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가난한 자나 노동자가 요구하는 평등보다 더 심오하고 진실한 존재론적 평등이 여기에 있다. 눈에 보이는 가식 너머에서 우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랑시에르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개념인 공감(compassion)과 연결시킨다.
다만 역사적 폭력을 서사화한 소설적 재현에서 “누구의 기억과 감정을 들을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정동의 이행 속에서 확인할 것인지 구별해야 하”며, “피해자, 희생자의 고통이 어떻게 전염, 접속, 공유하며 고통의 연대를 이루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좀더 섬세한 말의 배치 속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경청해야 옳다. 아울러 <소년이 온다>에서 ‘우리들 곁에 타자가 있다’는 것과 같은 주제 인식은 조금은 위험해 보인다는 것. 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타자’는 누구인지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가능하기 위해 각각의 존재가 고통의 담지자로 등장해서 집합되는 ‘우/리’를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지 역시 이 글에서 텍스트를 비교·분석하면서 좀더 주의를 기울여 마땅한 지점이라고 본다.
이 글에서 분석하고 있는, 국가폭력을 경험한 소설의 인물(들)은 80년대와 광주를 넘어 제주 4·3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난징학살, 히로시마 원폭, 문화대혁명, 일본군 위안부 등 희생자들에게 공감과 연대의 정서를 갖는다. 그러나 그렇게 모두를 ‘우리’로 묶어놓으면 같은 작가들의 텍스트는 물론 비교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의 텍스트(들)과의 차이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1980년 5·18을 서사화했던 작가들의 최근의 소설에서 1980년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을 넘어선, 외연의 확장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텍스트를 분석한 남다른 의의가 없지 않다.
우선적으로는, 역사적 폭력을 서사화한 문학은 ‘고통’의 기록이자 ‘고통하는’ 장치라는 것, 고통은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의 양태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 감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공통성을 발견한 기제이기도 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이 글은 분석 텍스트들에서 ‘고통받는/고통하는’ 사이에서 동요하면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그 차이를 분별했다는 점이다. 한편 공통적으로는 5·18 ‘이후’ 문학의 책임 윤리가 자기 고통을 넘어서서 타인의 고통으로 나아가는 윤리적 에토스, 곧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고 증언하고 연대하는 데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