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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issa Aug 10. 2023

꿈의 기회비용을 계산하는 법

Always chase your dreams


며칠 전 정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을 읽고 집을 한번 뒤집었다. 처음 제네바 왔을 때는 얼마나 있을지 몰라서 최소한의 짐, 러기지 2개로 왔는데 일 년 후에 이사를 가려고 하니 이미 가방이 5개로 불어있었다. ’딱 하나 좋은 것으로 사자‘는 나의 소비신념은 ‘역시 좋은 거는 하나로는 부족해. 두 개는 있어야지’로 바뀌었고 혼자 justify를 해가며 하나하나 사다 보니 이제는 어디로 이사 가는 게 무서울 정도로 짐이 불어나있다.


곤도 마리에는 정리에 필요한 작업은 ‘버리기’와 ‘수납 장소 정하기‘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설레지 않는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라고 썼다.


서랍을 열고 하나씩 꺼내서 버릴 거 보관할 거 분류하는 과정을 하다가 나의 예전 매니저한테 선물 받은 공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설레였다.


캐나다에서 금융감독관으로 일할 때 나에게 진심으로 잘해주시던 매니저가 있었다. 그분 성함은 로즈. 자메이카 출신분이신데 영국에서 공부를 하시고 캐나다로 이민을 오신 분이다. 회사에서 일하신 지는 이미 30년이 넘으셨고 영국에서 오래 사셔서 그런지 항상 옷을 갖춰 입으시는 멋쟁이셨다. 거의 60세가 넘으신 나이이신데도 항상 잘 다림질한 셔츠와 블레이져 그리고 스커트와 바지, 구두까지 색깔을 잘 어우러지게 하시고 회사에 오셨다.


이분 밑에서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은퇴를 바로 눈앞에 두고 회사에서 퇴직 권고를 받으셨다. 말이 권고이지 해고통보전에 네발로 나가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너무나 예기치 못한 소식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로즈의 얼굴에서는 충격과 서운, 배신 그리고 약간의 부끄러움까지 표정에서 나타났다. 원래 회사에서 잘리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박스에 짐을 싸고 보안요원이랑 같이 나가야 한다. 다행히 로즈의 경우에는 퇴직권고여서 바로 오피스를 비워야 하는 건 아니었고 일주일 정리 기간을 받았다. 공기업이라서 누구를 자르는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내보내다니 나도 같이 허망했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아침에 몇십 년 일한 사람을 쫓아내다시피 하는 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오피스를 정리할 때 나도 같이 짐 싸는 걸 도와주면서 시니어 매니지먼트에 대해서 어떻게 그러냐고 같이 한바탕 욕을 했다. 그리고 로즈한테 이제 은퇴하면 회사에서 싫은 사람 안 봐도 되고 이제 다른 삶을 즐겨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로즈는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서 회사를 당장 안 나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스위스로 MBA를 하러 가는 것이 결정되어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로즈한테도 이메일을 보내서 소식을 알렸다. 회사 다니는 날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로즈가 나를 보러 다운타운까지 와서 점심을 같이 했다.


아직도 회사에 대한 화가 덜 풀리셨는지 ‘직장에 충성해 봤자 소용없다. 그냥 너 하고 싶은 일 하고 살고 여기 직장에 미련 갖지 말라’ 하셨다. 백 프로 안전한 직장은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는 나를 위해 공책을 선물로 주셨다.


공책의 타이틀은 “Always chase your dreams”  -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더욱더 의미 있게 다가온 짧은 문장이다.

집정리 하다가 찾은 나의 전 매니저 로즈가 선물해준 공책


사실 내가 회사를 그만둔고 학생이 다시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두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이 좋은 직장 그만두면 아까워서 어떻게 하냐 하고 걱정해 주는 부류, 다른 하나는 할 수 있을 때 새로운 걸 도전하는 것을 응원한다는 부류.  두 입장 다 이해가 갔다. 내가 후자를 택했을 때 기회비용은 누가 보기에도 컸다. 안정된 직장에서 따박따박 나오는월급을 포기하고 거기에 학자금 대출까지 끼고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총 합산한 기회비용은 유럽에서 MBA를 해서 미래에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거라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보다 훨씬 계산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전을 안 해서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되는 것, 꿈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회비용은 돈으로 환산이 안됐다. 그리고 스위스로 가기전에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직장에서 나의 매니저 로즈가 정리해고 되는 것을 보고 어쩌면 전자를 선택했을 때의 기회비용이 더 클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마지막 이메일은 내가 유엔에 합격 하자 마자이다. 나에게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먼저 이멜을 보내셨고 나는 감사하게도 유엔에 합격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로즈는 자기 자식의 일처럼 기뻐하셨고 그리고 토론토 오면 연락해라 보자가 우리의 마지막 이메일이었다. 몇 달 후 예전 동료로부터 로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회사를 떠나고 은퇴생활을 제대로 다 즐기지 못하고 너무 황망하게 떠난 로즈.  


토론토에서의 회사생활동안 그녀의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 덕분에 더 큰 꿈을 꿀 수 있었기에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되새긴다.


Always chase your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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