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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린나 Jun 17. 2018

[케이프타운]아름답게 아문 상처, 보캅(Bo-Kaap)



이 세상에는 예쁜 색으로 유명한 거리가 많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파란색.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흰색. 스페인 후스가르의 스머프색. 그리고 색연필 상자를 열어놓은 것 같은 스톡홀름 감라스탄이 떠오른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자락,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알록달록한 마을이 있다. 케이프타운의 보캅(Bo-Kaap) 거리다. ‘보캅’ 이라는 이름은 남아공 고유 언어중 하나인 아프리칸스(네덜란드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언어가 혼합되어 만들어짐)에서 유래된 말로, Above the Cape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케이프타운의 어느 언덕빼기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보캅은 건물이 아닌 마을의 이름이므로, 구글에서 ‘보캅’을 검색하면 애매한 곳으로 안내될지도 모른다. 이때는 보캅 박물관(Bo-Kaap Museum)을 먼저 검색하면 된다. 박물관으로 가다보면 어느덧 파스텔톤 집들이 나타난다. 골목마다 집마다 저마다의 개성 있는 색깔 옷을 입고 있다. 그런데 집 모양은 다 비슷비슷하다. 이곳 집들은 대부분 같은 시기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모양에 빛깔만 천차만별한 것이 여느 색깔도시들처럼 매력적이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집들을 구경하자면 안국역 북촌한옥마을이 생각나기도 한다.     


보캅은 케이프타운 중심부에 위치해있다. 케이프타운 중심부에는 테이블마운틴, 워터프론트, 컴퍼니가든, 디스트릭트식스, 캐슬오브굿호프 등 주요 관광지가 밀집해있는데 보캅도 그 중 하나이다. 나는 묵고 있는 호텔에서부터 걸어서 보캅으로 갔다. 그만큼 접근성이 괜찮다. 요새는 많이 유명해져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는 내 사진에 모르는 사람이 찍히는 것을 안 좋아해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 그런데도 이미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보캅의 역사는 어둡다. 시작은 노예 제도였다. 네덜란드인들이 케이프타운에 정착하기 시작하던 18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소속된 Jan De Waal 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18세기 중반 지금의 보캅에 수많은 조그마한 집들을 지었다. 이를 ‘huurhuisjes’로 불렀는데 렌트 하우스라는 뜻이다. 당시 케이프에 들어온 노예들에게 임대하는 집이었다. 그래서 최초 이곳의 이름은 ‘Waalendorp’였다. 영어로는 Waal-town이라는 뜻이다. 당시 보캅은 동인도회사의 직원, 또는 동인도회사와 생계를 같이 하는 네덜란드 정착민들에게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오늘날 왜 보캅이 주요 관광지와 가까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에 노예에게 임대된 집에는 흰색 페인트를 칠했었다고 한다. 이후 노예제도가 없어지면서 흰색 페인트를 칠할 이유가 사라지기도 했고, 해방된 사람들이 자유의 상징으로 집 외벽을 밝게 꾸미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예쁜 보캅의 시작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기간에는 이슬람교도인 非백인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때 이주해 온 사람들에 의해 건물 색은 더욱 화려하게 꾸며졌다.     

착취를 위해 만들어진 마을. 보캅의 첫 시작부터 아파르트헤이트에 이르기까지 이곳 사람들에게 고향은 아픔이었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의 새로운 남아공과 함께 이곳의 상처도 아물었다. 아름답게 아물었다. 비슷하게 아픔을 딛고 일어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애틋할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알록달록 파스텔톤이 슬프면서 아름다운 거리. 보캅은 케이프타운 머스트비짓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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