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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연 Oct 27. 2022

책을 꼭 읽어야 할까?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뭐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읽는 책>

나는 책을 자주 읽는다. (일 년에 대략 100권 가까이 읽으니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책읽기가 즐거우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책읽기가 괴로우냐고 물어보아도 똑같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게 책읽기는 놀이이지만 숙제이기도 했다. 

학창시절 책은 마치 회초리 같았다. 나는 책이라는 회초리를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맷집 있는 학생임을 과시하기 좋아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보이기 위해,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바람직한 존재로 보이기 위해, 농땡이를 피우고 싶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책을 이용했다. 꽤나 뿌듯한 일이었다. 어른들에게 인정받는, 똑똑한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기분은 달콤했다. 동시에 책읽기는 갑갑했다. 읽으라 한 책들은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읽을 수는 있어도 내용에 몰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열여섯 살의 나, 열아홉 살의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책은 없었다. 

그럼에도 독서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책은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똑똑해지고 싶다면, 그래서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면, 더 교양 있는 시민이 되고 싶다면, 남을 앞지르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맴돌았다. 남는 시간에 책을 읽지 않는 건 죄를 짓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책읽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날이 늘어났다. 모든 일은 우연이었다. 나는 우연히 글이 쓰고 싶어 졌고, 지원한 대학 중 간신히 하나 붙어서 간 학과가 국어국문학과였고, 어쩌다 보니 문학을 읽고, 시도 쓰고 평론도 쓰면서 지금의 내가 되어버렸다. 대학 이후 만난 책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으로도, 동물으로도, 귀신이나 괴물로도, 그저 목소리로도 책은 존재했다. 

그때는 그저 신기했던 것 같다. 책은 항상 딱딱하게 말하고, 선생님처럼 가르쳐주기만 했는데 여기서 읽는 책들은 다르게 말했다.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위험하기도 했고, 뭐하는 사람이지? 할 정도로 이상하기도 했다. 그 위험함과 이상함을 내가 마주할 수 있다는 기분이 좋았다. 운이 좋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대신 말해주는 책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반가웠고, 안심이 됐다. 나는 책과 책읽기가 보여주는 세계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다. 동시에 책읽기는 여전히 힘들었다. 누군가의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활자로 계속 읽어내야 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필요했고, 학창 시절 내가 괴로워했던 책읽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안에는 책을 혐오했던 시간과 책을 사랑하는 시간이 같이 흐르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독서율의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면 성인 비독자(일 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52.5%로 절반을 넘겼다. 이런 추세라면 책을 찾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적어질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독자가 멸종해가는 세태가 절망스럽고 구슬프다고 하겠지만, 나는 솔직히 떨떠름한 기분이다. 

사실 국민 독서실태 조사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이 조사의 목적은 뭘까? 보고서의 개요를 보면 "독서 환경과 국민들의 독서실태 변화를 파악하고 독서 진흥정책을 수립하기 위'함이라고 적혀있다. 이 조사는 2006년에 제정된 '독서문화진흥법'에 의거한다. 독서문화진흥법은 "독서 문화의 진흥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하여 국민의 지적 능력을 향상하고 건전한 정서를 함양하며 평생 교육의 바탕을 마련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의 균등한 독서 활동 기회를 보장하며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라고 한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이 목적에 따르면 실태조사는 국가경쟁력을 향상하는 데 일부 봉사하고 있는 셈이다.

2015년 교육부가 발표한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독서' 교육의 목적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독서’는 초중고 공통 ‘국어’의 읽기 영역을 심화 확장한 과목으로, 이제까지 쌓아 온 독서 능력과 독서 태도를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주제와 유형의 글을 폭넓게 읽어 삶을 풍부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위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집필되어 2022년 1월에 발간된 역락 출판사의 <독서 교육론>에서는 독서 프로그램의 목적을 크게 여섯 가지로 구분한다. 1) 독서 능력 향상, 2) 언어 능력 향상, 3) 문학 감상 능력 향상, 4) 학습 능력 향상, 5) 진로 탐색 및 전인 교육, 6) 치료의 목적. 법문에도, 교육과정에도, 교육론에도 책을 즐겁게 읽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없다. 왜 책을 읽을까? 나는 책읽기가 즐겁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한국 교육부가 책을 읽는 이유로 제시한 답에 '즐거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해외 주요국의 독서실태 및 독서문화진흥정책 사례 연구"에는 미국, 영국, 핀란드, 프랑스, 일본의 독서진흥정책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네 국가 국민들이 제시한 책을 읽는 이유 1위는 '즐거움'이었다. 한국은 어떨까? 2021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성인 독자가 제시한 책을 읽는 목적 1위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고"였고, "책 읽는 것이 즐겁고 습관이 되어서"(즐거움과 습관이 같은 문장에 배치된 이유부터 모르겠지만)라는 보기는 9개의 보기 중 7위였다. 

한국 사람들 책 안 읽는다, 독서율이 점점 떨어져 큰일이다, 문해력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무례해지고 멍청해진다... 는 말들이 계속 메아리처럼 되돌아오지만, 정작 정부와 교육 시스템은 즐거움을 위해 책을 권하지 않는다. 그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즐거우려고 읽는 게 아니면 왜 책을 꼭 읽어야 해?"라고 밖에는 답할 말이 없다. 


몇 달 전 흥미로운 트윗을 봤다. (지금은 비공개 설정이 되어 있어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글쓴이는 자기의 기준에 따라 문학을 읽는 ‘팬덤’을 분류했다. 한국소설 중에서도 누구랑 누구, 외국소설 중에서도 누구랑 누구. 분류는 시대별로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하지 않았고 나라별로 묶이나 싶었지만 몇몇 군은 국적이 섞여있기도 했다. 만약 문학 교수가 보았다면 이런 얼토당토않은 분류는 뭐냐고 할 법했다. 하지만 이 분류는 재미있었다. 새로웠고 에너지 넘치고 발랄했다. 트윗을 한 이가 책을 읽는 방식, 작가를 나누는 방식, 그들을 정의하는 방식은 그 자신만의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생에게 국어, 영어, 수학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라 요구하다가 대학생이 되면 갑자기 고전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대학생이지 않냐고 훈계한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빌린 책들의 목록을 고등학생들에게 뿌리면서, 이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식의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읽어야 하는 책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 스스로 좋은 책, 의미 있는 책, 재미있는 책을 정의할 기회를 선뜻 내어주지 않는다.

세상에는 베스트셀러 목록 바깥에, 어른들이 읽으라고 내민 추천도서 바깥에 더 재미있고 숭하고 아름답고 폭력적이고 이상하고 신기한 책들이 가득 있다. 교과서와 닮은, 교훈적인 말들만이 가득한 책들 사이를 헤치고 나오면 그 바깥에는 상상 이상의 세계가 있다. 그러니 이제는'책을 꼭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매달리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뭐부터 읽으면 좋을까?'에 대답하고 싶다.

언어 연구자 김성우는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따비, 2020)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가르친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야 될 때"라고 말한다. 2021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청소년들이 학교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요청한 것은 '책에 대한 소개와 정보'였다. 나는 사람들이 마음껏 책과 만나 사랑하고 또 증오하면서 책과 더 자연스러운 관계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독서진흥'은 국가경쟁력이나 더 풍부한 삶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보다 어떻게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고 선택할 수 있는지, 어떻게 책을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끔 접근성과 자유를 증진하는 데 맞추어져야 한다.


내가 국어국문학과에 가지 못했다면 이렇게 많은 책을 읽게 되었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만약 다른 학교의 언론정보학과, 혹은 경제학과에 붙었으면 문학을 읽고 시를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을까. 국어국문학과 안의 책읽기를 좋아하는 선배들, 텍스트 너머의 다른 세계를 열어젖힐 줄 아는 선생님들이 곁에 없었다면 나는 책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독자의 길에서 이탈했을 수도 있다. 아찔한 기분이 되다가도, 이 아찔함이 엄살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가 그렇게 만만한 존재인가...?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는 직장을 가진 뒤, 아이를 가진 뒤, 축구를 하러 그라운드를 찾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학창 시절에는 운동장을 자기 자리로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학교를 벗어나 축구를 하고 싶어 다시 그라운드를 찾으러 되돌아오는 것처럼, 책에서 멀어진 사람도 언젠가는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우연한 마주침을 통해 책을 집어 들 수 있다. 

엄마는 내게 자주 책 추천을 부탁하곤 한다. 별 재주는 없지만 책은 많이 읽은 아들이 집에서 놀고 있으니 책 추천을 부탁하기 쉬웠던 것도 같다. 두 자식이 성인이 된 지 오래고, 자기만의 가게를 마련한 엄마는 다시 책을 읽어보고 싶었나 보다. 나는 엄마의 취향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몇 권을 골라주고, 엄마는 며칠 뒤에 재미없다면서 다른 책을 달라고 한다. 나는 투덜거리면서 조금 더 엄마가 좋아할 법한 책을 골라 다시 준다. 몇 권을 실패하지만, 몇 권은 성공한다. 엄마는 책을 고르고, 가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은 즐거워 보이고, 나 역시 그렇다.

책을 고르지 못해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내가 이런 말들을 쓴다고 도움이 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심하기도 했다. 엄마는 그 의심을 덮어두고 원고를 시작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확신이 되어주었다. 이 책의 일부는 엄마가 쓴 것이나 다름없다. 

이 책은 책과 다시 재회한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증오로 시작했든 추앙으로 시작했든 책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 말해보고 싶다. 나 역시 책을 증오하면서도 또 그리워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잘 읽어나가고 싶으니까 말이다. 제목을 짓는 데는 별 재능이 없어 있는 그대로 적었다.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뭐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1부에는 책읽기를 시작하는 독서가들을 위한 여러 제안을 담았다.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잘 조직된 정보를 얻기 위해, 내가 몰랐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내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위로를 얻기 위해.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독자들에게 적용되는 좋은 책 고르는 법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책을 고르건 간에 알면 좋은 접근 방식과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책읽기의 어려움, 부담 없이 진입하기에 괜찮은 책 종류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가면 보다 수월하게 책과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부에는 잘 모르는 분야로 뛰어드는 호기심 가득한 모험하는 독서가들을 위한 선택지를 담았다. 처음 독서를 시작한 지점에서 뻗어나갈 때의 짜릿함을 모험하는 독서가는 느낄 수 있다. 다만 막상 뻗어나가려고 주변을 둘러볼 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막막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포함되지 않는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다. 숨어 있는 좋은 책들을 발견할 수 있는 지름길을 소개해놓을 테니 마음껏 이용해주셨으면 한다.


3부에서는 활동하는 독서가들을 위해 책을 가지고 놀고, 다양하게 써먹는 크고 작은 방법들을 담았다. 책은 여타 콘텐츠들과는 다르게 그 자체로 몸을 가지고 있는 '물체'이기 때문에 다른 콘텐츠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독자와 책이 서로 호흡을 주고받는다는 말은 그저 비유가 아니다.


4부에는 책이 어떤 사물인지, 책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지 나의 개인적인, 그러나 어쩌면 공적인 담론이 될 수도 있을 고민들을 담았다. 책을 고민하는 독서가들이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책과 관계 맺는 데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실용적 이야기부터 내가 바라는 개인적인 미래상을 얘기해보려 한다. 관심이 가는 부분을 골라 읽어도 좋을 것이다.


각 장에서는 특정 작가, 출판사, 책방의 이름 언급을 최소화했다. 부록에 추천목록을 적어두었다. 각 장의 적절한 예시를 찾고 싶을 때 참고해보셨음 한다. 


책을 향유하는 방식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방식을 찾았다. 나는 책을 더 잘 좋아하고 싶어서, 미워하지 않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당신은 책을 읽을 수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책을 집어 들고 싶어졌다면 앞으로의 말들이 당신께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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