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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연 Oct 27. 2022

1-2. 시작하는 독서가들을 위한 작은 제안

1부 : 뭐부터 읽을까? - 시작하는 독서가들에게

사적인 책 추천이 필요해

2016년 ‘사적인 서점’이 문을 열였다. 주인장인 정지혜 작가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예약제 서점’이라는 부제를 내걸었다. 사적인 서점은 미리 신청을 받아 주인장과 면담을 한 뒤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책을 ‘처방’해준다.

약국에서 배가 아프다고 하면 위장약을, 열이 난다고 하면 해열제를 처방받는 것처럼 책 역시 나에게 효능이 있는 게 제일이다. 시작하는 독서가들에게는 자신이 책을 읽는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책을 찾아 읽는게 좋다. 다만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원하는지 모를 수 있고, 섣불리 아무 책이나 집어들기에는 영 꺼림칙할 수 있다. 

슬프게도 약국은 집 밖으로 나가면 10분 안에는 찾을 수 있을만큼 흔하지만 사적인 책 추천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나 서비스는 아주 드물다. 약 1시간 가까이 면담을 하고 책을 추천 받는 '사적인 서점'은 유료 서비스이기 때문에 청소년에게는 접근성이 낮고 광범위하게 사람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사적인 책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경로는 많지 않고, 있더라도 부실한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있다. 너무 본격적이지 않은,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고 내게 슬쩍 책을 찔러주는 사람들을 소개해본다.


1) 교보문고 직원

교보문고에는 컨시어지(Concierge) 코너가 있다. 컨시어지는 보통 호텔의 안내원, 안내업무를 총칭하는 용어로 기업에서도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의사소통하는 창구를 칭하는 데도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교보문고 컨시어지는 책 예약, 상담, 추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실 교보문고에 들를 때마다 한 번씩 책 추천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부탁드려본 적이 없다. 업무에 쫓겨 자리에 앉아계시지 않을 때도 많았고, 책 추천을 부탁하는 다른 사람들을 본 적도 없었다. 사실상 유령화된 서비스가 아닐까… 의심하면서 지나쳤지만 쑥쓰러운 마음을 무릅쓰고 찾아가 책을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시 어린이 책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4살 정도 되는 아이가 읽기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직원분께서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책을 추천해주셨다. 성별에 따라 관심 가지는 책을 나누어 알려주시고, 동물 관련 책은 이런 장점이 있고, 길고양이와 친해지는 이 책은 글이 조금 많아 어려울 수 있지만 같이 읽어주면 괜찮다는 식이었다.  

교보문고에는 각 분야마다 직원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책의 분야를 미리 확인하고 해당 구역에 계신 직원분께 물어보면 책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보다는 노년 층이 책 추천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고 하는데, 시작하는 독서가들도 책읽기를 시작할 때 교보문고 직원의 도움을 받으면 괜찮은 책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꼭 컨시어지 데스크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여쭤봐도 된다고 하니, 바쁘지 않아 보이신다면 슬쩍 도움을 요청해봐도 좋을 듯 싶다.


2) 도서관 사서

도서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개인화된 책 추천 프로그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서관에서 자체적으로 주제를 정해 특정한 책을 무작위 다수에게 추천하는 큐레이션 프로그램이 있을 수는 있다. 큐레이션은 사서들이 특정 주제를 선정해 도서관 내부에 추천도서목록을 게시하는 것인데, 추천의 이유가 쓰여 있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추천 이유 없이 그저 ‘추천도서’라고만 써 있다면 참고해도 효과가 미미하다. 

사서에 따라서 도서관 이용자가 어떤 책을 읽고 싶다며 추천을 부탁했을 때 흔쾌히 자세하게 말해주기도 하지만, 부탁을 낯설어하는 사서도 왕왕 있다. 또한 사서가 배치되어 있지 않은 도서관도 있어서 책에 관련해 물어볼 전문가가 부재할 수도 있다. 

지역 도서관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해당 도서관에 몇 명의 사서가 근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보통 사서가 7,8명이 넘어가는 넉넉한 규모의 도서관일 경우에는 책 추천을 잘 해주는 사서가 계실 확률이 높다. 물론 사서의 업무는 책 추천 이외에도 방대하기 때문에 '사적인 서점'처럼 오랜 시간동안 자기의 고민과 필요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장서들의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는 사서들은 내가 원하는 책을 빠르게 알려주는 데 가장 적격인 사람들이다.  


3) 학교 선생님 (청소년에 한정)

학교 선생님은 청소년인 나를 오래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미숙한지 어느정도는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책 추천을 부탁드렸을 때 개인화된 추천을 잘 해줄 수 있다. 물론 교사 모두가 책 추천에 능숙하지는 않기에 부탁드릴 수 있는 분을 잘 가려내보자. 보통 국어교사들에게 부탁하기가 가장 무난하고, 배치되어 있지 않기도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 사서 교사가 있다면 사서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가장 좋다. 

중학교 교과과정에는 ‘문학’, 혹은 ‘국어’가 아닌 ‘독서’ 시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 하는데, 독서 교과 시간에 선생님께 물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교육청에서는 학교에 여러 독서 예산을 제공한다. 책을 학생들에게 무료로 선물할 수도 있고, 독서 토론 수업 등 활동적인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도 있다. 물론 교사가 얼마나 독서 시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잘 설계하느냐에 따라 경험이 많이 차이날 수는 있겠지만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물어보면 의외로 좋은 답이 나올 수 있다. 



악동들을 밑줄 치기

앞서 언급한 읽기 방해 악동 4남매 고유명사, 한자어, 개념어, 비유들을 잘 타이르고 길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밑줄 치기'를 추천하고 싶다. (구입한 책에만 활용할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읽고 뭔 말인지 모르겠으면 밑줄을 친다. 이때 밑줄의 단위는 꼭 하나의 어절, 단어가 아니어도 된다. 비유는 보통 하나의 단어가 아니고, 문장의 구조 자체가 복잡할 수 있으니, 문장 전체가 이해가 안 되면 통째로 밑줄을 치자. 

밑줄을 긋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모르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모르는 말이 나타날 때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다 알고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독서는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한 페이지에 내가 모르는 말, 밑줄이 10개 이상 나온다면 읽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5개~7개만 나와도 힘에 부친다). 적어도 3개 이하여야 적절한 속도로 읽기가 가능해진다. 

신기하게도 내가 모르는 말을 밑줄로 표시만 해놓아도 읽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애매하게 안다고 착각하는 단어와 문장들을 흘려 읽으면 내용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게 되고 뒤이어지는 문장들을 이해하는 데도 점차 힘들어진다. 눈은 문장을 훑고 있지만 어느순간부터 뭔 말인지 모르겠는 상황은 이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어떤 단어나 말을 ‘모른다!’고 체크해두면 그 말만 도려내어 나머지를 이해해볼 수 있다. 퍼즐을 맞출 때도 그냥 무작정 맞추지 않고 모서리와 같이 확실하게 내가 아는 곳부터 하나하나 맞추어 놓아야 다른 부분을 연결시키기 편해지는 것처럼 내가 모르는 말과 아는 말을 구분해놓으면 내가 어디서부터 이해를 시작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준비물이 필요없는 장르들

장르 이해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은, 준비물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다. 준비물이 많으면 시작이 어려워진다. 운동을 배우려 할 때도 갑작스레 검도 같은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죽도, 호구, 도복, 보호대 등등 미리 사야할 물품들이 많다. 다르게 말하면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다다. (그렇지만 검도는 아주 재미있는 운동입니다. 여러분 검도하세요. 검도짱짱운동). 반면에 달리기는 별 다른 준비물이 필요없다. 제대로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 런닝화나 운동복을 구입할 수 있겠지만 그냥 신발과 옷만 있으면 바로 시작해버릴 수도 있다. 

시작하는 독서가에게는 딱히 준비물이 필요없는 책들, 미리 어떤 장르인지 알고있지 않아도 잘 이해되는 책을 제안해보고 싶다.


1) 청소년 도서

청소년 도서는 청소년을 주독자로 정한 책을 말한다. 청소년 도서는 다양한 청소년 전체를 겨냥하기 때문에 어휘의 수준을 예민하게 고려하고, 배경지식을 책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거나,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목차를 구성하는 편이다.

책읽기를 가로막는 나쁜 편견 중 하나는 나이대별로 읽어야 하는 책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성인들이 청소년 문학, 청소년 인문, 청소년 과학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성인이 청소년 대상 책을 읽는다고 해서 창피한 일도 아니고, 청소년 책이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책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성인이 청소년 도서를 읽게 되면, 내가 알고 있다고 여겼던 지식들 중 잘못 알고 있는 게 꽤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나이에 맞는 책읽기'라는 강박을 일부 덜어낼 수도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들은 표지 디자인이 자유로운데 비해, 청소년 도서는 상대적으로 표지에서부터 주제를 선명히 드러낸다. '이 책은 우주에 대해, 게임에 대해, 친구에 대해 말할 겁니다!'라고 확실하게 예고하기 때문에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주제에 들어맞는 책을 고르기 편하다. 청소년 도서를 찾을 때에는 알라딘 혹은 yes24에서 청소년도서 중 베스트셀러를 검색해서 골라보아도 좋고, 서점의 청소년 도서 매대를 훑어보아도 좋다. 무엇을 골라도 실망할 확률은 높지 않다. 


2) 인터뷰집, 대본집

인터뷰집, 대본집은 인물의 대사, 지문으로 구성되어있다. 한 인물, 한 작품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그 인물과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부감이 훨씬 적다. 또한 기본적으로 인터뷰집, 대본집의 문장들은 인물이 하는 ‘말’과 주고받는 '대화'이기 때문에 문어체가 많지 않고 흐름에 몰입하기에도 용이하다.

최근 인기 있는 드라마, 영화 대본집을 출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자신이 애정하는 드라마와 영화의 대본집을 보면서 영상과 텍스트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지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인터뷰집 역시 근 몇년간 꾸준하게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정치인, 연예인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인들 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직장인, 활동가, 학생들의 인터뷰가 제작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인터뷰집은 좀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줄글보다 더 강렬하고 감정적이다. 인터뷰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는 두 명의 저자가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으로 구성된 책들도 자주 출간되었다. 대사가 즉각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대담, 인터뷰는 아니지만 글 한 편 단위로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인터뷰집과 비슷한 효과를 준다.
 

3) 시리즈

시리즈는 한 개의 포맷에 다양한 주제를 적용하는 일련의 책들을 말한다. 여기서 마법천자문과 같이 큰 스토리 줄기를 가지고 이어지는 연재물은 시리즈로 치지 않는다. 뜨인돌 출판사의 '노빈손'과 같이 동일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스토리의 직접적인 연결이 희미하고 각 권마다 주제가 도드라지는 경우는 시리즈라고 본다. 시작하는 독서가에게 추천하는 시리즈 중에서 학술서적 등은 제외한다. 이 장에서 추천하는 시리즈의 예시로는 개인의 취미나 기호를 주제로 하는 에세이나 역사, 과학 교양서 등이 있다.

시리즈는 기획의 통일성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저자들이 쓰는 어휘의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청소년 도서와 유사하게, 동일한 포맷에 여러가지 주제가 늘어서 있어 내 관심사에 부합하는 책을 찾기에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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