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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연 Oct 27. 2022

4-3. 영화관은 있는데 독서관은 왜 없을까?

4부 : 책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 고민하는 독서가들에게

2021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책을 읽는 장소로 가장 많이 꼽힌 곳은 '집'(성인 60.3%, 학생 55.4%)이었다. 집 외에는 밖에서 이동할 때(성인 10.2%), 교실(학생 18.7%), 장소를 가리지 않음(성인 7.5%, 학생 6.2%) 등등이 꼽혔지만 집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장소는 없었다. 

영화는 어떨까? OTT 서비스가 대중화된 이후 영화를 보는 장소가 '집'인 사람들도 많아졌겠지만 여전히 영화관을 찾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났더랬다. 영화관은 있는데 왜 독서관은 없을까. 아마 책읽기는 대부분 혼자 하는 일이고 영화보기는 같이 볼 수 있어서겠지만, 단순히 같이 보기만이 영화관의 고유한 특징은 아닌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영화들을 OTT에서 찾아 볼 수 있음에도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화의 맛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큰 스크린이 주는 압도감, 사방에서 울리는 사운드, 스크린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드는 암전, 영화관은 관객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제공한다. 이 환경들은 집에서는 경험할 필요가 없는 '불편함'들이다. 영화관과 다르게 집에서 영화를 보면 영화를 일시정지할 수 있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집에서는 영화를 잠시 멈추어 놓고 갔다올 수 있지만 영화관에서는 불가능하다. 영화관에만 있는 이런 '불편함'이 오히려 2시간 동안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집중력을 만든다. 영화관에 들어간다는 행위 자체가 '나는 이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약속, 그러니까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겠다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책읽기를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독서관'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그 독서관이 그저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면 어떨까? 나는 도서관과 테마파크를 합쳐보고 싶다. 내가 가진 돈이 무한대라고 가정하고 내가 바라는 독서관의 조건과 모양새를 이야기해보겠다.


그림에 재주가 없어 이렇게 밖에 보여드릴 수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첫 번째, 내가 상상하는 독서관은 책읽기에 특화된 공간이다. 이미 공공/학교 도서관이 있지 않냐?고 물으실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도서관은 책읽기에 최적화된 공간은 아니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내 발소리, 숨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린다. 어딘가 부딪혀서 소음이 나지 않게끔 조심조심 다녀야하고 사람들과 아이컨택을 한다거나 자연스러운 일상적 움직임이 제한받는다. 독서관에서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지나다닐 수 있도록 적절한 음량의 가사 없는 음악과 백색소음 등이 있도록 한다. 


두 번째, 독서관은 커야 한다. 아주 어마어마하게 커야 한다. 백화점 몇 개쯤을 합친 정도의, 대략 올림픽 경기장 정도의 넓이면 좋겠다. 책을 읽을 때 공간이 너무 좁으면 갑갑하고 숨기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숨을 수 있는 정도(투명도라고 표현해도 될까?)는 책읽기에 영향을 준다. 공간이 넓고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지 않고 탁 트여있을 수록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고, 나만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보이듯 거대한 타원통 모양을 한 건물을 높게 세우고 싶다. 케익을 자르듯 타원통을 삼등분해서 어린이관, 청소년관, 성인관으로 나눈다. 각 관에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이 일반적으로 읽을 법한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각 관에 나이제한을 두어서 출입을 승인하거나 금지하지는 않는다. 자유롭게 관을 넘나들 수는 있지만 좀 더 어린이, 청소년, 성인의 특성과 니즈에 맞게끔 공간이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관의 의자, 책상, 화장실 세수대 등은 어린이 키에 맞게 조정되어 있다거나 성인관에 노후, 건강 등등의 책이 더 많이 배치되어 있는 식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각종 ASMR 입체음향을 유튜브에서 재생해놓고는 하는데, 각 영상들은 특정한 테마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는 조선시대라거나, 말포이가 앉아있는 슬리데린 휴게실이라던가, 고래가 유영하는 심해라던가. 만약 ASMR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로 그런 기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내가 상상하는 독서관에서 각 층은 테마로 나뉜다. 1층은 거대한 도서관과 같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 공공도서관의 내부 정경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가들이 빽빽하게 타원의 둘레를 따라 서있고 중앙에는 서가를 관리하는 직원들, 안내를 도와주는 수행원 등이 있다. 사람들은 여기에 꽂힌 책들을 마음 껏 꺼내다 읽을 수 있지만 대출을 해갈 수는 없다. 도서관의 역할과 겹치기도 할 뿐더러 독서관에는 일정 수량의 다종다양한 책들이 항상 확보되어 있어야 하므로 책이 외부로 나가게 할 수는 없다. 1층은 도서관과 같이 책상이 있고 독서하기에 편한 조명들도 배치되어 있다. 한켠에는 독서대 대여처가 있어 목건강이 걱정된다면 무료로 대여해서 쓰고 돌려줄 수 있다. 


2층은 No 신발 층,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기업의 사무실과 같다. 2층에는 기둥만 있을 뿐 아무런 장애물 없이 시야가 탁 트여있다. 너무 쨍하지 않은 색상의 부직포(?) 바닥과 벽 색깔이 나름 알록달록하게 칠해져 있고 의자는 전부 썬배드와 빈백으로 한다. 여기서는 보다 편안하게 누워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주로 내가 다른 사람 눈에 띄던 안띄던 별 상관 안하는 사람이 이용하기 편하다. 


3층은 숲 층이다. 식물을 배치하여 식물원과 숲 사이 어딘가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살아있는 식물을 건물 내부에 위치짓는 조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여기서는 그냥 나의 무지한 상상력으로만 채워보려 한다). 2층과는 달리 여기서는 시야가 트여있지 않고 원한다면 식물과 나무 사이에 자신을 숨길 수 있다. 나무 흔들의자, 책상 등등이 배치되어 있고 새소리, 빗소리 등이 작게 들린다.


4층은 살롱 층이다. 1,2,3층이 전부 밝았다면 4층은 살롱만의 비밀스럽고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패브릭 소재의 1인 소파, 길게 뻗은 플로어 스탠드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어두운 벽과 기둥이 사람들의 시야를 가로막고 마치 미로처럼 설계해 공간감을 확장시킨다. 


5층은 중세 로맨스판타지 층이다. 가장 화려한 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럽의 궁중 문화를 반영해 거대한 샹들리에, 무도회장, 서양 그림들이 여기저기 그러져 있고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6층은 섬 층이다. 이 층은 독서관에서 유일하게 디지털 화면이 설치되어 있는데, 실제 바다를 건물 내부에 갖다놓을 수는 없으니 타원으로 되어있는 내벽 전부를 디지털 화면으로 하고, 파도가 조용하게 들이치는 해변가를 연출한다. 마치 트루먼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각 층에는 테마에 어울리는 책들을 곳곳에 비치해 읽는 사람이 분위기를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 싶다면 섬 층에서, 애드거 앨랜 포의 소설을 읽고 싶다면 살롱 층에서, 혁신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끽하고 싶다면 실리콘밸리 층에서 읽어보는 것이다. 

한 가지 더, 1층 야외는 공원과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쓴다. 나는 그 누구보다 어린이들이 이 독서관을 자주 찾았으면 좋겠다. 


이 독서관에는 책을 전문적으로 추천해주는 큐레이터, 노트북이나 이북 단말기를 대여해주는 직원, 책장을 정리하는 직원, 길을 잃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미아보호소, 혹시 모를 긴급상황에 대비하는 의무실 등이 있다. 

또한 각 층에는 테마에 맞게 꾸며진 독서모임공간을 따로 마련한다.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내부 모임방 담당 직원(혹은 미리 인터넷)을 통해 모임방을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독서모임방은 4~5명이 정도가 긴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소형, 10명에서 15명 정도를 수용할 할 수 있는 대형으로 나눈다.

이 독서관에는 입장료가 있다. 어린이는 1,000원, 청소년은 2,000원, 성인은 10,000원. 독서관 내부의 책이 아닌 본인의 책을 들고 왔다면 입장료의 10%를 할인한다. 독서관 내부 책을 이용하는 순간부터 책을 관리하는 독서관 노동자들의 노동량이 증가하게 되는 셈이니, 노동량의 절감분을 입장비용의 10%로 가정한다.


경영을 전공하거나 사업을 하시는 분이 본다면 수익모델은 어쩔 것이냐고 물어보실 테지만, 뭐 그런거는 생각 안하고 상상해보았다. 아마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독서관, 테마파크 형 도서관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고 실현되더라도 수익 창출이 거의 불가능하리라 예상한다. 다만 테마를 충실히 구현한 한 층짜리 독서관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의 소박한 장점 중 하나는 전기 없이도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해가 떠있어야만 한다). 나는 여행을 갔을 때 해변에 앉아서, 호텔 테라스에 앉아서, 왁자지껄한 길거리에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은 안나지만 그저 내가 모르는 공간에서 혼자 덩그러니 책과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무척 좋았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여러 공간을 상상해보고 싶다. 독자인 우리들은 더 흥미진진한 공간에서 책을 읽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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