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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연 Oct 27. 2022

4-1. 책을 읽으면 문해력이 좋아질까?

4부 : 책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 고민하는 독서가들에게

4부에는 책을 주제로 한 여러 논쟁들에 대한 나의 의견과 상상을 담았다. 모두가 책을 향유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책이라는 개념, 사물이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의견도 다를 것이다. 나는 책을 읽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책은 유용하다, 유용하지 않다와 같은 오래된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꼭 논의가 필요해보이는데 왜인지 찾아보기 어려운 주제들을 위주로 담아보려 했다. 나의 편향적인 이야기에 많은 다른 의견들이 함께 연결되길 바라며 썼다.  



책을 읽으면 문해력이 좋아질까?


최근 몇년 간 ‘문해력’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줄어들음에 따라 독해능력이 하락하고, 가짜뉴스를 그대로 믿고, 사람들이 더 ‘멍청’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만 사람들이 문해력이 향상되고, 그럼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존재하는 것 같다.

교육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실시한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는 문해력을 "문자의 이해와 활용이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 성인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IALS(International Adult Literacy Survey: OECD 국제 성인 문해 능력 조사) 기준에 따라 산문문해, 문서문해, 수리문해로 구분"한다.

산문문해의 예시로는 '여행 안내 읽기', '공익 광고 포스터 이해', '사전 투표 안내문 이해' 등이 있고, 문서문해의 예시로는 '가정통신문 표 내용 이해', '부동산 임대 계약서 이해', '병원 진료 시간표 이해' 등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수리문해의 예시로는 '지출 비율에 따른 생활비 계산', '택배 요금 계산', '1년 총 급여 계산' 등이 있다. 

또한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논문 <문해력의 개념과 국내외 연구 경향>(윤준채, 2009)에서 정의하는 문해력은 “글의 표면에 나타나 있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미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사회정치적 이데올로기, 즉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누구의 가치와 신념을 반영하고 있는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다. 위의 정의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문해력은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비판적으로 사고 하기 위해,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본격적으로 '문해력'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EBS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문해력 테스트'(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3kPuPKgDcq8H9eMD-lgYqmGs-tyVWns_NL0_qF9LomzQOMw/viewform)를 배포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11개의 문항 중 7개도 맞히지 못한 성인이 절반이라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충격적인' 결과라는 식의 감상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문해력은 정말 심각한 수준일까? 앞서 언급한 2020 성인문해능력조사에서 수준4(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수준)이상에 해당하는 비율은 79.8%였다. 완벽하다고 할 순 없어도 부족하다고도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최근 뜨겁게 달아오른 '문해력'은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문해력 논란의 중심이 된 단어들로는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기생충> 한줄평에 남긴 '명징'과 '직조', 대체공휴일 안내 때의 '사흘', 그리고 한 업체의 공지글에 쓰인 '심심한 사과' 등이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이 사례들은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어휘력의 문제다. 물론 자신이 모르는 단어를 쓰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반사회적 행동을 문제삼을 수는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문해력의 문제는 아니다. 대신 좀처럼 동의할 수 없었던 의견 중 하나는 하락하는 독서율과 문해력 문제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식의 추론이었다. 요즘애들이 책을 안읽으니까 문해력이 떨어지지... 라는 식이다.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많이 읽으면 문해력이 좋아지는 걸까?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문해력의 정의를 만약 한 문장으로 바꾸어 말해볼 수 있다면  '뭔 말인지 알겠음' 이라 부르고 싶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말과 이면에 숨겨진 의도를 함께 읽을 수 있다면, '딱' 보고 '뭔 말인지 알겠다' 싶은 상태는 그 말의 의도와 배경을 본능적으로 읽어낸 상태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화를 내는 코미디언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건 그가 관객인 우리를 웃기기 위해 과장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친구가 부탁을 하기 위해 우물쭈물하며 말을 할 때 "뭔 말인지 알겠어. 이게 필요한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맥락들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 문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문해력은 맥락(Context)을 읽는 능력이고 문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맥락을 체험하고 익혀야 한다.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오해가 생기거나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각 국의 문화가 다른 맥락에 기반해있기 때문이다. 나라에는 나라만의 문화가 있듯이 콘텐츠에도 콘텐츠만의 문화, 콘텐츠만의 맥락이 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책이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책이 말하는 방식과 영화가 말하는 방식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책이 숨기고 있는 맥락도 읽어내는 데 수월해지고 문해력이 좋아진다. 정확히 말하면 책읽기 안에서의 문해력이 좋아지는 것이다. 


발화의 의도, 숨겨진 이데올로기, 가치, 신념을 파악하는 능력이 꼭 책읽기를 통해서만 발달한다고 볼 수는 없다. 책읽기안에서의 문해력이 좋아진다고 해서 영화에 대한 문해력, 유튜브에 대한 문해력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내가 일본 문화를 안다고 해서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안다고 말할 수 없듯이 말이다. 유튜브에는 유튜브만의 맥락과 문화가 있다.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은 유튜브 영상의 전반적인 경향이나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들이 자주 사용하는 BGM, 효과음, 자막 서체 등등에 익숙해지고 그럼으로써 유튜브 문법을 익히게 된다. 어떤 유튜브 장면을 보았을 때 다음 장면에 무슨 그림이 나올지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예측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과 같다. 시청자는 유튜버가 내포하는 정치적 견해에 무/의식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하고 본인이 지지하지 않는 유튜버의 영상을 차단하기도 한다. 영상 매체에는 영상 매체만의 언어가 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미디어 세계의 다중언어사용자라고 할 수 있다. 가면을 바꾸어 쓰듯 각 매체마다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감성적인 사진을 올리고 트위터에서는 괴상한 사진을 올리는 것처럼, 책에서 읽어내는 언어와 다른 콘텐츠에서 읽어내는 언어는 같을 수 없다. 사흘의 뜻을 헷갈리는 사람에게 '책 좀 읽어라'라고 강요하는 건, 마치 한국 가게에서 아무렇지 않게 외국어로 설명을 요구하는 백인과 같은 자세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금일'이라는 말이 익숙한데, 너는 왜 '오늘'이라는 말밖에 모르냐." 너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어야 한다고,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나를 대하라는 무례는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직면해야할 문제는 명징, 직조, 심심한 사과에 있다기보다는 디지털 환경 자체에 있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해력이 "회원국들의 만 15세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 집단이 최하위를 기록했다"며 "정보의 신뢰성을 식별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만약 이 지적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디지털 환경에서의 정보 식별 능력이 왜 떨어지는지,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게 우선으로 보인다. 책으로도 출간된 EBS <당신의 문해력>은 얼마나 문해력 문제가 심각한지, 어떻게 문해력을 ‘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방대하게 말하지만, 문해력이 낮아진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디지털 문해력도 책읽기를 통해 향상될 수 있다며 부단히 책읽기를 강조하는데, 과연 디지털 읽기,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문제가 단순히 책읽기로만 극복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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