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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15. 2024

떠나야만 하는 이유

여행의 팔 할은 날씨라고 한다. 외지에 가면 가장 먼저 바라보는 게 하늘이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부풀어 올라 여행의 기분이 상승되기도 한다.


오월의 첫 주, 어린이날이 들어있는 연휴기간 동안 주야장천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다.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비 오는 날씨 때문에 낙심을 할까? 그 안에 낙심하는 어른이도 있다. 연휴기간 동안 남해안의 섬 진도로 여행을 가기로 남편과 계획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정은 진도로 가는 중간에 전주들러 이틀을 묵은 다음 그곳에  사는 지인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는 코스. 가는 동안 오일장이 서는 곳이 있으면 들러서  시장구경도 하고 천천히 여유 있게 목적지인 진도까지 가기로 했다.


비 소식을 들은 후 여행을 취소해야 되나를 두고 망설이는 남편과 달리 나는 여행을 떠나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여행을 돌이켜보면 날씨가 좋지 않았던 날은 그런대로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날들이 기억 속에 오래 자리 잡고 있다. 


한라산 상에 거의 다다를 즈음에 갑자기  쏟아진 우박으로 인해 백록담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거나 캄보디아로 여행을 갔을 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내려 쏟는 폭우에 평소 맨 땅이었던 숙소 앞 공터가 커다란 물 웅덩이가 되고 그곳에서 물고기를 잡던 시골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행을 떠나는 날,  이른 새벽에 출발하였음에도 서울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연휴 첫날의 도로사정이 만만치가 않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인지 모두들 내일의 계획을 오늘로 앞당긴 듯 고속도로는 명절날의 고향길을 방불케 했다.  평소라면 세 시간 남짓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무려 세배나 넘는 긴 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했다.


전주 근교에 있는 남편 친구의 전원주택은 나의 전원생활 로망을 대리만족 시켜주기에  알맞은 곳이다. 이곳에서 이틀밤을 묵기로 했다.


저녁 무렵의 마을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다. 궂은 날씨 때문에 여행을 취소했더라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온통 붉은 황토밭인 이곳 들판에는 초록으로 물결치는 보리밭과 하얗게 핀 감자꽃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다. 감자꽃이 이렇게 예쁘다니... 리 지어 피어 있으니 더욱 아름답다. 파꽃과 부추꽃도 곁에서 한몫을 한다. 들판이 온통 꽃밭이다. 알싸한 찔레꽃 향기와 은은한 아카시아 향기는 덤이다.


처음 유럽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해바라기 꽃이 핀 넓은 들판을 보고 황홀해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곳에 비할바가 아니다.


개구리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어본 적이 있었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틀려주길 바랐는데 기상청 예보가 너무나  정확히 맞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점심 나절엔 텃밭에서 부추를 잘라다가 전을 부쳤다. 빗소리와 기름 튀는 소리가 서로 닮았고 부침개와 막걸리 어울린다. 처마밑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와 우리의 이야기가 뒤섞여 들린다.


비는  하루종일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낮잠도 잤고 낮잠을 잔 탓에 늦은 밤까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래층에서는 남편들의 코 고는 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밤이 이처럼 캄캄하였었나? 집 안의 불을 끄자 창밖의 풍경이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인적이 없는 오솔길에 세워진 가로등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비추고 있다. 시골은 가로등조차 낭만적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무척이나  반갑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 하루종일 내렸던 비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이제 비구름은 북쪽으로 옮겨가고 우리는 남쪽으로 떠난다. 진도로 가는 길에서는 또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떠나지 않았더라면  못할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소한 풍경에서 감동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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