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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22. 2024

꽃집 아저씨의 궤변

"아저씨 이 꽃 이름이 뭐지요

" 모르겠는데요"


생각이 나지 않는다거나 글쎄요... 가 아닌 딱 잘라서 모르겠다고 한다. 넓은 화원에 수많은 종류의 화분들이 있는데 꽃집 주인이라고 해서 꽃이름을 다 알아야 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당당하게 모른다고 딱 잘라서 하는 말에 나는 혹시 주인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저 꽃전문가 아니에요 사업하다 망해먹고 꽃집 차린 거예요"


묻지도 않은 말을 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나를 붙들고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중국집 사장이라고 해서 짜장면 만들 줄 아는 건 아니고 삼성 오너가 자기네 회사에서 만드는 물건 모두 다 만들 줄 아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건 웬 궤변인가 이 아저씨  낮술을 드신 걸까? 꽃이름 한번 물어보려다가 봉변을 당할 것 같아서

주춤주춤 화원을 나오려는데


"세상 일 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죠. 그래서 아예 계획을 세우고 살면 안 돼요. 안 그래요? 방금 손님께서도 그냥 꽃집 앞을 지나가다가 꽃을 보고 저희 집에 들어오신 거지 오늘 꽃을 사겠다는 계획을 했던 건 아니잖아요"


도를 닦고 내려오셨나...  마치 수행자. 같은 말을 하는 꽃집 아저씨,  하긴 그 말이 맞기는 하다.  남편과 함께 쇼핑몰에 갔다가 집으로 오던 길에 화원이 있어서 잠깐 들른 것이다.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꽃이 있으면 사고 아님 그냥  꽃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것인데 꽃집 아저씨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네, 그건 맞는 말씀이네요"


아뿔싸... 내가 어쩌자고 맞장구를 치고 말았을까.

꽃집 남자가 던져놓은 낚싯밥에 걸려들고 말았으니 꼼짝없이 이야기를 들어 쥐야한다. 꽃집 주인은 아예 입구 쪽 통로를 막고 앉더니 이젠 아주 인생강의라도 할 판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은 딸만 둘인데 큰 애무용을 전공하고 작은 애선생이다( 이 부분은  조금 자랑 같았다) 나는 갸들한테도 절대로 인생 계획 같은 걸랑 세우지 말고 그날그날 행복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오늘만 행복하게 살면 된다. 안 그래요 손님? 간간히 나의 추임새를 기대하며 자신이 마치 랍비라도 되는 양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쩌면 이 아저씨, 자신이 세워 둔 인생계획표에게 크게 한방 당하신 모양이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는 말은 절대 물어보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아마도 이야기 덫에 걸려 꼼짝없이 듣고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지금 밖에서 자동차의 시동도 끄지 은 채 내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갑자기 남의 인생강의를 듣게 되었으니... 어찌 됐건 빨리 이곳을 떠나려면 아무 화분이나 한 개 사서 들고 나오는 수밖에 없다.

 

대충 화분을 고르고 카드를 밀었다. 아저씨는 물건을 팔았는데도 뭔가 잔뜩 아쉬움이 남는 얼굴이다. 만원은 받아야 하는데 천 원을 깎아 주겠다고 한다. 이제야 조금 꽃집 주인다웠다.  


화분을 들고 화원을 막 나오려는데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한다


"손님 꽃이름은 덴... 덴... 덴드롱 이에요"


어쨌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화원을 새로 시작하면서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은 그 나름의 친절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궤변이기는 하지만 아저씨의 말이 전혀 틀린 말도 아니다. 내일의 계획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라는 말도 어찌 보면 지금에 충실하면 평생이 행복하다는 말로 들린다.  


그나저나 지금 내가 방금 고른 이 화분의 꽃 이름이 덴드롱이라고 했던가?  덴드롱은 지금 우리 집 창가에서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데, 같은 꽃인 줄 모르고 사 왔다.  할 수 없다 다시 바꾸러 가기보다 한 번 더 키워보자 덴드롱을 볼 때마다 꽃집 아저씨의 궤변이 생각나서 나는 웃게 될 것이다. 그럼 행복한거 아닌가?


꽃이 활짝핀 우리 집 댄트롱과  새로 사 온 아기 덴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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