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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12. 2024

잊는 것보다 잃는 게  낫다

열쇠를 어디에다 두었더라... 집에 들어오면 늘 걸어두던 홀더에 열쇠가 없다. 옷 주머니. 핸드백, 집안의 서랍등. 모두 다 찾아봐도 없다.


조금 전에 화원에서 꽃을 고를 때 떨어뜨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시 가서 찾아봤지만 물론 없다. 할 수 없이 남편이 소지하고 있는 열쇠를 빌려 복사를 맡겼다. 아직도 동네에 열쇠를 복사해 주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집은 아마 우리 집 밖에 없을 거라며 딸은 이번기회에 번호키로 바꾸라고 한다. 자기네 집 현관의 번호키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아직도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와야 하는 걸 무척 불편하게 여긴다. 가족들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대신 열쇠를 주며 잃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하는 엄마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열쇠가 좋다. 그냥 좋다. 이끼 낀 돌담장이 정스러운 것처럼, 오래된 툇마루가 편안한 것처럼, 무답시 좋다. 내 집안에 들어왔을 때 현관문을 열면 "찰칵"하고 인사하는 게 좋다. 알 수 없는 음향으로 "삐삐삐삐"하고 문을 열어 준다면 아마 나는 내 집이라도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딸네 가족과 일본여행을 갔을 때 그곳 료칸 역시 카드가 아닌 열쇠로 문을 여는 방식이었다. 만약 카드였다면 나는 필시 문 앞에서 허둥댔을 것이다. 집에서 늘 하는 대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왠지 더 정감 있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요즘 나는 생각한다. 내가 좋다고 마냥 우기는 게 혹시 아집은 아닐까... 젊고 세련된 사람이라면 빈티지 감성이라고 지도 모르지만 나이가 이미 빈티지가 되어 버렸으니 거기에 구시대적인 걸 추구하면 옛날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내 집은 내가 열고 드나들면 되지만 아래층에 살고 있는 세입자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다. 매일 업그레이되는 신문물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사는 신세대인데 그들에게 조차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게 하는 건 조금 미안한 일이다. 아래층 현관문은 번호키로 바뀌 주기로 했다.


기사님이 오셔서 현관문을 살펴보더니 두꺼운 강철로 제작한 문이어서 구멍 뚫기가 쉽지 않겠다고 한다. 몇 년 전 집을 다시 공사하면서 새로 만든 현관문이다. 힘들다고 했지 못한다고 한 건 아닌데 번호키를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열쇠를 고집하는 핑계가 하나 더 늘었다. 아래층에 사는 입주자에게 불편해도 그냥 예전처럼 열쇠를 사용해야겠다고 했더니 자신은 해외에서 공부하는 내내 열쇠를 썼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참 유럽사람들은 아직도 대부분 열쇠로 문을 연다. 그들도 번호키의 편리함과 안전함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그 또한 아이러니다. 불편함 속에 감춰진 오래된 것의 향기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조상이 만든 물건을 대물림하는 걸 자랑스러워한다는 그들과 열쇠를 좋아하는 나의 감성이 어쩌면 조금은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족을 붙인다면 열쇠는 가끔 잃어버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번호키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잃어버린 열쇠는 복사를 할 수 있지만 한번 어버린 기억은 영원히 재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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