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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19. 2024

너희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유월엔 화단에 꽃이 지고 텃밭에 꽃이 핀다. 장미가 시들어도 서운해하지 말란다. 노란  오이꽃이 줄을 타고 오르고 보기에도 푸짐한 호박꽃이 소담하게 필테니..


고추와 오이, 방울토마토등 연초록 베이비들아 어서 자라라 무럭무럭 자라거라 온몸에 흠뻑 물을 주면서 풋내 나는 아가들에게 문을 건다.


엊그제 초록이던 오이가 그새 노랗게  익었다. 보기도  아까운 걸 어떻게  따 먹나... 그냥 그대로 두고 보련다. 저녁에 슈퍼에서  개에 천 원하는 오이를 사 왔다.


풋고추가 달다. 아직 매운맛을 품지 않은 거야

살아봐야 알지 삶이 맵다는 걸 알면 너는 더 단단해지고 독해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도 참아줄게


25년 전 처음 주택으로 이사를 왔을 때 이웃집 할머니네 울타리에 누런 호박이 덩실덩실 려있었다. 시골 텃밭에서 자라는 호박이 풍요로워 보였다면 도심의 주택가  울타리에 열린 호박은 왠지 궁색해 보였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호박 따위는 안에 심지 않을 거라고..


아, 그때 그 할머니가 내 나이쯤 되셨던 걸까? 왜 호박꽃이 이뻐 보이는 건지...  올봄 호박씨 세 알을 심었다. 호박꽃이 피었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그러다가 어느덧  한 개 두 개 세 개... 하고 아직 열리지도 않은 호박을 세고 있다. 푸짐하고 후덕한 호박이 저렇게나 많이 열린다고? 호박넝쿨이 옆집 담장으로 기어간다.  누군가 예전의 나처럼 우리 집 호박꽃을 박대하지 않을까? 할 수 없지  그들도 나이를 먹으면  호박꽃이 예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방울토마토는 의좋은 형제들 같다. 올망졸망 오순도순  참 정겹기도 하다. 그런데  같은 날  꽃이 피고 같은 날 열매가 맺혔는데 익는 건 제 각각이다.  아침에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따서 남편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방울토마토는 서리가 내릴 때까지 우리를 공평하게 해 줄 것이다. 한꺼번에 익지 않고 천천히 하루 먹을 만큼씩 익는 토마토를 보며 너희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상추밭에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초록 상추잎에 앉아있는 나비의 노란 날개가 더욱 돋보였다. 오늘 보니 상추잎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살며시 상추잎을 들쳐보니 요놈 봐라... 살이 통통한 연두색 애벌레 한 마리가 숨어있다. 노랑나비가 너희 엄마였구나  가끔은 이렇게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는 거란다.


주인이 봄꽃에 한눈이 팔려있는 동안에도 열심히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은 텃밭식구들, 텃밭은 우리 집의 작은 마켓이다.


보글보글 된장에는 얼큰한 풋고추를. 오이는 시원한 냉채를 만들어 먹으면 좋겠네 애호박은 도톰하게 전을 부치고 아님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나물도 별미지, 물론 소쿠리 가득 상추도 씻어 놓아야지...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여름손님이 불쑥 찾아온다 해도 나는 짐한 밥상 한상 가득 차려 놓을 수 있겠다.


나의 작은 마켓의 싱싱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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