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5주년을 중환자실에서 맞이할 줄...
D+18
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결혼 45주년 기념일을 이렇듯이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맞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지나고 보니 45년이란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참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 키우고 결혼시키고 손녀 재롱보느라 세월가는 줄 몰랐다. 은퇴를 하고 이제는 둘이서 의지하며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라니 ..
아침에 담당 의사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제 마비가 정점을 찍었으니 남편의 회복이 희망적이라고 한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인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지금껏 받은 결혼 기념 선물 중에 가잠 큰 선물을 받은 것같다.
"여보 우리 내년 결혼기념일에는 둘이서 여행을 가기로 해요"
남편이 눈으로 대답한다.
*마비가 정점을 찍었다는 기쁜소식, 이제 점점 회복이 되기만 바랄뿐이다.
* 다리가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이 움직이는 것 같다.
* 스스로 호흡할 수 있을때까지 산소호흡기 제거를 늦춰주면 안되겠냐고 했지만
그럴경우 폐렴의 위험이 있어서 기관절제술이 용이하다고 한다. 남편에게 이말을 어떻게 전해줘야하나....
D+19
매일1시, 중환자실에 환자 면회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치료하는 환자가 남편인 듯 하다 벌써 20일째다. 중환자실 바로 옆에는 환자 가족 대기실이 있다. 이곳에서 그동안 많은 환자가족들을 만났다. 한결같이 우울하고 침통한 표정들이다. 마치 고흐가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처럼 어둠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면회도중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커텐을 치고 간호사들이 기저귀를 교환하는 모습을 열심히 익혔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할 수 있다. 남편이 저렇게 끈기있게 지켜온 생명인데 뭔들 못 하리,
체념한 듯 초윌한 남편의 눈빛, 20분의 짧은 면회시간 , 헤어짐에 아쉬운 빛이 살짝 감돈다.
"내일 또 올게 힘내" 길고도 먼 남편의 내일을 쉽게 말하는 것조차 죄스럽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열과 관계없이 몸이 뜨겁다고 한다. 세포가 살아나는 증거일까? 모든 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