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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Jun 08. 2022

식물 육아 매거진 발행에 앞서

왜 식물 육아에 대한 글을 쓰려하는가?

12년 차 엄마이자 8년 차 식물 집사, 현재 나를 정의하자면 이렇다. 쏟아부은 시간으로 따져보자면 엄마 경력이 제법 쌓였으리라 기대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무슨 일이든 10년을 지속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하는데 엄마라는 자리는 10년을 살아도 여전히 새롭고 긴장된다. 첫째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처음 하는 경험이다 보니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는다. 언제쯤이면 엄마라는 자리에 익숙해져 베테랑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건가?    


아이를 키우는 시간 동안 예상치 못한 일들에 당황하고 휘둘리며 지내온 기억이 많다. 그래도 육아 경력 10년을 넘어서면서 한 가지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 이쯤 되면 누구나 자신만의 육아 필살기 하나씩은 갖게 된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나의 육아 필살기는 ‘식물과 함께한 육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육아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부모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부모는 각종 박물관, 미술관, 공연을 보러 다니며 아이의 식견을 넓혀주는데 중점을 둔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캠핑을 다니는 가족, 전국 방방곡곡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며 넓은 세상을 소개해 주는 가족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육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부모들은 각자 나름의 육아 철학을 갖고 아이를 키운다. 


나의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되어 있기를 원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육아에 중점을 두는 부분이 나뉘게 된다. 나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를 바란다. 길가의 꽃과 나무를 보며 달라지는 계절을 느끼고, 자연에서 삶의 이치와 지혜를 깨달아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라나 몸도 마음도 건강한, 지혜로운 어른이 되기를 희망한다. 소박한 듯 보이지만 쉽지 않은 바람이다. 아이가 자라날수록 나의 바람은 곁가지를 늘려 하나 둘 욕심이 늘어간다. 이왕이면 수학도 영어도 글쓰기도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커진다. 엄마의 욕심 때문에 아이가 힘겨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초심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뒷동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나무에 핀 꽃을 보며, 길가에 떨어진 낙엽을 주우며,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너희의 어린 시절에 우리가 함께 자연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가 함께 즐거워한 시간들이 너희의 마음속에 양분으로 자리 잡아, 힘겨운 삶을 헤쳐 나가는데 힘이 되면 좋겠다. 그거면 되었다.'


소박한 육아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집 근처 주말농장을 분양받았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루 종일 흙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주말 동안만이라도 아이가 자연 속에서 흙 내음을 맡으며 지내면 좋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주말텃밭이었다. 아이는 작은 손에 호미를 들고 땅을 파 작물을 심고 물을 주며 정성껏 식물을 돌보았다. 앙증맞은 손으로 흙을 토닥이며 자신보다 작고 약한 존재를 돌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주말농장은 순전히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 역시 흙과 농사에서 배움을 얻었다. 몇 년간 텃밭에 작물을 심고 가꾸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의 노력만으로 농사가 잘 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날씨와 병충해 등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되 자연에서 주어지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을, 나는 농사를 통해 배웠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모들은 대부분 열과 성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지만 아이들은 결코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지 않는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아이들과 갈등이 빚어질 때면 농사를 통해 배운 지혜를 떠올린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아이들과의 관계가 조금은 편안해진다.


코로나로 실내생활이 길어지던 2020년부터는 주말농장에 가는 발길조차 부담스러웠다. 집안으로 화분을 들여 식물을 키웠다. 집 안에 식물을 들이니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식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우리 집 거실 창가에는 씨앗을 심어 키운 식물들이 여럿 있다. 나는 식물들 바로 옆에 책상을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생각만큼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면 나는 고개를 들어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초록빛 나무들은 종종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말 한마디 없는 조용한 친구들이지만 늘 그 자리에 싱싱하게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싱싱한 에너지를 전해준다. 초록색 잎 가운데로 선명하게 보이는 잎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뿌리로부터 빨아들인 물이 줄기를 타고 올라와 잎맥을 따라 흐르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끊임없이 물과 영양분을 순환시키며 보이지 않는 성장을 지속하다 보면 나무는 어느덧 훌쩍 자라 있다. 지난봄부터 아보카도 나무와 망고 나무 꼭대기에 새로운 잎이 계속해서 돋아나고 있다. 연둣빛의 작은 잎은 약 두 달에 걸쳐 몸집을 키우고 색을 변화시키며 빳빳한 초록색 잎으로 자라난다.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잎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나의 작은 즐거움이다.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시작한 무언가가 잎을 피우고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경이롭고 신비한 경험이다.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씨앗에서 싹이 터 어엿한 나무로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또다시 내 안의 무언가를 싹 틔워 보고 싶은 용기가 생겨난다. 느리게 흐르는 나무의 시간을 바라보며,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깊은숨을 쉬어본다. 느릿느릿 자라는 나무는 조급한 내 마음에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살아온 30년의 세월을 지나, 지난 10년간은 나 아닌 무언가의 성장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성장했고 식물이 자랐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과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관찰하다 보니 둘 사이에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식물이 환경에 맞춰 지혜롭게 생존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 안에 자리한 무한한 가능성과 힘을 믿게 되었다. 스스로도 잘 헤쳐 나갈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해 주면 좋을까 힌트를 얻곤 한다. 돌아보면 식물은 지난 10년간 훌륭한 육아 선생님이었다.   


육아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막막했던 부분은 이 힘겨운 육아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 끝난다는 명확한 지침이 있다면 힘든 시간을 넘기기 수월했을 텐데, 기약 없는 어려움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막막함 그 자체였다. 나는 이 막막한 마음을 텃밭에서 떨쳐냈다. 


텃밭 농사를 짓다 보면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작업이 바로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다. 한여름 텃밭에 가보면 자라라는 작물은 안 자라고 온갖 잡초들이 밭을 차지하고 있다. 매주 잡초를 뽑아도 어디서 그렇게 올라오는 것인지 무서운 기세로 몸을 키운다. 차라리 잡초를 키워 먹는 게 더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그렇게 기세 등등하던 잡초들이 가을 서리 한 방에 누렇게 사그라든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나던 잡초도 때가 되면 저절로 사그라드는구나. 모든 일엔 끝이 있구나. 이 육아도 언젠간 끝이 나겠구나.‘ 식물이 자라 꽃피고 열매 맺는 한살이를 바라보며,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끝이 있는 일인 줄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육아에 임할 수 있었으려나. 


여전히 나의 육아는 현재 진행형으로 어렵다. 서두에 밝혔듯 좀처럼 능숙해지지 않는 엄마라는 자리이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가르침은 어려움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준다. 오늘도 주문처럼 중얼중얼 되뇌는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고 나면 또 별 일 아닌 일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나의 육아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식물과 함께한 육아였다. 우연히 시작한 식물 생활이 나의 육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식물은 초록의 생생한 기운을 전달해주는 삶의 에너지가 되어 주었고 예민해진 마음에 위로를 건네주었다. 식물은 아이들에게 신비로운 자연 놀잇감이자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일깨워주는 존재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넓은 아이들은 세상을 더욱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식물 육아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는 말에 친구가 물었다.


"식물과 육아라…. 왜 그런 글을 쓰려는 거야?"

“돌아보면 아이를 돌보는 것도 식물을 키우는 것도 참 좋았어. 신기하면서도 충만한 배움의 시간이었달까? 좋아서 자꾸 들여다보니 자세히 보게 되고 식물도 육아도 더욱 좋아지더라. 이렇게 좋은 거 같이 해보자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


수많은 육아의 방법 중 하나로 식물과 함께 하는 육아를 소개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사람들이 글을 읽으며 ‘나도 화분에 작은 씨앗 하나 심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돌보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씨앗을 심고 식물을 가꾸는 일상을 실천해보기를 희망한다.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즐거움이 그들에게 생겨나게 될까 상상해 본다. 때로는 육아 멘토로, 상담가로, 친구로 다가와준 식물과 아이들, 늘 힘이 되는 남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어린이들을 돌보는 모든 부모님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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