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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Jul 02. 2022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텃밭의 치유

주말 텃밭은 대체 어떤 매력을 가졌기에 우리를 이리도 오랜 시간 붙잡아두고 있는 것일까? 


식물은 그 자체로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초록의 식물로부터 위로를 받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부모님 댁에서 독립해 작은 원룸에 살았다. 방이 얼마나 작았는지, 캄캄한 밤 내 한 몸 뉘이면 방이 가득 차 버렸다. 작은 방에 누워, 딱 그만큼  작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마음이 좁아졌다. 드넓은 하늘 아래 나에게 허락된 공간은 이 방 한 칸뿐이구나. 빼곡하게 들어찬 집 사이에서 마음은 고달팠다. 


그 무렵 친구가 생일 선물이라며 귀여운 선인장 화분을 건네주었다. 동그란 몸통에 가시가 삐죽삐죽 솟은, 근처 꽃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선인장이었다. 꽃다발 선물은 종종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흙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있는 식물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빛이 가장 잘 드는 창문틀에 선인장을 올려두었다. 선인장이 들어오자 삭막하기만 했던 공간에 마치 초록 물감이 번지듯 방 안이 포근해졌다. 나 아닌 다른 생명이 함께 하는 느낌이 좋아 선인장을 친구처럼 아꼈다. 삐죽한 가시마저 귀엽게 느껴졌다. 작은 방 안에, 나 이외에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말하자면 작은 선인장은 외롭던 20대의 나에게 반려식물이었던 셈이다. 이사를 다닐 때면 행여나 선인장이 다칠세라 귀중품과 함께 손수 화분을 옮겼다.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선인장이 길쭉하게 자라나는 동안 나의 외로운 20대도 함께 여물어갔다. 고독했던 마음에 초록의 따스함이 스며드는 경험이었다. 선인장의 위로에 길들여진 이후로 나는 늘 작은 화분 한두 개를 곁에 두었다. 처음 들어간 회사 컴퓨터 옆에도 선인장 하나, 자취방 창틀에도 하나. 식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선인장으로부터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작은 선인장 화분으로 시작한 식물 생활은 내 마음속에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파트, 빌라 등 마당이 없는 집에 살기 때문에 자연스레 흙을 밟을 기회가 많지 않다. 나 역시 태어나 한 번도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온갖 과실수와 꽃이 가득 핀 마당 있는 집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밥벌이를 위해 빼곡한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 귀농 귀촌의 꿈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용기 있게 그런 삶을 선택해 살아보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먼 훗날의 꿈으로만 남겨둔 채 팍팍한 도심의 삶을 견디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 역시 용감하게 삶의 터전을 자연 속으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주말 텃밭과 실내가드닝을 통해 소박하게나마 전원생활의 욕망을 조금씩 충족하고 있는 중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살기가 버겁다고 느끼는 이에게 식물과 함께하는 생활은 좋은 휴식처가 될 것이다. 식물이 주는 치유와 위로의 힘이 바로 오랜 시간 내가 식물을 붙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모로 느린 사람이다. 누군가를 만나 가까워지는 것에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생각의 속도도 느리다. 무언가를 빠릿빠릿하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느린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에게 도시 삶의 빠른 속도는 버거울 때가 많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느림의 위로가 필요하다. 느림의 위로를 얻고 싶을 때 나는 자연으로 시선을 돌린다. 자연의 세계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자연 속에서 탁 하고 마음이 풀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나무로 빼곡한 깊은 숲 속에 들어섰을 때, 드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저 멀리 지평선을 마주할 때,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둘러볼 때, 나도 모르게 ‘하아~’하고 깊은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느린 템포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깊은숨을 쉴 수 있다. 숨죽이고 살아온 일상에서 깊고 단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마음을 정화해본다.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나를 괴롭게 하던 일상의 소소한 갈등과 복잡한 일들은 별것 아닌 듯 그 무게가 가벼워진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조금은 느슨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이런 여유를 느낄 수 있어 계속해서 식물을 찾게 된다.


 텃밭 생활은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주말을 보내는 활동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만 좋아해서는 지속하기 어렵다. 나에게 텃밭이 치유의 공간이라면 아이들에게 텃밭은 어떤 의미일까? 아이들에게 텃밭은 즐거운 놀이터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의 모든 것이 놀잇감이 된다. 돌멩이를 주워다 쌓으며 놀고, 나뭇가지로 집을 짓기도 한다. 잘 자라는 잡초를 뽑아다 모래밭에 심어보기도 하고, 공벌레와 개미를 관찰하며 또 한나절을 보낸다. 옷이 흙투성이가 되고 손발에 흙이 가득 묻어도 개의치 않는다. 처음엔 맨 손으로 흙을 만지는 것을 꺼리던 아이도 '흙은 지지 아니야~'라는 엄마의 말에 안심하고 흙을 가까이한다. 


 요즘 주말농장들은 텃밭만 덩그러니 있는 곳도 있지만 그늘막이나 모래놀이터 등 이용객을 위한 편의 시설을 잘 갖추어둔 곳들도 많아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갈 수 있다. 텃밭에 가는 날 아침에는 유부초밥이나 과일 등 간단한 먹거리를 챙긴다. 농사일이 쉬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 3평 정도의 작은 텃밭에서는 할 일이 많지 않다. 작물 종류별로 두세 그루씩 심어 두고 놀이하듯 즐겁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잠깐 동안 밭일을 하고 대부분의 시간엔 벤치에 앉아 쉬며 음식을 먹는다. 텃밭에서 식물을 돌보는 일은 여행과도 비슷하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처럼 식물을 돌보는 활동을 통해서 다시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여행의 장점을 일상으로 녹여내기 위해 우리는 매 주말 텃밭으로 향한다. 차를 타고 잠시 달리는 것 말고는 크게 노력한 것이 없는데,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을 준다. 텃밭에서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의 나는 텃밭에 들어가던 나와 비교해 한결 가벼워진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점차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지만, 발전하는 과학 기술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소외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키오스크 주문을 못해 식사를 하지 못하고 식당을 돌아 나오는 어르신, 은행 창구가 줄어들어 ATM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든 어르신에 대한 뉴스를 볼 때면 남 일 같지가 않다. 어느덧 노년으로 접어드는 부모님이 이런 부분들에 대해 도움을 요청해 올 때 머지않아 나에게도 닥칠 일임을 직감한다. 굳이 미래까지 갈 것도 없다. 모두가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데 나만 멈춰있는 것 같은 불안감은 현대인의 고질적인 질병이다. 육아를 위해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된 뒤로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한다. TV, 책, SNS 등의 매체에서 내 또래의 여성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나만 이 집에 갇혀있는 듯한 기분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아이들은 또 어떤가.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바쁜 일상을 보낸다. 친구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느라 아이들의 마음은 지쳐간다.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그저 남들 가는 방향으로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어린 나이부터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생기 없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빠르게 나아가는 세상과 씨름하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이럴 때는 잠시 복잡한 곳에서 빠져나와 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마음을 이완시킬 필요가 있다. 식물과 함께하는 생활은 삶의 속도를 조절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초록의 식물이 자라 꽃피고 열매 맺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텃밭에서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삶을 돌아보게 된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말 텃밭이나 실내 가드닝이 좋은 휴식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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