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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Jul 28. 2022

도시농부와의 운명적인 만남

10개월 아기와 도심에서 농사짓기

2016년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대학 졸업 이후 줄곧 직장생활을 해오던 터라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도움받을 곳 없이 맞벌이를 하며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전업주부가 된 것 치고는 온전히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20대에는 직장 생활을 잘 해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달라짐을 느낀다. 그렇게 일 년 가량 갓난아기를 돌보며 평범한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보니 주말농장을 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둘째 임신으로 잠시 쉬고 있던 농사를 다시 지어보고 싶었다. 당시 첫 아이는 일곱 살, 둘째 아이는 생후 10개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다 집 근처에서 <도시농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나의 텃밭 생활에 대한 글을 쓰며 도시농부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겠다. <도시농부>는 도심 속 작은 텃밭을 일구는 농사 모임으로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회원이 함께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짓는다. 집에서 생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밭 한 편에 거름더미를 만들어 퇴비로 사용하며, 생태순환적인 삶을 실천하려 노력한다.


처음 도시농부와 만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3월 초, 10개월 된 둘째를 아기띠에 안은 채로 밭에 나갔다. 일찌감치 나온 도시농부 회원들이 밭에 오줌 액비를 뿌리고 있었다. 강렬하게 후각을 자극하던 그 냄새가 아직도 코 끝에 맴도는 듯하다. 나는 아기를 안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차마 맨손으로 오줌 액비를 만질 수가 없어 주변을 맴돌았다. 한 발짝 떨어져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아파트 단지 사이에 포근하게 들어선 밭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포근해졌다. “아기가 너무 어린데, 아기 데리고 농사 지을 수 있겠어요?” 도시농부 언니가 ‘어때, 직접 보니 못하겠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하고 싶어요!” 포근한 텃밭의 느낌이 좋아 또 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 일 많이 할 생각 하지 말고, 아기랑 같이 밭에서 논다는 생각으로 나와요!” 그날 이후 3년간 나는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아기를 안고 밭으로 향했다. 아직 걸음마도 못하던 아기는 그 밭에서 꼬마농부로 자라났다. 


도시농부의 1

4월이 되자 밭에는 쑥, 냉이, 달래, 민들레, 지칭개, 봄동, 큰 개불알풀, 개망초 등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이 풍성하게 올라왔다. 나는 쑥과 냉이 민들레 정도만 겨우 구별할 정도였는데, 오랜 시간 농사를 지어온 분들은 잡초더미 속에서 먹을 수 있는 봄나물을 잘도 골라냈다. ‘5월까지 염소가 먹는 풀’은 모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라 한다. 지천에 돋아나는 봄나물을 캐 부침가루에 개어 기름에 지글지글 부침개를 만들었다. 아이도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함께 봄나물을 캤다. 그래서 우리의 바구니는 나물 반 잡초 반이었다. 싱싱한 나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나물의 쌉쌀한 기운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여름 텃밭에는 무서운 기세로 잡초가 자라났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깔끔하게 잡초를 베어내어도 일주일 후 밭에 와 보면 다시 그만큼 자라 있다. 한동안은 자라나는 풀을 베어내는 것이 일이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우리는 일을 하다 힘이 들면 뽕나무 그늘로 숨어들었다. 날이 더워도 그늘 아래는 시원했다. 뽕나무에는 까맣게 오디가 달렸는데 잘 익은 오디를 따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다 보면 달큼한 과즙이 입안에 퍼지며 입과 손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씨익 웃는 아이의 입가와 혀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따로 심은 것도 아닌데 아예 밭에 자리를 잡고 매년 돋아나는 작물들이 몇 있었다. 달래, 부추, 대파는 매서운 겨울을 나는 동안에도 버티고 있다가 봄이 되면 개체수를 늘려 다시 자라난다. 애플민트도 그중 하나였는데, 햇빛과 양분이 풍부한 텃밭에서 무성하게 자라났다. 화분에서 키우는 것과는 색과 향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진했다. 겨우내 바싹 말랐던 애플민트는 날이 따뜻해지며 향긋한 새 잎을 올렸고 그 주위를 지나기만 해도 상큼한 향기를 풍겨 우리를 유혹했다. 무더운 여름날, 애플민트를 뜯어 물에 살짝 헹군 다음 절구에 짓찧어 즙을 내고, 미리 준비해온 탄산수와 레몬즙에 애플민트 즙을 곁들여 마시면 갈증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 


가을에는 배추 모종을 심는다. 겨울 김장을 위한 농사인데, 배추란 녀석은 농약 없이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배춧잎을 하나하나 들춰가며 배추흰나비 애벌레와 진딧물이 숨어있는지 살폈다. 애벌레 똥이 있으면 십중팔구 통통한 애벌레가 배춧잎 사이에 숨어있다. 애벌레를 잡아 그릇에 넣어주면 아이는 애벌레를 관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겨울 농한기에는 내년 농사를 위해 씨앗을 갈무리하고 농사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다. 

도시농부 텃밭의 시간은 평화롭고 느리게 흘러갔다. 그렇게 일 년, 이 년, 삼 년이 흘렀다. 

 

텃밭에서 식탁으로밭에서 해 먹는 요리

도시농부 텃밭의 커다란 뽕나무 아래에는 한낮에도 시원한 그늘이 드리웠다. 아침 일찍 모여 밭일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오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뽕나무 아래에 자리를 마련해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재료는 그날그날 밭에서 마련했다. 갓 뜯은 달래를 씻어 달래 간장 비빔밥을 해 먹고, 자연 발아한 질경이를 뜯어 질경이 밥을 해먹기도 했다. 감자를 수확한 날에는 감자를 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호호 불어가며 먹었고, 마늘을 수확한 날에는 마늘을 가득 넣은 볶음밥을 해 먹었다. 갓 수확한 작물들은 근사한 요리법 없이도 훌륭한 맛을 냈다. 매주 도심 속 밭으로 소풍을 나와, 밭 향기 가득 품은 풍성한 밥상 앞에 둘러앉아 평화로운 점심 식사를 즐기곤 했다. 도시농부 활동을 풍성하게 해 준 일등공신이 아니었나 싶다.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 만들기

밭에 오는 날에는 한 주간 집에서 모아두었던 음식물 찌꺼기와 쌀뜨물을 가지고 왔다.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음식물 찌꺼기는 버려지면 골칫거리이지만 퇴비로 만들어 활용하면 훌륭한 거름이 된다. 밭 구석에 퇴비장을 마련해 두고 음식물 찌꺼기를 넣고 낙엽으로 덮어주었다. 고기나 생선 등을 넣으면 부패하기 쉽고 벌레나 쥐가 들끓을 염려가 있어 주로 채소나 과일 껍질 위주로 모았다. 그 위에 쌀뜨물을 뿌려 발효를 도왔다. 집에서 쌀을 씻을 때 나오는 쌀뜨물은 그냥 버리면 물을 오염시키는데, 텃밭에서는 영양이 풍부한 귀한 물이라는 걸 알고 난 후, 페트병에 쌀뜨물을 차곡차곡 모아 밭으로 날랐다. 

봄부터 몇 달간 모은 퇴비 더미는 한여름이 되자 작은 동산 모양으로 솟아올랐다. 퇴비더미 안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일까? 중간에 한 번 퇴비더미를 뒤집어 섞어주었는데, 음식물 찌꺼기 잔해가 없어지고 까만 흙이 되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영양이 풍부한 비료였다. 퇴비를 뒤집어 줄 때 보니 그 안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후끈한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잘 발효된 퇴비더미는 내부 온도가 60도 이상으로 오르고 최고 70도 이상이 되기도 한다. 정성껏 만든 퇴비는 8월 배추 모종을 심기 전에 밭에 뿌려주었다. 퇴비는 감촉이 포슬포슬하고 향긋한 냄새가 났는데, 음식물 찌꺼기로 만든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매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그 양에 놀라곤 한다. 우리 아파트에서만 이 정도면 우리나라 전체로는 얼마나 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는 것일까.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어보며, 도심 곳곳에 이러한 퇴비더미가 많아진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장 농사지어 김장 만들기

요즘은 김장을 직접 담가 먹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예전처럼 김치를 많이 먹지도 않고 마트에 가면 손쉽게 각종 김치들을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 도시농부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김장을 담가 보았다. 무려 직접 키운 배추와 무, 쪽파, 마늘을 수확하여 담근 김장이었다. 

모종을 심어 배추를 기르고, 씨앗을 심어 무를 길러냈다. 배추 잎 사이사이를 뒤적여가며 벌레를 잡아가며 애지중지 키웠다. 김장은 1박 2일에 걸쳐 진행된다. 첫째 날 아침 밭에 나가 배추를 수확하는 것으로 김장이 시작되었다. 11월 말이라 날이 많이 추웠는데 배추를 모두 수확해 옮기다 보니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배추를 손질해 반으로 갈라 켜켜이 소금을 뿌려 하룻밤 절여두었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따끈한 방에 둘러앉아 마늘을 까고 재료를 다듬었다. 다음 날, 잘 절여진 배추를 씻어 물기를 빼고, 고춧가루와 마늘 액젓 등 각종 재료들을 버무려 속 재료를 만들었다. 말갛게 씻은 절인 배추에 빨간 김장양념을 슥슥 발라내니 맛깔스러운 김장김치가 완성되었다. 갓 버무린 김장김치와 함께 먹기 위해 넉넉하게 수육을 삶았다. 입 안에 아삭 거리는 김치를 씹고 있으니, 지난가을 밭에서 지낸 시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내 몫의 김치를 통에 담아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니 곳간을 가득 채운 듯 마음이 든든하다. 요즘 도심에서는 이웃들과 교류할 일이 많지 않다. 도시농부 회원들과 김장을 함께 담그며 끈끈한 이웃의 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같은 김치를 공유한 사이라니, 이 정도면 이웃사촌이라 할만하지 않은가. 

김장 담그는 일은 우리 아이들도 좋아하는 중요한 이벤트다. 배추를 키우는 일이 워낙 어려운 일이라 무만 키우고 싶지만, 아이는 김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배추를 키우자 조른다. 직접 모종 심어 키운 배추로 김장까지 담가 먹어본 경험을 한 아이는 김장김치를 꺼내 먹을 때마다 ‘직접 만든 김치’ 임을 강조한다. 김치 한 포기씩을 따로 담아 이웃에게 나눌 때, 할머니 댁에 배추 한 포기씩을 가져다 드릴 때 아이의 뒷모습에 뿌듯함이 베어난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가을 텃밭에는 무만 자라났을 텐데, 다행히 올해도 배추가 심겼다. 올해 김장김치는 또 어떤 맛을 낼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추억을 선물해 줄지 기대된다.  


텃밭에서 자란 아이꼬마농부

우리 아이들은 텃밭을 놀이터처럼 드나들었다. 첫째 아이는 다섯 살부터, 둘째 아이는 생후 10개월부터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 밭에 다니며 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삽질을 하고 씨앗이나 모종을 심는 손끝이 야무지다. 잡초와 작물을 구분할 줄 알고 작물이 심긴 두둑 위를 함부로 밟거나 지나다니지 않는다. 말 그대로 꼬마농부가 되었다. 꼬마농부들은 밭에서 공벌레를 잡으며 놀거나 지렁이를 관찰하고, 메뚜기를 잡으며 놀기를 좋아한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쑥쑥 자라 열매 맺는 것을 이해한다. 여름 뽕나무에 새까맣게 열린 오디 열매를 열심히 따 먹기도 하고, 배추 모종을 심어 김치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아이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식물의 한살이를 알고 자연을 이해하며 자라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더불어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깨달으며 생태순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꼬박 3년이란 시간을 도시농부와 함께 했다. 그저 밭에 가는 것이 좋아 나들이 가듯 텃밭을 일구던 나는 도시농부 활동을 통해 농사의 원리와 농부의 지혜를 배웠다. 매주 흙을 만지며 불안을 덜어내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은 종종 우리 가족이 소비하기에 양이 많아 가까운 이웃과 나누었다. 비닐에 담긴 호박과 고추, 토마토를 받아 든 이웃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더욱 많은 것을 내어주었다. 텃밭 생활은 삭막한 아파트에서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약간의 틈을 선물해 주었다. 몇 년 전, 도시농부의 텃밭이 주차장으로 개발되는 바람에 더 이상 함께 농사를 지을 수는 없지만 나와 내 가족, 더 나아가 우리 동네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준 도시농부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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