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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Sep 26. 2022

씨앗의 치유 정원에서

우리 집 거실 창가에는 씨앗을 심어 키운 초록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망고나무, 아보카도 나무, 사과나무, 도토리나무 등, 나무의 크기도 모양도 다양하지만 씨앗을 심어 키운 아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가족은 이곳을 씨앗의 치유정원이라 부른다. 코로나로 인한 길고 긴 고립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씨앗의 치유정원 덕분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 초부터 2년간 우리 가족은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 채 집 안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학교와 회사 이외에 사적인 만남은 전무했다. 당시만 해도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남편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무조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혹시나 코로나에 걸리면 한의원의 노인 환자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고, 코로나로 인해 격리될 경우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기도 했다. 회사원이라면 휴가를 내고 쉴 수 있겠지만 자영업자의 경우 휴업으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당분간은 고립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주만 참으면 되겠지, 길어야 한두 달 이겠지라고 생각한 고립생활이 2년을 넘어갈 줄은 몰랐다. 3학년 아이가 5학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며 극도로 조심한 덕분에 코로나를 피할 수 있었지만, 고립된 생활로 인한 심리적인 타격이 점차 커져갔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고 집안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이러스의 공포와 함께 일상적으로 누리던 즐거움을 빼앗긴 때문이었다. 학습도, 놀이도, 여가생활도 모두 집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조급함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아이들과 함께 사과를 깎아 먹다가 문득 사과 씨앗을 심어볼까 싶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얼핏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다. 사과를 먹다 말고 씨앗을 심자는 엄마의 말에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하는 듯 즐거워했다. 지루했던 일상에 한 줄기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접시 위에 촉촉한 키친타월을 올리고 그 안에 사과 씨앗을 넣었다. 과연 싹이 틀까? 확신은 없었지만 신선한 기대를 품고 며칠을 지났다. 사과 씨앗은 금세 물을 흡수하여 통통해지더니 이내 새하얀 뿌리를 쏘옥 내밀었다. “얘들아!!!! 사과 씨앗에 싹 났다!!!!” 

나의 다급한 호출에 거실에서 뒹굴던 아이들이 다다다다 달려왔다. 아이들은 행여나 뿌리가 다칠세라 조심조심 씨앗을 어루만지며 감탄을 이어갔다. 작은 화분에 흙을 넣고 사과 씨앗을 조심스레 심고 물을 주며 지켜보니, 며칠 지나지 않아 연둣빛 새싹을 올리고 사과나무로 자라났다. 


이후 우리 집 주방에서 나오는 씨앗들은 차례로 생명을 얻었다. 씨앗을 싹 틔우는 일은 아이들의 일상이 되었다. 파프리카도, 망고도, 아보카도도. 일단 씨앗으로 보이는 것이 나오면 촉촉한 키친타월에 집어넣고 보는 아이들이다. 


심어주지 않았다면 쓰레기로 버려졌을 씨앗들 속에 생명이 숨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는 이제 씨앗 속에 자리한 나무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사라졌을 씨앗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 모습을 보며 어렴풋하게나마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상외로 길어진 코로나 터널 속에서도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씨앗의 힘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외로운 이들이 많다. 외로움과 우울은 비단 독거노인이나 취약계층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1인 가구의 증가, 어려운 경제 상황, 길어지는 코로나 상황 등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울과 좌절을 경험한다. 


이렇게 각박하고 삭막한 사회 속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이 씨앗을 싹 틔우며 나만의 치유 정원을 가꾸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창틀에 작은 화분 하나 놓고 주방에서 나오는 씨앗을 그냥 심어 보는 거다. 씨앗이 싹터 자라나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위로와 치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을 심어 가꾸는 일이 비록 어떤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한 희망의 에너지를 조금을 불어넣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내려앉은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는 작은 노력으로 우리 모두 작은 화분에 씨앗을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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