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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Sep 30. 2022

씨앗을 닮은 아이들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최근 들어 식물 집사라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고양이 집사에서 시작된 말이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 듯한데, 그 표현이 찰떡같이 들어맞아 들을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난다. 식물 집사들은 집안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자리를 식물들에게 내어준다. 행여나 목이 마를까 화분 속 흙을 살피며 물시중을 들고, 환기를 위해 서큘레이터를 돌린다. 빛이 부족할까 싶어 식물등을 달고 온습도계를 설치해 식물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자 애쓴다. 말 그대로 식물 집사다. 


SNS에서 식물 집사들의 사진을 보면 그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틈만 나면 화훼단지에 들러 식물을 가득 들여오는 사람, 유행하는 식물은 빠짐없이 들여 식물원 같은 베란다를 가진 사람, 다육식물을 좋아하는 사람, 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 나는 씨앗을 심어 키운 식물을 좋아하는 식물 집사다. 씨앗부터 키운 식물들에 유난히 더 정이 간다. 씨앗이던 시절부터 싹이 트고 잎이 자라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해서 그런가 보다. 풀에서 늠름한 나무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본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든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내디뎠던 발걸음, 처음 엄마를 부르던 순간, 학교에 들어가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래서인지, 가끔 마음에 드는 식물을 들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쓰이고 눈이 오래 머무르는 식물들은 씨앗부터 키워온 식물들이다. 


씨앗은 주방에서 공수한다. 각종 과일과 채소를 손질하며 나오는 씨앗을 활용하는 것이다. 화분에 씨앗을 심는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우선, 과일(채소)에서 씨앗을 분리한다. 씨앗에 과육이 묻어 있으면 싹이 트는 과정에서 곰팡이가 생기기 쉬우므로, 씨앗에 과육이 묻어있는 경우 물에 깨끗이 씻어준다. 촉촉한 키친타월에 씨앗을 올리고 다시 촉촉한 키친타월로 덮어둔다. 4-5일이 지나면 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화분으로 옮겨 심어 주는 것이다.


망고 다섯 개를 먹고 씨앗 다섯 개를 얻었다. 망고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씨앗의 단단한 껍질 속에는 아몬드 감촉의 속 씨앗이 숨겨져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다섯 개 씨앗의 모양이 제각기 달랐다. 둥근 씨앗, 네모난 씨앗, 길쭉한 씨앗. 다양한 모양의 씨앗들을 촉촉한 키친타월로 감싸 동시에 발아시켜보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씨앗에서 뿌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뿌리가 나오는 모양도 속도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동일한 화분에 씨앗을 하나씩 옮겨 심었다. 이후 떡잎이 올라오는 모양도, 본잎이 나오는 시기도, 나무의 모양까지도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했다. 한 열매에서 나온 씨앗을 같은 조건에서 같은 방법으로 키웠는데도 자라는 속도와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다.


제각기 개성을 뽐내며 자라는 망고 씨앗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 집에 사는 두 어린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같은 엄마 아빠에게서 똑같은 유전자를 물려받고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두 아이는 신기하리만치 다른 성격이다.


한 아이는 밖에 나가서 때리고 오는 아이 한 명은 맞고 오는 아이다. 때리고 오는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지 지고 온 날에는 분이 풀리지 않아 식식대기 일쑤다. 글쓰기를 잘하고 공상하기를 좋아하며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다. 맞고 오는 아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에게 자기 몫까지 모두 나눠주는 일이 많다. 자기가 이기는 것보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중요한 듯 보인다.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정해진 규칙 지키는 것을 잘하는 모범생 타입이다. 한 아이는 혼이 나는 순간에도 딴청을 부리고 뒤돌아서면 혼났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한 아이는 작은 꾸지람에도 긴장하며 엄마의 훈계를 오래도록 기억하곤 한다. 양육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선호하는 타입이 있었으니, 아이들이 느끼기에 엄마의 태도가 달랐나 보다.


어느 날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는 나쁜 아이이고 얘는 착한 아이 같아요. 저는 좋은 점이 없는 것 같아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제발 그렇지 않다고 말해줘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대답해야겠다.'

잠시 머리를 굴리며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고민했다.


“너희 둘이 성격이 좀 다른 것은 알고 있지? 그런데, 성격이 ‘다른 것’이지,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린 게 아니야. 그 어떤 성격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이지.”


“하지만 얘는 착한데 저는 나쁘잖아요. 저는 엄마 말도 잘 안 듣는데 그게 무슨 장점이 있어요?”


"그래, 네가 엄마 말을 안 듣는 편이긴 해. 하지만, 엄마 말을 잘 듣지 않는 게 꼭 나쁘기만 한 걸까? 엄마 말이 언제나 백 프로 맞기만 한 건 아니잖아. 엄마 말을 안 듣고 다른 시도를 해봐야, 엄마를 뛰어넘어 더 훌륭한 일도 해낼 수 있는 거야.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도 어린 시절에 부모님 말씀 안 듣는 괴짜들이 많았다고 하잖아. 네가 나쁜 건 아니야!"


대답을 듣는 아이의 표정이 점차 밝아지는 것을 보니, 꽤 괜찮은 설명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 자존심이 좀 상하긴 하지만……. 제가 동생에게 배울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쟨 왜 저렇게 착한 거예요? 물러 터진 토마토 같은 녀석이에요."


"그럼, 당연히 동생에게도 배울 점이 있지! 그건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야. 엄마도 너희들에게 많이 배우는걸. 어른도 어린이에게 배우는 게 많아!"


나름 훈훈하게 상황을 마무리했다고 안도하는 찰나,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더 밝고, 애교 있고, 외향적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치셨다. 타고난 성향이 그러했으니 바뀌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내 고유한 성격이, 더 나아가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다고 느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내가 가진 고유한 개성이었는데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쁜 점', '고쳐야 할 점'으로 생각돼 온 것이다. 그 영향으로 나는 여전히 사회적 가면을 쓴 채 내 고유한 성향을 감추려 애쓴다. 


흔히 육아서에서 말하는 ‘00개월엔 ~해야 한다’던가 ‘몇 학년엔 뭘 해야 한다.’하는 이야기를 보며 남들 다 한다고 이것저것 따라 하다 보면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서 다른 이의 이야기는 가볍게 참고만 할 뿐, 눈과 귀를 우리 집 아이들에게 집중한 채 우리 아이들만의 사례를 관리하는데 더 힘쓴다. 내 아이에게 집중해 들여다보면 아이가 가진 고유한 장점이 눈에 보인다. 아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아이들마다 타고난 것이 다를 진데, 어찌 같은 모양의 틀에 맞춰 키울 수 있단 말인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아이가 쓴 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준다. 부모가 할 일이란 그저 아이가 성장하고 발전해나가는 이 신비로운 순간을 지켜보며 감탄하는 것 아닐까? 우리 집 두 어린이가 가진 고유한 개성을 존중해주며,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당당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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