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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02. 2022

떡잎부터 건강하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잘 자랄 나무는 떡잎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잘 자랄지 아닐지, 어떻게 떡잎만 보고 알 수 있을까?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속담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식물의 씨앗을 심으면 가장 먼저 뿌리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잎을 올리기 시작하는데 그 잎이 바로 떡잎이다. 떡잎은 다양한 영양분을 저장하고 있거나 혹은 양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제 막 피어나는 어린 식물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떡잎이다. 떡잎이 제 역할을 다해 양분이 모두 소진될 무렵이면 식물은 본격적으로 본잎을 피워 광합성을 시작하고 스스로 영양분을 생성해낸다. 이처럼 떡잎은 성장 초기 식물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떡잎이 손상되면 식물은 생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다. 결국 떡잎이 튼튼하고 실하면 식물은 잘 자랄 가능성이 높고, 이 때문에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있어 튼튼한 떡잎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어떤 떡잎을 피워내야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첫 아이를 낳았을 때 꼬물대는 아이를 들여다보며 이 작고 순수한 존재가 어떻게 하면 거친 세상을 무사히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비슷할 것이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아이만큼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무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니겠는가. 그러나 누구나 살아가며 고난에 부딪히게 되고 부모가 언제까지고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하나하나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스스로 난관을 헤쳐 나갈 힘을 주는 것이 관건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떠한 부분을 도와주어야 아이는 홀로 우뚝 설 수 있을까? 아이가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성격 형성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자아존중감과 좌절 내성이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면 살면서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아존중감이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는 마음이다. 이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으로, 자기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가 하는 것이다. 무언가 성공하고 잘해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때 자존감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다.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고 자라온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게다. 무언가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불안했고 주변 사람들의 눈 밖에 날까 전전긍긍했다. 늘 긴장한 채로 생활하다 보니 쉽게 지치고 피로감이 몰려오곤 했다.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긴장이 극에 달했다. 아직 업무에도 서툴렀고 혹여나 실수할까 봐 두려웠으며 작은 실수라도 한 날이면 두고두고 머릿속에 그 순간을 떠올리며 자책했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동기 중에 나와 달리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직원이 있었다. 나와 상황은 비슷한데 우린 무엇이 다른 걸까 한동안 그를 관찰해 보았다. 그 친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설사 실수하고 실패했을지라도 금세 털어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을 잘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여 계속 관찰하며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낮은 자존감이 삶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알기에, 아이들은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 ‘네 덕분에 행복해’ ‘네가 있어 엄마의 삶이 더욱 따뜻하고 즐거워’ ‘넌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들이다. 아침에 눈 뜰 때, 밥 먹으며, 양치를 도와주다가, 잠자기 전 이불속에 누워서, 눈 마주칠 때마다 틈만 나면 말을 건넨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이 처음엔 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낯간지러운 말들도 자꾸 하다 보면 숨 쉬듯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엄마의 고백을 들은 아이 얼굴에 뿌듯한 마음이 번지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사소한 성공을 계속해서 경험하다 보면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하기에, 아이가 작은 손으로 엄마 아빠를 도와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라도 진심으로 그 노력에 감사를 표하려 한다. 


작은 성공들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키웠다면, 작은 실패들을 통해 좌절 내성을 기를 수 있다. 단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고 계속해서 성공만 해온 사람은 처음 겪는 실패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좌절에 대한 내성, 회복 탄력성이 중요함을 실감한다. 


지금껏 살아오며 겪었던 실패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치렀던 수능과 논술 시험, 취준생 시절 탈락의 순간 등 당시에는 인생이 끝날 것처럼 느껴지던 실패들도 마흔이 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저 작은 에피소드 정도로 남아있다. 한 번 넘어져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시도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 삶의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이 줄어든다.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데는 누군가의 변함없는 믿음과 지지가 큰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무언가에 도전해서 성공을 맛볼 때 진심으로 기쁘다. 그리고 도전에 실패해 좌절하다가도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는 더 기쁘다. 결과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흔들림 없이 지지해주는 누군가의 믿음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그저 지켜보고 믿어주고 응원하며 아이의 매 순간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리라.


사람이 태어나 자라는 데 있어 주 양육자의 역할이 바로 떡잎과 같다고 본다. 부모는 아직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생명체를 먹여주고 재워주며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돕는다. 지난 10년간 엄마라는 자리에서, 혼자 힘으로는 먹을 수도 걸을 수도 없던 나약한 존재들이 걷고 말하고 자라는 모습을 관찰한 시간은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인생 초기의 그 순간들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 그 시절 떡잎의 역할을 하며 나를 키워냈을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냈다. 꽤 오랫동안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했다 여기며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다. 늦게나마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낼 수 있어 다행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볼 것은, 떡잎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때가 되면 말라 떨어져 버린다. 떨어진 다음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아이에게 뭔가 해줄 수 있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엄마의 역할을 해나가야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떨어져 줘야겠다. 잘 살아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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