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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Sep 26. 2022

아이들에게 텃밭은 거대한 놀이터다

첫 아이는 산속에 있는 유치원에 다녔다. 덕분에 매일 숲 체험을 하고 가끔은 밭에서 농사도 지으며 만족스러운 유치원 생활을 했다. 농사 체험을 한 날에는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활동사진을 찍어 공유해주셨다. 자기 얼굴보다 큰 무를 뽑아 들고 있거나, 감자 줄기를 들어 올려 주렁주렁 매달린 감자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치원에서 수확한 무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아이에게 “무 뽑는 것 재미있었겠다!”하고 물어보니 “엄청 재미있었어요. 근데 딱 하나밖에 못 뽑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서고 차례차례 수확을 한 뒤 선생님 앞에서 사진을 찍었단다. 몇 개 더 뽑고 싶었는지 아쉬운 눈치다. ‘원 없이 뽑게 해 줬으면 힘들다고 난리 쳤을 걸? 후훗.’ 아이가 수확해 온 무는 다음날 아침 소고기 뭇국이 되었다. 


몇 년간 관찰한 바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대부분 텃밭 체험을 좋아한다. 텃밭을 그저 거대한 놀이터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이 힘든 일도 아닐뿐더러, 그나마 힘든 일은 어른들이 하고 아이들은 모종을 심거나 열매를 수확하는 재미있는 체험 위주로 경험하게 되니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텃밭은 살아있는 자연 교육장이다. 상추 모종은 어떻게 심고 수확은 어떻게 하는지, 방울토마토 꽃은 무슨 색이고 어떻게 열매가 달리는지, 참외와 수박의 암꽃과 수꽃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이들은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받아들인다. 작은 손으로 땅을 파 감자를 심고 방울토마토를 수확한다. 수박을 먹고 나온 씨앗을 밭에 심어 두고 주말마다 얼마나 자랐나 들여다본다. 어느 여름날 무성하게 자라난 수박넝쿨 사이로 야구공만 하게 자라난 수박을 발견한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초등학교 4~5학년이면 식물의 한살이에 대해 배우는데, 몇 년간 텃밭 생활을 했던 우리 아이는 굉장히 흥미를 보이며 수업을 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텃밭 활동이 학습적인 부분에도 도움이 된 것이다. 


텃밭 작물을 가꾸는 활동 이외에도 부수적인 즐거움이 많다. 

텃밭은 살아있는 곤충 체험장이기도 하다. 도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무당벌레와 메뚜기, 사마귀, 나비, 잠자리, 노린재, 달팽이 등 다양한 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다. 텃밭의 곤충들은 밭에서 아이들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모자라 종종 집으로 입양되어 온다. 밭에서는 해충 취급을 받던 곤충들이 집으로 입양되어오면 귀여운 반려 곤충으로 신분이 상승한다. 지금껏 우리 집에 입양되었던 곤충들을 잠시 소개해 보려 한다.


배추를 키울 때는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계속해서 잡아줘야 한다. 그대로 두면 애벌레들이 배추를 다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연둣빛 통통한 애벌레는 아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종종 나비가 알을 낳아둔 배춧잎을 발견하면 그대로 아이에게 건네주는데 아이들은 한참 관찰하다 조심스레 곤충채집통에 넣어 집으로 들고 온다.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면 상추와 배추를 넣어주며 열심히 키운다. 어느 날, 통통해진 애벌레가 사라져 살펴보니 곤충채집통 천장에 번데기기 되어 매달려 있다. 그리고 며칠 뒤 번데기 껍질을 찢고 나와 하얀 나비가 되었다. 한참 동안 젖은 날개를 말리던 나비가 드디어 날갯짓을 시작하자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뚜껑을 열어 하늘로 날려 보내 주었다. 멀리 날아가 보이지도 않는 나비를 눈으로 좇으며, 나비야 잘 살아라 중얼대는 아이의 모습을 나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텃밭 농부들이 이를 갈며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달팽이다. 상추, 배추 등 연한 잎들을 무서운 속도로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팽이도 보이는 족족 잡아 없애야 한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멀리 던져버리곤 하는데 아이들은 달팽이도 키우고 싶어 했다. 딱 두 마리만 키워보기로 합의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달팽이가 좋아할 만한 채소와 과일을 수시로 넣어주며 관찰한다. 신기하게도 달팽이는 먹은 음식 색깔의 배설물을 남긴다. 당근을 먹으면 주황색 배설물을, 상추를 먹으면 초록 배설물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신기해 다양한 색깔의 먹이를 넣어주곤 했다. 

달팽이는 무서운 번식력을 자랑한다. 어느 날, 두 달팽이가 머리를 맞대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마리 모두 알을 낳기 시작했다. 책을 찾아보니 달팽이는 자웅동체이지만 다른 달팽이와의 짝짓기를 통해 알을 낳는다고 한다. 한 마리가 한 번에 100개 가까이 알을 낳는 것을 보니, 텃밭에 왜 그리도 많은 달팽이들이 생겨났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달팽이 알은 날치알과 비슷한 크기였는데, 그 안에서 딱 날치알만 한 아기 달팽이들이 태어나는 모습을 관찰했다. 달팽이의 짝짓기와 알 낳는 장면, 알에서 부화한 달팽이의 모습까지 지켜본 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아파트 화단에 놓아주었다. (텃밭에서 자라는 토종 달팽이라 방생하였는데, 혹 외래종 달팽이라면 이렇게 방생하면 안 된다.)


텃밭 주변에 저절로 자라나는 식물들이 놀잇감이 되기도 한다. 봄이면 밭 주변으로 쑥과 냉이가 빼곡하게 올라오는데, 아이들은 바구니 하나 들고 쪼그리고 앉아 쑥을 뜯고 냉이를 캔다. 종종 정체불명의 잡초가 딸려 들어오기도 하지만 냄새를 맡아가며 쑥과 냉이를 찾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아이들이 뜯어온 쑥과 냉이를 깨끗이 씻어 부침가루와 함께 부쳐내면 향긋한 봄내음을 머금은 봄나물 전이다. 입 안에 쌉쌀하게 퍼지는 봄나물의 향기가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작은 텃밭이 있는데,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든다. 텃밭 가꾸기가 아이들의 정서에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이렇게 텃밭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실행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아이들이 텃밭을 놀이터 삼아 자유로이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탁 트인 자연 속 위험하지 않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받아들인다. 흙과 식물, 곤충을 만지며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이 자연의 한 일부임을 배운다. 어린 시절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흙과 자연을 접해본 경험은 아이들이 자라나 성인이 된 후에도 자연을 더 친숙하게 느끼도록 돕는다. 모든 아이들이 자연을 가까이하며, 자연의 풍요로움을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주위 사람들에게 텃밭을 강력 추천하고 있다. 혹시 햇빛, 벌레, 흙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텃밭이 힘들게 느껴질 수 있으니, 그럴 경우 집 안에 작은 화분을 하나 들이고 그곳에서 식물을 돌보는 경험을 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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