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남이 6년간 텃밭에 따라다니면 생기는 일

by 씨앗의 정원

“주말에 비 온대. 밭에 물 안 줘도 되겠다!”

“푸하핫! 지금 비 온다고 텃밭 생각한 거야? 여보가 그런 말을 하는 날이 오긴 하는구나!!”




남편은 (겉으로 보기엔 된장찌개 좋아할 것 같은 푸근한 스타일이지만)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마시고 브런치를 좋아하는 차도남이다.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점심시간에 종종 회사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샌드위치로 식사를 하며 책을 읽곤 한다.


처음 아이와 함께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밭에 갔을 때였다. 아이와 나는 좋아라 땅바닥에 붙어 흙을 만지고 노는데, 남편은 어딘가 불편한 모양새로 앉지도 못하고 이곳저곳 서성이기만 한다.


“여보, 왜 그래?”

“어...... 그게 말이지......”


한참을 머뭇대다 남편이 말한다.


“나는 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그래? 그럼 어쩌지? 이번까지만 할까?”

“아니야, 애기도 좋아하고 여보도 좋아하는데 계속해야지. 난 여기 따라오는 건 괜찮은데, 일이 재미있진 않다는 거야.”

“그럼 일은 하지 마. 내가 할게!”


쿨한 협상 이후 남편은 정말로 텃밭에서 일을 안 했다. ㅋㅋㅋ 우리를 밭에 데려다주고 그늘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우리 일 하는 것을 평화롭게 바라보았다. 종종 힘에 부치는 일이 있으면 달려와 도와주기도 했지만 주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몇 년을 밭에 다니면서도 손에 흙 한 번 안 묻히던 남편이 변하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예전에는 주말마다 새로운 장소에 다니기를 좋아했는데, 코로나가 심해지면서부터는 주로 텃밭에만 다녔다. 작년엔 텃밭을 좀 더 분양받아 일손이 더 필요했다. 종종대는 내 모습을 보기 안쓰러웠는지, 혹은 밭일에 조금 관심이 생긴 건지, 남편이 조심스레 밭으로 와 물조리개로 물을 주기 시작했다.




“나, 장화 하나 살까? 물 주는데 신발이 많이 젖네!”


철물점에서 농사용품을 사는데 남편이 장화에 관심을 보인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난 망설일 것도 없이 남색 장화를 집어 들었다. 장화를 사 주면 왠지 밭일을 꾸준히 할 것 같았다!!


-빙고!!!!


남편은 이제 밭에서 열심히 물을 준다. 호스로 뿌리는 게 아니라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 밭에 뿌려줘야 하고, 한 번만 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흙이 흠뻑 젖을 만큼 줘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묵묵히 물을 주는 남편이 고맙다.


언젠가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살자는 내 말에 씨익 웃으며 거절했던 남편인데, 몇 년 더 이렇게 살다 보면 OK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서서히 밭에 스며드는 남편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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