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재료, ’때‘

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2

by 글쓰카이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여름날,

나는 인생이 김치전을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신랑이 김치전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주방에서 잠시 멀뚱히 서 있었다.

그러다 초보 주부, 별 수 있나 싶어서 초록 검색창을 열었다.

레시피 검색 중인데 신랑이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둔다.

“부침가루를 물에 섞어서 김치만 넣으면 돼.”

듣기엔 아주 간단하고 쉽게 들렸다.

문제는 바로 그 반죽의 농도라는 거다!

찾아본 레시피에는 부드럽게 흘러내릴 정도라고 하는데,

‘부드럽게 ‘라는 표현이 얼마나 애매한지!

반죽은 마치 유연한 사고방식처럼,

너무 묽으면 퍼지고, 너무 되면 딱딱해지니까

적정선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결국 동영상까지 찾아보며 반죽을 몇 번 흘려 떨어뜨려보고 나서야 비슷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매인 재료 등장 할 차례!

우리 집 김치는 시어미니표 김치, 나의 친정인 부산 큰 이모표 김치

이렇게 두 가지 버전이나 보유 중이다.

내가 언제 김장을 담글지는 모르겠지만(정말 언젠가 하겠지?)

아직까지 김치는 얻어먹는 귀여운 새댁이다.

각각 다른 매력의 맛을 뽐내는 김치가 들어있는 김치통이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김치전은 그래도 좀 묵은지가 맛있을 것 같다.

시어머니표 김치는 지난겨울 김장 하고 나서 가져온 것이므로,

시간 적으로 더 묵어있을 부산 큰 이모표 김치를 꺼낸다.

김치를 도마에 올려 적당하게 썰었다.

적당히 씹히는 김치의 식감이 전의 맛을 살려 줄 테니까.

너무 잘게 말고 적당히 잘게.

어렵게 농도를 맞춰 둔 반죽에 잘게 썬 김치를 넣어 설렁설렁 섞었다.

여기까지 하고 보니 이제 굽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데?

하고 잠시 우쭐해 본다.


팬 위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반죽을 한 국자 떠 올리자마자.

기름과 반죽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 마냥

지글지글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창밖의 빗소리 역시 전의 지글거리는 소리를 닮아 있다.

다 같이 친구인가 보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전이 더 당기는 걸까?

잠시 맛있는 소리에 잠식된 채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고민의 시간이 어김없이 또 찾아왔다.

’언제 뒤집어야 하지?‘

‘테두리가 약간 말라가는 것 같은데, 뒤집개로 살짝 들어볼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려야 하나?’

괜히 팬의 손잡이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며 타이밍을 느껴보려 했지만,

그런다고 느껴질 리가 없다.

역시 초보 주부 별 수 없다.

레피시에도, ‘언제 뒤집으세요’라는 타이밍에 대한 정답은 없었다.


한 손으로 멋지게 팬을 휙 휘저으며 리드미컬하게 뒤집는

허세는 일단 접어 두었다.

얌전히 뒤집개를 들고 와 중심을 잘 잡고 재빨리 뒤집었으나…

이런, 타버렸다.

너무 오래 기다렸나 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전이라는 간단해 보이는 요리도 ‘때’를 알아야만 제대로 완성된다.


그래도 나에게 몇 번의 반죽이 더 남아 있다.

두 번째 시도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 실패를 떠올리며 서둘러 뒤집었더니 한 면이 익지도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전이 찢어져서 팬 위에서 사방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 찢어진 조각들을 꾹꾹 눌러 이어 붙여 소생해 보려 해 봤지만, 결국 모양이 엉망이 되어 접시에 올랐다.

첫 번째 타버린 전과 찢긴 두 번째 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세상 모든 일엔 다 ‘때’가 있구나.

그 ‘때‘를 알아차리는 건 초보에게 쉽지 않은 일이구나.


내가 요리 초보이듯,

세상 모든 일이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여러 번 뒤집다가 실패하고, 몇 번은 태우고,

수없이 부서지며 조금씩 배우고 알아가게 되는 법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전을 굽는 일과 많이 닮아 있었다.

너무 서두르면 찢었고, 너무 기다리면 태운다.

아이가 신발을 신겠다고 하다가 자꾸 엉뚱하게 신을 때,

답답한 마음에 결국 내가 신겨버릴 때가 있다.

그 순간 아이는 혼자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다.

서두르다 찢어진 것처럼, 부모의 조급함이 아이를 망가뜨릴 때가 있다.


반대로 기다림에도 때를 놓친 적도 많다

말이 느렸던 아이가 답답함을 속으로 삼키고 참다 참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면,

태워진 전처럼 그 순간 내 마음에도 새까맣게 타고 만다.


대신 이런 날도 있었다.

블록을 반복해서 무너뜨리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계속 다독이고 다시 함께 쌓았다.

마치 찢어진 전을 조심스레 붙여가듯,

아이의 실패를 위로하고 기회를 다시 주었다.

아이가 흔들리거나 넘어져도 어른은 기다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 이어야 한다.

삶은 그렇게 배우고 익혀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아이와 함께 실패하며 조금씩 배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런 과정의 반복인 것 같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직 어른의 모습을 한 나 역시 여전히 김치전을 실패한다.

앞으로 살면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태우고, 찢고,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조차도 언젠가 익숙한 감각이 되고,

삶 속에 배움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


전을 뒤집는 타이밍을 익혀가는 것처럼,

삶도 한 번 더 넘어지고, 붙이고, 다듬으며

그렇게 배우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아직 서툴고 부족하지만,

언젠가 나도 아이도 노릇노릇 잘 익은 전처럼 한층 단단해질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러니 삶도 한 번 더 뒤집어 보는 거다. 익숙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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