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린 음식보다 차린 마음

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3

by 글쓰카이

냉장고 문을 열고는 냉장고 안의 냉기를 멀리 보내는 한숨이 푹 튀어나왔다.

시댁에서, 친정에서 새내기 주부를 위해 보내주신 반찬들이 가득했지만,

매번 같은 반찬을 꺼내 먹는 게 왜인지 마음에 걸렸다.

초보 주부답게 할 줄 아는 요리라곤

다섯 손가락 다 굽히지 못할 정도였으니, 속상한 마음까지 얹혔다.


‘일단 장을 보러 나가면 무언가 해결이 되겠지!’

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바삐 신발을 신었다.

장바구니를 야무지게 어깨에 메고는 마트의 이 코너 저 코너를 탐색하듯 둘러보았다.

밀키트 같은 걸 이용하면 편하게 식사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왠지 새내기 주부 주제에 그건 자존심이 상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을 남편이 먹어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오기 부리듯 자리 잡았다.

우습게도, 이런 고민조차 소꿉놀이처럼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샐러드 코너에서 멈춰 섰다.

이거다 싶었다.

야채는 몸에 좋으면서도, 씻기만 하면 간편했고,

집에 있는 하얀 그릇에 가득 담아 올리면 보기까지 예쁠 것 같았다.

오, 그릇까지 생각하는 것이 제법이다.

다만 샐러드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떤 걸 사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요즘엔 1인용으로 간편하게 포장된 샐러드도 있었지만 가격이 꽤 비쌌다.

‘그냥 양을 넉넉히 사서 보관하는 법만 알면 금방 먹겠지.’

나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야채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내게 가장 익숙한 초록빛 야채들부터 담았다.

양상추, 치커리, 상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싱그러운 아이들이었다.

여기에 당근, 파프리카, 방울토마토도 추가했다.

색감을 더해주는 알록달록한 아이들은 완성된 샐러드의 분위기를 살려줄 거라 믿었다.

소스는 가장 무난한 시판 오리엔탈 소스를 골랐다.


지금은 샐러드에 베이컨이나 삶은 달걀, 병아리콩 같은 재료를 응용해 추가하기도 한다.

견과류를 부셔 뿌리며 보기 좋은 디테일을 이제는 고심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샐러드의 본질에만 충실하면서 정성을 기울였던 초보주부였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퇴근하기 전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서둘러 손을 씻고 야채를 하나씩 씻기 시작했다.

친정엄마가 사주신 야채 탈수기를 이제야 써본다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빙빙 돌렸다.

탈수가 끝난 야채들을 한입 먹기 좋게 썰고 초록빛 야채들부터 먼저 담았다.

그 위에 알록달록한 야채들을 얹고 소스는 작은 그릇에 따로 담아 두었다.


완성된 샐러드는 생각보다 훨씬 사랑스러웠다.

식탁 위에 먼저 샐러드를 올려두고,

부모님의 손맛이 담긴 반찬들도 소담스럽게 담아 나란히 올렸다.

물끄러미 식탁을 바라보니, 씻고 썰고 담기만 한 샐러드였지만

그 역할이 제법 커 보였다.

작은 노력이었지만 정성을 담은 덕에 식탁은 한층 푸짐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반찬이 아무리 많아도 차리는 이의 마음이 담기지 않았다면 과연

그 식탁이 진정 ‘완성’됐다고 할 수 있을까?

음식은 몸에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주지만,

그 음식을 담은 식탁은 우리에게 정서적 에너지까지 전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손길만 더했을 뿐이지만, 내 마음이 온전히 담긴 덕분인지

식탁이 이전보다 훨씬 풍성해 보였다.

그 깨달음의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알록달록한 샐러드로 분위기까지 더해진 식탁이 사랑스러워 보여서

사진을 찍으려던 차, 남편이 퇴근해 들어왔다.

남편은 식탁에 앉으며 제일 먼저 샐러드를 보며 말했다.

“샐러드 맛있겠다!“ 그리고 한입 크게 먹고는 덧붙였다.

“저녁 차리느라 고생했네, 고마워~”


그때, 나는 제대로 깨달았다.

샐러드가 있든 없든,

반찬이 하나 더 있든 없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차리는 이의 정성과 마음이 깃든 식탁,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와 함께 그 식탁을 나눈다면,

그 순간이 바로 완성된 식탁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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