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건 없더라, 된장찌개마저도.

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1

by 글쓰카이

한 번도 식사 준비를 해본 적 없었던 내가,

아침에 신랑을 출근시키고 난 뒤 주방 대신 노트를 펼쳤다.

계획형 인간답게 오직 오늘 저녁,

그것도 신랑과 함께 먹을 메뉴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작 내 점심은 전혀 생각도 안 나고,

온 머릿속은 저녁에 뭘 차릴지로 가득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가장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뭐냐고 여쭤보았다.

엄마는 ‘쉽게 끝낼‘ 수 있다며 된장찌개를 추천하셨다.

어릴 적 엄마가 뚝딱뚝딱 금방 만들어 주셨던 된장찌개였기에 전혀 의심 없이 메뉴를 선택했다.


“먼저 멸치로 육수 내고 된장 풀어. 거기다 애호박, 양파, 버섯 썰어 넣어. 팔팔 끓이다가 두부 넣고 한 번 더 끓이면 끝! 맛은 중간중간 봐가며 간 맞추면 돼. 칼 조심하고 손 베이지 말고!”

통화는 그렇게 빠르게 끝났지만,

이게 지금 간단한 게 맞는 건지 잠시 의심했다.

그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곧바로 초록 검색창도 열어 몇 가지 레시피를 훑어보았다.

그런데 검색할수록 혼란만 가중되었다.

레시피마다 제각기 다르고, 어떤 걸 따라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하면서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급 몰려왔다.

결국 엄마의 설명과 비슷한 걸로 골라 대충 해보기로 마음먹고 가까운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 들어서는 그 순간 이게 작은 전쟁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엄마가 말씀하셨던 야채와 멸치를 찾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험난했다.

육수용 멸치를 사야 하는데 대체 어디 가야 있는 건지, 멈칫하다가 어렴풋이 떠올린 엄마 심부름 기억을 더듬어 마트 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메모장에 적어둔 재료 목록을 손에 꽉 쥐고, 카트 하나를 살짝 밀면서

괜히 비장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다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드디어 야채 코너 발견!

신선한 걸 골라야 한다기에 애호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았다.

마치 5성급 호텔 주방장이 최고의 재료를 엄선하는 것처럼.

하지만 머릿속엔 ‘이 호박이 맞는 거겠지? 애호박이라고 적힌 거 맞지?’라는 걱정들만 되뇔 뿐이었다.

그렇게 과하리만큼 신중한 눈빛으로 야채들을 담고 나니 내가 된장찌개 하나에 이토록 애쓰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허무감이 들면서

이 전쟁에서 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의 조언대로 큰 냄비에 물을 받고 멸치를 넣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막연히 냄비 근처를 지켜보며 ‘언제까지 끓여야 하는 거지?’ 싶어졌다.

스마트폰은 늘 가장 믿음직한 조수다.(아, 아니지. 마스터 요리사겠지.)

육수는 30~40분 정도 끓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야채 준비를 시작했다.

야채들을 조심스럽게 씻어 도마 위에 놓고 칼을 들었다.

제대로 칼질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손 베지 않고 야무지게 호박과 양파를 써는 내 모습에 살짝 놀랍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다듬어진 야채들이 가지런히 놓이자 마음속에서 은근한 성취감 같은 게 올라왔다.

‘나 요리 체질인가?’ 하는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냄비를 열어본 순간 투명하던 물이 약간 색이 변해 있었고 온 집안 가득 멸치 냄새로 금세 채워졌다.

그 친숙하면서도 깊은 냄새.

내가 썰어낸 야채들을 넣으며 마치 요리 프로그램 속 주인공처럼 된장을 풀었다.

몇 차례 맛을 보니 예상과는 달리 싱거웠지만 어떻게 더 간을 맞출지 고민스러웠다.

‘소금을 넣어야 하나? 된장을 더 풀어야 하나?’ 머릿속에서 갖가지 생각이 엉켰다.

겨우 결정 끝에 소금을 살짝 넣었지만, 맛은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더 손대다가 이마저도 실패할까 봐 겁났다.

끓었으니 두부를 반듯 네모, 깍두기 모양으로 잘라 냉큼 넣고 불을 낮췄다.

“된장 들어갔으니 된장찌개지 뭐.”라고 타협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어느덧 신랑이 퇴근해 들어왔다.

부엌에서 풍긴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에 신랑은 한껏 반색하며 “오~된장찌개야?”라고 외쳤고,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몇 시간을 골머리 한 상황들은 다 잊어버리고 ‘뭐 이 정도쯤이야.’하는 표정으로 눈썹을 올리며 가소로운 미소를 보냈다.


엄마가 보내주신 반찬들을 나름대로 소담하게 접시에 담고,

중간에는 오늘의 주인공 자리를 비워뒀다.

엄마에게 배운 기억,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 그리고 오늘 하루 나에게 있었던 모든 사건을 곱씹으며 신랑에게 아주 생색을 내며 요리 과정을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미소를 보내주던 신랑이

자리에 앉자마자 숟가락부터 들어 뜨거운 된장찌개를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서둘러 “맛은 보장 못하지만…”하고 부끄러운 변명을 급히 얹었다.

신랑은 된장찌개가 미처 식도를 다 넘어가기도 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음, 맛있다!”하며

내내 입 꼬리에 걸려있던 미소가 환한 웃음으로 번졌다.

덧붙여 “된장찌개 끓이느라 고생했네~. “라고 해주었다.

그 순간 나의 점심까지 건너뛰고 몇 시간을 된장찌개를 위해 애써온 수고가 따뜻하게 보듬어졌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는 건 그저 일상이었다.

고마움은 몰랐고, 당연하게만 여겨졌다.

엄마가 뚝딱뚝딱 만들던 된장찌개도, 내가 해보니 뚝딱이 아니었다.

재료를 사고, 썰고, 끓이는 모든 시간, 이 당연했던 과정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요구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알고 보면 누군가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사랑 덕분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동안 차려졌던 따뜻한 집밥 한 끼, 엄마의 손맛이 가득했던 찌개와 반찬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건 엄마가 나를 살찌우고, 키워주었던 마음이었다는 걸 나는 된장찌개를 끓이며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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