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허리를 숙이지 못하고, 고지식하고, 아부를 떨지 못해서 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고. 예전엔 그 말을 들으면 별생각 없었는데, 요즘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서 보인다. 술자리에서 남들 다 하는 아부 하나 못 떨고 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웃기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지독하게도 아버지를 닮았나 보다. 아버지도 그런 상황에서 나와 똑같이 행동했을까? 문득 내 인생이란 것은 나선형 DNA 안에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아버지의 모습이 내 안에서 되풀이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그 씁쓸함 속에서도 묘한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낀다. 어쩌면 이것이 '핏줄'이라는 것의 힘일지도 모른다.
DNA는 우리의 외모뿐 아니라 성격, 행동까지도 결정짓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고지식함, 아부를 떨지 못하는 성격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일까?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DNA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DNA의 굴레를 벗어나, 우리만의 삶을 개척할 수 있다고.
아버지를 닮은 나의 모습이 때론 답답하고 힘들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나가야 한다.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길이자, 아버지의 삶을 넘어서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