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 아홉 번째 이야기 : 독고다이 전투출사
지난 5월 문래창작촌 출사 이후 업무가 바빴다. 같은 달, 청주에 출장 갈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도통 마음의 여유가 나지 않아 자택 인근 도림천 정도만 거닐었다. 결국 청주에 가서 업무 차 사진기를 다시 한번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견본주택이 북새통을 이루는 일은 없었다. 입장객 제한, 방역 매뉴얼 적용 등 코로나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다소 여유롭게 사진을 촬영했다. 당일 상사는 광각렌즈를 가져와 여러 구도를 연출해 렌즈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출장을 마치고 올라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대로 가다가 업무에 한정해 개인 카메라를 사용할 판이었다. 회사 비품은 그대로 둔 채 말이다. 감가상각 같은 걸 고려할 필요 없었지만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이에 6월이 되어 출사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당일 출사에 동행하기로 한 친구가 있었으나 사내 직원의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렇게 혼자서 추천받은 출사 명소인 종로 익선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 10시 전후에 도착해 말 그대로 '열심히' 사진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온몸을 역동적(?)으로 활용해 다양한 사진을 남기려 했으나 정작 남는 건 없었다. 분명 익선동 카페 거리는 볼거리가 풍부했지만 그동안 자료 사진을 담아내는 데 익숙해 마음 놓고 출사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즉, 초보 중의 초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여유는 고사하고 마치 업무를 수행하듯 전투적으로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의 눈으로 익선동이 가지고 있는 '멋'을 포착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사진 속에서 결국 몇 장 건지지 못했다. 분명 이 곳의 지리를 잘 알거나 익숙한 사람과 동행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컨셉이 확실한 음식점, 카페가 많아 무엇을 찍어도 있어보였다. 지난달 문래창작촌 출사 때와 달리 곳곳에 DSLR 카메라 또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서 출사를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다급히 곳곳을 포착하는 나보다 한결 여유가 느껴졌다.
한숨 돌릴 겸 카페에 들어가 마카롱과 자몽 에이드로 허기를 채웠다. 허락을 받고 카페 내부도 촬영했으나 미숙한 실력으로 온전히 담기 어려웠다. 차라리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게 나을 판이어서 홍보 부탁한다는 사장님의 말에 멋쩍게 웃음지었다.
그렇게 익선동 곳곳을 돌아다녔다.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정오를 넘기자 사람이 북적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스쿠터를 가져온 터라 이동은 수월했다. 차라리 특정한 장소에 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에 서촌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시인 '이상의 집'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서촌에 도착해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혼자 출사를 하다보니 여유가 없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여유는 물론, 배려도 없었다. 당시 친구는 사내 직원의 코로나 확진으로 검사를 받고 귀가한 참이었다.
게다가 잠도 설쳐 스트레스도 굉장할 터. 그래도 친절히 연락을 받아줬고 나중에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 침착하고 이성적인 척 하더니 밑천이 여기서 드러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심호흡했다.
이번엔 꼭 여유를 되찾으리라고 마음먹으며 아이러니 하게도 여유를 잃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