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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로롯 시장과 나이트 바자, 치앙마이 감각의 시장들

- 시간을 거래하는 치앙마이 와로롯 시장과 나이트 바자 -

by 마르코 루시

태양이 정오의 열기를 조금씩 내려놓을 무렵, 와로롯 시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철제 지붕 아래로 스며드는 바람은 시장의 리듬을 조용히 정돈한다. 점심 이후의 시장은 분주함 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느긋하다. 3층 건물의 중앙 홀에서 올려다보면 목제 난간이 둘러친 발코니들이 층층이 이어지고, 형광등이 밝게 비추는 아래로 넓은 중앙 통로가 펼쳐진다. 양쪽 벽면을 따라 늘어선 상점들에서는 말린 망고와 캐슈너트, 두리안 칩의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뒤섞여 이상하게 조화로운 향기를 만들어낸다. 스마트폰 속 구글맵에서는 단순히 'Warorot Market'이라 표시되지만, 이곳 사람들이 '깟 루앙(큰 시장)'이라 부르는 이 공간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1층 중앙 통로를 걷다 보면 치앙마이의 진짜 맛이 보인다. 투명한 비닐포장에 가지런히 담긴 말린 망고는 황금빛으로 윤이 나고, 캐슈너트와 마카다미아는 크기별로 정렬되어 있다. 태국어로 쓰인 빨간 글씨 간판 아래로 두리안 칩, 바나나 칩, 코코넛 과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상인들은 샘플을 건네며 미소 짓고, 관광객들은 가격표의 바트 표시를 계산기로 환산하느라 분주하다. 에어컨은 없지만 3층 높이의 천장과 개방된 구조가 만들어내는 자연통풍이 생각보다 시원하다. 목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공간의 성격이 바뀐다. 발코니 난간에 서면 와로롯 시장의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3층 높이의 중앙 홀 전체가 발밑으로 펼쳐지고, 1층에서 바삐 오가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위에서 보니 하나의 큰 흐름처럼 보인다. 아래층의 소란스러운 에너지와 달리, 이곳에서는 시장 전체의 기운과 리듬을 천천히 음미할 여유가 생긴다. 목제 난간에 팔꿈치를 기대고 서서, 치앙마이 사람들의 일상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모자이크를 관찰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오후 5시가 되면 도시의 분위기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와로롯 시장을 나와 창클란 로드를 따라 걷다 보면 풍경이 단계적으로 바뀐다. 먼저 만나는 것은 나이트바자 쇼핑스트리트의 현대적인 상가들이다. 낮에는 조용했던 매장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에어컨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차가운 공기가 거리로 새어 나온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깔끔한 디스플레이와 조명들이 점차 밝아지면서, 전통 시장의 소란스러운 에너지가 차분한 쇼핑가의 질서로 바뀌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걸으면 진짜 나이트바자가 시작된다.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진열된 가판대 사이로 여러 나라 여행객들이 흥정하는 소리가 거리를 채운다. 마치 도시가 서서히 화장을 하듯, 낮의 현실적인 필요에서 밤의 환상적인 즐거움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15분의 걸음 안에 압축해서 경험할 수 있다.


깔래(Kalare) 야시장으로 들어서면 마치 축제 현장 같다. 철골 기둥들 사이에 걸린 하얀 천막이 천장을 덮고, 그 아래로 오렌지색 사각 랜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무지개색 깃발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공간 전체에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시멘트 바닥을 따라 늘어선 스탠드들 사이로 맥주 냄새와 레몬그라스 향이 섞여 든다. 노란색 "BEER" 간판 아래서는 차가운 생맥주를 따르는 소리가 들리고, 음식 스탠드에서는 QR코드가 붙은 현대식 결제 단말기 옆으로 그린 컨테이너에 담긴 신선한 야채들이 색색으로 빛난다. 고산족 상인이 만든 은팔찌의 가치는 은의 무게가 아니라 그것을 만든 손길의 이야기에 있다는 것을,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밤 8시가 넘으면 진짜 야시장의 시간이 시작된다. 철골 지붕 아래 돌아가는 대형 선풍기가 더운 공기를 휘젓고, 형광등과 오렌지 랜턴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조명 아래서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생기 있어 보인다. 샐러드를 만드는 아주머니의 능숙한 손놀림, 맥주잔을 든 관광객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무지개색 깃발들이 선풍기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 흘러간 팝송을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스탠딩 가수의 노래가 야시장 심포니를 만들어낸다. 이 도시의 낮과 밤은 이처럼 다른 삶의 속도를 품고, 각기 다른 온도의 시간이 얽혀 하나의 숨결이 된다. 낮에는 생존을, 저녁에는 경험을, 밤에는 추억을 만들어내는 이 연속된 공간들에서 치앙마이의 진짜 매력이 드러난다.


결국 치앙마이의 시장들은 시간표가 아니라 감정표로 움직인다. 오후의 나른함에서 시작해 저녁의 설렘을 거쳐 밤의 취기로 마무리되는 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여행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와로롯의 목제 난간에서 갈래 야시장의 무지개 깃발로 이어지는 하루의 서사 속에서, 변화하는 것은 조명과 장식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교감이다. 오렌지 랜턴 불빛 아래서 결제하는 순간에도,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도, 치앙마이의 시장은 그렇게 오늘도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 가는 것은 말린 망고나 은팔찌가 아니라 시간의 감각이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즐기면서. 철골 지붕 아래서 무지개 깃발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그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엔 여전히 낮의 온기가 남아 있다. 치앙마이의 하루는 그렇게, 느리지만 풍성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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