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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우 Jun 28. 2018

육아휴직의 명을 받자옵고

여느 조직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외교관은 인사에 더더욱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사 결과로 국내에서 어떤 부서에 근무하느냐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선진국에서 근무하느냐,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이 창궐하는 최빈국에서 근무하느냐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와 아내는 둘 다 외교관이기 때문에 각자 지구 반대편에 발령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가 결혼했을 당시만 해도 부내 외교관 커플이 2쌍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40쌍도 족히 넘는다. 부부 외교관이라고 해서 특별히 같은 공관에서 함께 근무하도록 하는 정책은 없다. 오히려 과거 어떤 시점에는 부부 외교관을 강제로 떨어져 살도록 각자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도 했다


(참고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부부 외교관에 대한 정책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할 수 있는 가정 친화적 인사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부 외교관은 동일 또는 인근 공관으로 발령을 내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 


아내가 제네바 대표부로 발령을 받았을 때 나는 아내가 임기 2년을 채울 때까지 제네바에서 1년을 연수하고 이어서 1년을 육아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1년 연수 기간이 끝날 무렵이 되니까 솔직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내 외교부 경력이 20년 차였는데, 외교부 동년배 중 육아휴직을 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경력 20년 차 정도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바탕으로 본인의 전문분야(양자외교, 다자외교, 경제통상 등)와 관련된 해외 주요 대사관의 관리자급 직위에 발령받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의 성과가 나중에 본부 고위급 간부로 진출하는 데 발판이 된다. 


이렇게 커리어상 중차대한 시기에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은 예전의 가치관으로 비춰 볼 때 솔직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한마디로 공직에 별 관심이 없는 이상한 직원으로 치부되기에 십상이었다. 지난 20여 년간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뛰어온 인생이었는데, 육아휴직을 함으로써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외교관으로서 국익 수호를 위하여 외교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조직에서 인정을 받아 승진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연수가 끝나고 현업에 복귀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제네바 대표부보다는 다른 나라에 있는 대사관에 발령을 받게 될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 


나는 2008년에 2년간 콩고민주공화국에 발령을 받아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다시는 가족과 떨어져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인사철이 되니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내가 외교 일선에 복귀할 것으로 여기고 이런저런 자리에 지원하라는 이야기였다. 아내하고도 상의했다. 


“여보, 연수가 끝나가는데 어떻게 하지? 육아휴직, 정말 할까? 현업에 복귀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그거야 당신 커리어니까 당신이 잘 알아서 결정해야지.” 

아내는 역시 쿨했다. 그러나 내심 ‘이 양반 이럴 줄 알았어. 언제는 육아휴직할 것이라고 큰소리치더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제네바에서 연수가 끝나면 육아휴직을 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던 이유 중 하나는 아내가 아들 한 명에 2년씩 총 4년을 육아휴직하는 동안 커리어상 불이익을 감수하고 가정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내의 일방적인 희생 덕분에 나는 비교적 순탄하게 외교부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외교부 선배들이 농반진반으로 나의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 질책성 발언을 한 적도 있었다. 


“임상우 씨. 너무한 거 아니야? 어떻게 맨날 김민선 씨만 휴직하고 커리어 관리는 임상우 씨만 하냔 말이야.” 

결국, 육아휴직을 결정하고, 인사과에 육아휴직계를 제출하였다. 


정기인사 결과가 공지되는 날 동년배들은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를 찾아서 대사관의 참사관 또는 공사참사관 인사발령을 받았고, 나는 ‘육아휴직을 명함’이라는 인사발령을 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아내는 내 인사발령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의외로 많은 외교부 동료 선후배들이 아주 좋은 결정이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남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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