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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우 Jun 21. 2018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맘껏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스위스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것들은 무엇일까. 청정한 공기, 푸르른 알프스산맥, 에메랄드빛 호수, 목가적인 풍경, 선진화된 생활 수준…….  


여행으로 접하는 나라와 살아가면서 겪는 나라의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 부부는 직업이 외교관인 만큼 다양한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과 문화를 경험하며 산다. 스위스는 온 가족이 가서 살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 아내의 발령지가 스위스로 정해지면서 우리 가족은 새로운 풍경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애들아, 우리 가족 곧 있으면 스위스에 가서 살게 될 거야.”  

“스위스? 거기가 어딘데”  

“알프스의 하이디 알지? 그 하이디가 사는 나라말이야.”  

“와! 그럼 알프스 산에서 양 떼 몰고 그러는 거야? 신난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이들은 하이디처럼 살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목가적 풍경의 이면에는 처절한 분투가 있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 글은 어쩌면 그 기록이기도 하다.  


스위스에 와서 보고 느낀 것 중 가장 놀란 것은 스위스 어린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한국 어린이들과 달리 스위스 어린이들은 공부에 대한 압박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밖에서 뛰어논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다양한 놀거리를 통해 아이들은 창의적이며 자유롭게 성장한다. 


세상에나, 놀 거리가 이렇게나 많은 나라라니. 그동안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한 한국에서의 아이들로서는 속은 기분이었을 테다. 아이들에게는 꿈만 같은 나라임이 틀림없지만 새로운 외국어를 익혀야만 적응할 수 있는 이국이기도 했다.  


나는 스위스에서 주부로 신분이 바뀌었다. 20여 년간 전 세계를 누비는 외교관으로 생활하다가 갑작스레 육아휴직을 쓰고 주부로 살기란 전쟁터에서 살아남기와도 같았다. 어쩌다 스위스에 와서, 본업을 내려놓고 두 아이를 돌보는 주부 아빠가 된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듯 우리 집안에서도 여태껏 아내가 일방적으로 희생해왔다. 부부가 똑같이 외교관 신분임에도 한 사람은 경력을 쌓아가고, 한 사람은 휴직을 반복하며 집안의 대소사와 육아를 책임져왔다. 두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늘 한쪽의 희생이 필수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희생을 강요받는 아내, 사실상 아빠 없이 커가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점점 커져갔다.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도 커질 무렵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스위스로 떠나기 전, 막연한 걱정과 반드시 해내겠다는 결심이 뒤섞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주부 세계의 열악한 실상을 미리 알았으면 주부로의 변신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나로서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신분으로 살아가기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빠에게도 매일이 도전일 테니 말이다.  


제네바에서 2년간 주부로 생활한 것은 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동안 남자로 태어나서 너무나 당연하게 누려왔던 기득권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지의 세계에서 두 아이의 유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자 소중한 추억이었다. 단언컨대 제네바에서 육아를 책임지는 주부로서의 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남성 육아휴직은 차치하고, 육아휴직 제도 자체를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직장이 적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육아휴직 경험을 글로 써내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이 상향 평준화되어서 어느 직장에서나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감히 글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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