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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Jul 08. 2021

'언니의 인생 품앗이' 서비스

언니 네트워크 - 여성의 경험이 돈이 되는 사업 아이디어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아줌마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사고파는 사이트가 있으면 어떨까? 그러니까 최근에 진진이가 드라마를 보고 의대를 가고 싶다고 했단 말이지. 의대 가는 방법은 인터넷에 안 나온단 말이야. 근데 애를 의대 보낸 엄마들이 엄청 많을 거잖아, 이런 엄마들이 그 네트워크에 속해있으면 그 엄마들에게 애를 어떻게 공부시켰는지 물어보는 거지. '


내 주변 생활의 달인들


내게는 언니가 두 명이 있다. 

대학만 졸업하면 스스로의 밥벌이 정도는 본인이 반드시 해야만 집에서 붙어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것만 같은 집안 분위기, 서로 입 밖으로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인 그런 분위기.. 엄마는 엄격했고 우리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인이 되었다.


언니들은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본인 청결, 방청소, 집안일.. 이런 것들을 제일 잘 못하던 나만 직장인으로 남았다.

꼬박꼬박 일어나서 출근하는 일 외에 딱히 잘하는 일이 뾰족이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던 나만 여전히 직장인이다.

두 사람은 어쨌거나 결혼과 동시에 '경단녀'가 되었다.


그녀들은 일터에서의 경력을 더 이상 살리지 못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달인이 되었다.



'언니, 이번에 베트남 여행을 가려는데 말이지.'

'응,  OOO호텔이 방 컨디션은 별로라도 애들 놀기에 수영장이 아주 넓어서 좋고, OOO호텔은 수영장이 거의 워터파트라서 예약이 빨리 마감되니까 지금 들어가서 보는 게 좋겠어. 참 베트남 여행은 OOO여행사가 젤 잘하더라. 거기 공항 픽업 서비스부터 1일 여행 패키지까지 동남아 관련된 건 다 있어.'


'언니, OOO 동네로 이사 가는 건 어떨까?'

'응, 내가 애들 먼저 키워봐서 알잖아. 진진이 같은 남자애들은 중고시절 친구랑 환경이 너무 중요해. OOO는 가까이 유해시설도 없고 학군도 나름 괜찮은 편이니까, 난 찬성이야. 거기 특히 유명한 중학교 많은데, 알고 있어?'



남편은 언니들을 '생활의 달인'이라고 부르는데, 살림하고 육아하는 데 깨알 같고 디테일한 중요한 정보들을 엄청 많이 알고 있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언니들의 경험과 정보가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다 알아낼까' 싶을 정도로 스스로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야 얻어낼 수 있는 생생한 정보들을 언니들은 많이 알고 있다. 

내가 그런 정보를 다 파악하려면 인터넷을 꽤 오랫동안 뒤져야 한다. 혹은 아무리 시간을 들여서도 알아낼 수 없는 정보도 있다. 언니들로부터 나오는 여러 정보들 중에서는 단순 인터넷 서칭만으로는 파악이 어려운, 맘 카페 정회원이어야 알 수 있는 고급 정보들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는 기혼여성이라면 누구나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과 정보를 교환하기를 원한다. 좋은 학원 정보에서부터 학교 친구들 성향까지 모든 걸 쫙 꿰고 있는 '정보통'엄마도 있고, 엄마들로부터 조금씩 나오는 정보를 모아 보면 꽤 쓸모 있는 내용이 되기도 한다. 




경단녀라는 말이 참 별로다.


아이를 막 출산하고 산부인과 입원 3일째 퇴원하는 날 아침, 그날 퇴원하는 산모들이 모두 모여 신생아를 안는 자세부터 모유 수유하는 방법까지 초보 엄마로서 기초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 있다. 간호사 선생님이 '출산하고 다시 일하러 안 나가시고 육아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짧은 3개월의 출산 휴가 이후에 출근할 예정이었고 회사에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일터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퇴원하는 신생아 엄마가 9명쯤 있었던 것 같은데, 6명이 손을 들었다. 나는 의외로 일터로 복귀하지 않고 살림과 육아를 전담할 엄마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6명 중 2명은 처음부터 직업이 없었고 4명은 출산과 동시에 직장 경력을 멈추는 엄마들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엄마들이 출산을 하면서 삶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직장 내 괴롭힘, 월요병, 워라벨, 욜로..' 등등 직장인의 고충을 설명하는 단어, 직장인 스트레스를 위로해주는 말 등 '직장인'은 우리 사회의 큰 관심사이며 주목받는 존재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그 주목받는 무대에서 내려와 '엄마'라는 신분의 옷으로 갈아 입고 '사무실'이 아닌 '집'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엄마가 된 여성은 그렇게 다른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경단녀'라는 말이 있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정과 육아를 담당하기 위해서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직장인으로서 생활을 하지 않았던 여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여성이 경력이 단절된 적이 있었나? 여성의 경력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일하던 경력에서 집에서 집안을 경영하는 경력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경단녀'라는 말이 싫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나처럼 생각하는 여자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경단녀’가 아니라 ‘경력 보유 여성’입니다

경단녀라는 말은 회사 고용주의 입장에서 회사원으로 일했던 경력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사라진 많은 여성들은 사회의 어딘가에서 다른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직장생활만 꼬박꼬박 해왔던 내가 축적할 수 없는 정보들. 생활하면서 유용한 삶의 지혜. 

우리가 소위 경단녀라고 부르는 그녀들은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직장인들은 알 수 없는 또 다른 경력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경이로운 삶이 경험을 가격으로 매길 수 있다면..


나는 때로 언니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언니들은 대체 저런 정보들을 다 어디서 알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경이로운 존경심마저 생긴다. 

생활의 정보는 책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회사원처럼 누가 시켜서 조사하는 업무도 아니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알아내고 익히고 경험을 통해서 얻은, 생존의 기술들이다.


삶을 좀 더 먼저 살아온 세상의 모든 언니들은 누구나 나보다 하나 이상은 알짜배기 정보를 알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무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가정의 back office에서 지원 역할을 하고 미래의 사회를 지탱해나갈 생산 주체인 아이들을 훌륭한 성인으로 길러내기 위해서 다양한 정보원 활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회사 생활을 하는 나보다 더 가치 있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필드에서 다져진 그녀들의 경험을 가격으로 매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단녀'라는 좋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고용주를 찾아 면접장에 나타날 일이 아니라, 그냥 사회 구성원인 한 사람으로서 직장을 떠나 얻어온 것들을 떳떳하게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그거 지식인 서비스 아냐?'

하고 남편이 말했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모든 서비스가 한 끗 차이 아닌가? 

다르게 만들 수 있어!




언니의 인생 품앗이 서비스 (가칭) 기획안


1. 서비스 개요 : 정보를 찾고 구하는 모든 여성들이 어떠한 것이라도 물어볼 수 있는 서비스


2. 서비스 특징

   1) 누구나 정보 제공 및 정보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음

   2) 인터넷에 미리 포스팅을 하는 게 아니라 공유하고 싶은 주제만 정해서 올려둠

   3) 언니의 삶의 이력서, 자신 있는 정보 공유 분야 (실패사례인지 성공사례인지 ) 작성 후 공개

   4) 자연어 검색을 통하여 '품앗이' 주제 검색 


3. 서비스 고려사항

    1) 광고나 상업적 목적의 정보 공유 차단

    2) 사생활 보호, 범죄로부터의 노출 방지 

    3) 정보제공자의 신뢰성 (스스로 정화 가능한 선순환이 되도록)


4.  지식인 서비스와의 차별점 

     1) 인터넷에서 지식인, 블로그 등 SNS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꾸준히 하지 않는 모든 언니들의 날것의 

         정보를 이메일/메신저/전화 등 다양하고 편한 방법으로 제공받기 --> 정보 축적이 안 되는 문제는?

     2) 1:1 품앗이. 언니의 삶의 이력서는 공개되어 있으나 서로 간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친한 언니-동생처럼

         1:1로 이루어지는 폐쇄형 서비스 --> 품앗이 종료 이후 공개/비공개 선택 (가급적 공개할 수 있도록)

      3)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통한 '미래의 품앗이 주제' 미리 알려주기 

          (주제에 따른 삶의 숙제를 미리미리 해결할 수 있도록)

         



언니들 생각은 어때요?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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