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거리 두기"에 대한 두 가지 감정
출퇴근 때 지하철을 타면 자리가 있더라도 앉지 않고 문쪽에 기대거나 사람이 없는 공간에 가서 서 있는 편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지하철 타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다닥다닥 밀착해서 붙어 앉는 좌석이 아무래도 좀 불안해서 이기도 하다.
앉아있는 사람도 서 있는 사람도 거의 모든 승객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본인만의 세상, 스마트폰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자리를 잡고 스마트폰을 본다. SNS에 글은 직접 올리지 않는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남들처럼 멋지게 사진 찍고 공유할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SNS에 올라오는 글들은 자주 힐끔거린다. 누군가가 공유해준 어떤 링크를 클릭했다.
하차역을 지나치게 했던 문제의 기사와 영상
기사 : 원화여고 5년 전 체육대회가 새삼 화제인 이유
동영상 : 원화여고 체육대회 선생님들 달리기
내용은 체육대회에서 선생님들이 이어 달리기를 하는 영상이다. 승부만을 위한 달리기는 아니라는 것은 영상을 보면 알게 된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우르르 선생님에게 뛰어가면서 영상은 끝이 난다. 영상의 마지막을 볼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기사의 서브 타이틀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서 선생님들이 남긴 '함께의 의미' 감동'도 좋았지만 그날의 날씨, 아이들의 함성, 그리고 마스크 없이 선생님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느꼈던 그 당연했던 일상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고 위험한 것이 되었고 점점 낯선 것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5명 이상 합석 금지' 이런 지침들이 가장 좋은 것은 직장에서이다.
아마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나는 작년에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했을 수도 있다.
팀장은 팀원 두 사람이 우연히 나갔다 같이 들어오기만 해도 '둘이 어디 갔다 온 거예요? 돌이서만 미팅했어요?'하고 팀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궁금해하던 사람이었다. 말도 진짜 많았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회의는 물론 점심식사, 저녁 회식까지 줄줄이 함께 했어야 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회사에서는 회식이 없어졌다. 심지어 삼삼오오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자리도 거의 사라졌다. 점심 약속도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구내식당에 가서도 자리를 띄워 앉고 대화도 못하게 되었다.
피곤했던 상사와의 스킨십부터 때로는 징징대고 일로 생색내는 꼴베기 싫은 동료들까지 자연스럽게 멀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유를 얻었다.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가도 불편한 시선도 없었다. 혼자의 시간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사색하는 시간도 늘었다. 회식이 없어지니 저녁 시간도 풍요로워졌다. 집으로 일찍 돌아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때로는 정말로 사람들이 고플 때가 있다. 즐거웠던 모임의 기억, 회사 TFT 활동, 강의를 듣고 자극을 받던 배움의 시간들, 설레는 수출상담회와 상품박람회, 스포츠 경기, 아이의 학예회..
내가 동영상을 보다 눈물이 날 정도였던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넓은 운동장에 전교생이 마스크도 없이 모여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우르르 뛰어다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많은 단체 활동이 '비대면'으로 대체되었고 이제는 '비대면'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비대면 사회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왠지 '비대면'활동의 끝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만드는 것,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교감부터 신체적인 부대낌에 이르기까지, 한 공간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소통의 에너지는 엄청난 힘과 즐거움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갑작스레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코끝이 찡해지는 찐한 감동은 오프라인에서 사람과 함께할 때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비대면이 다 커버할 수 없는 , 설명하기도 어려운 전류 같은 감정의 디테일이 없이 밋밋한 시간들을 모두 버티고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대면과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분업은 체계적이다. 감정적인 소모도 적고 일을 하는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일을 하는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모두가 본인이 맡은 작은 퍼즐의 일만 해내면 된다. 그렇지만 왠지 이상하게 허전하고 조금은 불만스럽다.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고 웃고 떠들면서 밥 먹던 때가 더 일이 잘 진행되었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왠지 비대면으로 업무를 종결하고 나면 끝났지만 끝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사람 사이의 감정적 소모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주는 가슴 벅찬 감동의 느낌.. 둘 다 원하는 나는 좀 잘못되었을까.
'위드 코로나'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코로나 이전으로 많은 것들이 다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고 앞으로 꽤 오랫동안은 완전히 이전과 같은 삶으로는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가장 안타깝다. 사람 간의 교류를 통해서만이 느낄 수 있는,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정적 환희와 행복감을 이 아이들은 모르고 크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간다.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대규모 행사들은 온라인으로 대체되거나 없어졌다. 심지어 스포츠 행사까지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함께 있어서 행복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대규모 행사들은 언제쯤 다시 열릴 수 있을까. 학창 시절, 맑은 파란 하늘과 양떼구름 아래에서 어떤 두려움도 없이 맘껏 뛰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일말의 두려움 없이 마음껏 땀 흘리고 열정을 발산하고 서로 부둥켜안을 수 있는 시간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 부모로서 아이의 운동 경기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도 좋고, 회사 체육 대회도 좋다. (내가 라떼라서 그런가 보다..^^;;;) 모여있지만 멀찌기 떨어져 있고 서로 조심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두려움 없이 마주 보고 서로의 얼굴 표정과 온몸에서 나오는 비언어적 소통을 알아차리고 공감하는.. 그런 그리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