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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Aug 25. 2021

자가격리자가되다.

보통의 일상,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OO병원이에요


재택근무를 하면서 2021년 수출의 탑 신청을 위해서 증빙 맵핑을 완료하고 나서 좋아하고 있던 지난 8월 9일 월요일 오후 4시쯤 전화를 한통 받았다.

금요일에 방문했던 병원이었다.


"선생님 옆에 계시던 분이 확진이 되어서 보건소에서 다녀갔어요. CCTV도 다 가지고 갔는데 아마 선생님이 자가격리자가 되실 것 같다고 해서 전화드립니다"


".........."


말문이 막히는 일이었다. 병원에서 있었던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말하는 내 근처에 있었다는 그 사람을 나도 본 것 같은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어땠는지, 그 당시 그 사람이 어땠는지.. 내 기억 속 필름을 금요일 저녁시간으로 돌리고 병원에서의 장면들을 정지화면으로 놓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대기하면서 나는 그와 가까이, 꽤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순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도 확진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지난 주말에 함께 산행을 했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남편과 회사에 전화를 했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려했으나 5시 마감시간이 임박해 갈 수가 없었다.

두려움의 밤이 시작되었다. 왠지 목이 아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음성 결과를 받았으나 안심할 수 없다.


자가격리 1일 차 아침에 바로 보건소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보건소에서 연락이 올 거라고 했지만 어쩐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 9시가 되기 전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 길을 걸어가는 내내 마음이 착잡하고 몹시 우울했다.


동선이 겹치는 밀접 접촉자, 보건소에서 연락이 온 경우,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해제 전 검사 등은 임시 선별 진료소가 아닌 보건소의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는다. 보통 TV에 나오는 줄을 길게 선  임시 선별 진료소의 경우는 감기 기운이 있거나 동선이 겹치지는 않지만 방문했던 곳에서 확진자가 나온 경우, 선제적 검사를 목적으로 한 경우 등이다. 그래서 광범위한 검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대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보건소 검사실로 갔고 접촉이 의심되는 내용을 문진표에 작성하여 전달했다.

2020년 겨울부터 회사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코로나 검사를 받는 일이 벌써 세 번째였는데, 정부의 코로나 대응은 점차 디지털화되고 있다. 종이 문진표만 작성하다 이제는 종이 문진표를 전산으로 옮기는 것까지 진행되었고, 마지막 자가격리 해제 전 검사를 갔을 때는 온라인 문진표를 작성했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조금 더 편리하게,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날 오후쯤 전화가 왔다. 최근 자가 격리자가 급격하게 늘어서 행정적으로 처리가 지연된다고 했다.

자가격리 통보서와 안내 문자를 내일 보내줄 것이라고 집에서 아무하고도 접촉하지 말고 화장실도 따로 쓰라고 했다. 우리 집 화장실 한 개인데.ㅜㅜ


이렇다 할 대표적인 증상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초조했다. 남편은 양성이면 바로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을 것이라며, 검사 결과 늦게 나오는 게 좋은 거라고 안심을 시켜줬다. 자가격리 1일 차, 검사를 한 날 저녁 7시가 넘어서 음성이라는 너무나도 감사한 문자를 받았다. 마음이 놓였다.


그때부터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자가격리, 확진자들의 경험담을 검색했다.

내 가까이에 와있다 생각했으나 좀 막연하기도 했던 코로나에 대해서 많은 이번 기회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음성이 나왔다고 해서 절대 안심할 수는 없다. 바이러스가 잠복기를 거쳐 최장 14일 이내에 증상이 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자가격리 기간을 14일씩 두는 것이라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확진되신 분들이 가시는 생활치료센터에 머무는 시간보다 자가격리 기간이 더 길다.


* 자가격리를 14일 하는 이유 - 증상의 발현이 바이러스 노출 이후 최대 14일까지 잠복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자가격리를 14일간 진행한다.

* 확진자의 경우 대략 10일 정도가 지나면 생활치료센터에서 나오게 되는데, 자가면역으로 증상이 완화되어 없어지면 전염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속에 죽은 바이러스가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검사 결과는 '양성'으로 나올 수 있다.



첫 음성 판정 이후 14일



내가 음성의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주말에 만난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지만, 남편과 아이가 나와 함께 있으면서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최대한 자가격리 수칙을 잘 지키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점심은 주로 2인분을 배달해서 각자 다른 공간에서 먹었고 저녁은 남편이 온 이후에 준비해서 또 따로 먹었다.


자가격리 통보가 오고 나서는 자가격리 진단 앱을 깔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가진단을 해서 기록하였다. 그리고 증상을 확인하는 AI 전화도 거의 매일 받았다.


14일간 가장 다행스러웠던 것은 업무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낮시간 동안에는 재택근무를 하는데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두려움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왠지 목이 아픈 것 같고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불안해졌다. 좋지 않은 것이지만 여러 날을 맥주를 마시면서 잊어보려고 했다.


생각보다 집순이라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가족이 없었더라면 죄책감없이  14일을 보낼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수시로 아이에게는 일이 생겼고, 아이를 돌봐야 되는 상황이 되면서 걱정도 늘어갔다. 아침마다 하던 새벽 기상 루틴도 무너졌다.


돌이켜보니 괜찮다며 버틴 시간들이 사실 괜찮지는 않았던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자가격리 마지막 날


그럭저럭 어떻게든 버티며 자가격리를 이어나가 드디어 자가격리를 하루 앞둔 목요일이 되었다.

자가격리 해제 전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야 출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아침 샤워 후 아끼는 샤넬 바디 미스트도 뿌리고 오랜만에 드라이도 했다. 옷도 좀 갖춰 입고 비장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자가격리를 2주하는 동안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의 초입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침의 공기는 선선해졌고 바람마저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늘로 걸으면 덥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통 넓은 바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임시 선별 진료소를 지나쳐 길을 잃지 않고 선별 진료소에 도착했다.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아빠도 있다. 어제 근처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며 우왕좌왕하며 문진표 작성하는데 꽤 오래 시간을 쓰신다. 어떤 젊은 엄마와 할머니 어린아이도 같이 왔다. 유치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가 한 줄로 서서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있는 뒤통수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미지의 바이러스로부터 공격당한 지 일 년 하고도 또 반년이 지났는데 바이러스는 끈질기게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며 달라붙어 있다.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검사에 나선 사람들과 검사인력, 모든 지원 인력.. 측은하고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검사는 특히 더 콧속을 깊숙이 후벼 파는 느낌이라 검사 후 코피 같은 맛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재택근무를 마저 하고 내일 오후 12시에 자가격리가 해제될 생각만 하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보건소였다. 나의 검사 결과가 '미결정'이라는 것이다. 처음 듣는 미결정.. 미결정이란 검사 결과에서 코로나 양. 음성을 가려낼 수 없다는 판정이라는 것인데, 재검에서 보통 50:50으로 음성:양성 판정을 받는다고 보건소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고 침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재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는 해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14일 중 이 날이 가장 힘들었다. 미결정이라니.. 증상도 없었는데. 그리고 거의 14일을 다 지났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

자가격리를 들어가던 날도 나는 내가 병원에 갔던 것을 자책하지 않았지만 그날 처음으로 병원에 갔었던 나의 행동을 자책했고, 병원을 원망했고, 내 옆에 있던 확진자를 미워했다. 차라리 자가격리 초반에 양성 판정을 받았더라면 지금쯤 정상의 생활로 돌아왔을 텐데, 자가격리 14일을 꼬박 채운 지금 시점에 양성이라면 또다시 10일 이상을 격리해야 한다. 그러면 가족들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심하게 불안했다.


다음날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원래라면 자가격리가 해제되어야 할 12시에 나는 여전히 집에 갇혀있었다. 자가격리 끝났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미결정이라고 말하면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카톡도 읽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경우의 수가 다 떠올랐다. 그리고 전화가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저녁 6시가 넘어서자 전화기를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넷플릭스를 켜놨지만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보건소에서 전화가 오면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양성으로 최종 판명날 경우, 14일을 함께했던 가족들이 가장 위험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때론 느슨해졌던 나의 자가격리가 후회스러웠고 아이와 남편을 위험에 노출시키게 될 것만 같아 정말 걱정되었다.

이 와중에 남편은 '나는 백신 맞은 사람이니까 괜찮아. 그리고 진진이는 마스크 잘 쓰고 다녔으니까 괜찮을 거야. 애들은 주로 안 아프고 잘 지나간데.'라고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아들은 '엄마~ 혹시 양성 나오면 어쩌겠어. 나는 괜찮아. 뭐 치료센터 들어가고, 거기서 영상도 찍고 그래~'라고 무심히 쿨하게 말해주었다.




금요일 저녁 6시 반이 넘어서 애플 워치가 진동을 했다. '구청'에서 온 문자였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이로서 길었던 자가격리가 끝났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혹시나 몰라 중간에 한 차례 더 검사를 받았던 것과 미결정 재검까지 포함하여 4회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나는 총 6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검사는 받으러 갈 때마다 착잡하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언제나 안심이 안된다.



사력을 다해서 온몸으로 막고 있는 듯한 기분


확진받아 치료시설에 다녀온 사람들 중 애국자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의 의료서비스에 감동했다고 했다. 나도 자가격리를 겪으면서 의료진들에게, 공무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더 생겼다.

일단 구청에서의 연락은 정말 편안하고도 친절하게 온다. 누구 하나 화내지 않는다. 비난하지도 않는다. 저녁시간에도 비상연락망이 잘 갖춰져 있어 메시지를 남기면 연락이 왔다.

의료진들의 고생과 수고는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 더위에, 방호복을 입고 바이러스 노출의 위험을 감수하며 시민들을 응대하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또 자가격리 수칙부터 앱 사용에 이르기까지 방역과 진단과 관련하여 프로세스를 수립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는 방역 당국.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사력을 다해 온 몸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그 누구도 상황이 이렇게나 길게 갈 거라고는 생각 안 했을 것이다.  겪어본 자의 입장으로는 각국의 정상들이 K방역을 칭찬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여러 프로세스와 정책에서 우리나라의 사례가 모범이 되었을 것 같다. 참으로 체계적이라고 느꼈졌다.


지침이 너무 오래가지 않도록 그래서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백신 접종률이 얼른 높아져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이 한시름 놓으시길 바란다. 꼭 그래야만 한다.



죄송한 마음, 섭섭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


마스크 평소 성실히 착용했으며 방역 수칙을 지킨다고 노력했지만 결국 밀접접촉자가 되었다.

밀접접촉자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 것이 참 죄송하다.


밀접접촉자가 되면서 주말에 만났던 친구들에게 사실을 전하자, 한 명은 스스로 검사를 받고 와서는 너도 이상이 없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다른 한 명은 회사가 특히 코로나에 예민하다며 검사라도 받으러 가는 날에는 곤란해진다고 자기는 일단 몰랐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회사가 카톡도 다 뒤진다며 단톡방을 삭제하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내가 만약 확진이 된다고 하면 몰랐던 일로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쉬쉬할수록, 은폐하려 할수록 더 큰 피해를 만들 뿐이다. 친구의 차가운 반응에 마음이 다쳤다.


자가격리 초에 받은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을 때 나는 가족 다음으로 이 친구에게 음성 결과를 공유해주었다. 자가격리 중 내가 혹 확진이 되더라도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되었으니 안심하라고 말해주었다.

친구의 마음도 이해하고 입장도 이해가 된다.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그리고 몹시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녀의 반응은 섭섭했다.

내가 만약 확진되었더라면 그녀와는 절교하게 되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이 섭섭한 감정이 좀 오래갈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뒤끝 있는 평범한 인간이니..


자가격리 초부터 최대한 담담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이미 바이러스에는 노출되었다. 운이 좋으면 음성일 것이고 양성이 나올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자책하거나 너무 우울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2주를 보냈다. 가족들 외에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더 컸다. 어떻게 버티냐고, 맘고생 많겠다고 걱정을 많이 해주었는데,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자가격리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일을 집중해서 처리했다. 일이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다행이었다. 물론 그 외의 모든 생활을 정상적으로 잘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행동의 제약이 너무 크니까 점점 더 폐인이 되어갔다.




보통의 일상, 그 소중함을 위하여


금요일 저녁에 검사 결과를 받고 아들과 2주 만에 포옹을 했다. 엄마가 양성 나와도 괜찮다고 쿨한 척을 했지만 실제로는 엄청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금요일 검사받고 온 이후에는 저녁에나 결과가 나온다고 여러 번 얘기를 했지만 계속 '엄마, 결과 나왔어? 음성이지?'를 반복해서 물었다.

아이를 걱정시킨 것이 부모로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모처럼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맥주를 한잔 했다. 남편이 자가격리 끝난 소감을 한마디 하라고 했다.

'음, 무엇보다도 내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좋은 말 많이 해준 두 사람에게 정말 감사하고, 일상이 참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어.'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잔을 번쩍 들어 건배했다.


오늘도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 통보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에게 보통의 일상이 당연한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보통의 일상, 그 소중함을 다시 한번 경험했기에 오늘 하루 더욱 즐겁게, 감사하며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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