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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Jul 28. 2021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을 때처럼 다시 일어나기

요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엄마, 친구들 코로나 확진됐데.. OOO는 괜찮다고 하고.."


지난 주말에 아들이 친구들과 카톡 하다 말했다.

아이가 올초까지 다녔던 축구교실 아이들 얘기였다. 


지방 축구대회에 참가했던 서울의 축구팀에서 코로나 집단 확진이 있어서 대회 자체가 취소되었던 것이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1,600명이 참여하여 6일 동안 경기를 치르는 꽤 큰 규모의 대회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유소년 축구팀들이 경기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더더욱 전국 축구대회 개최가 까다로워질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들도 잘 알고 있고, 코치님도 알고 있다.

코치님은 상당히 열정적인 사람으로 축구 선수를 꿈꾸며 성장하고자 하는 유소년들을 위해서 되도록 많은 경험과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었다.


이 일은 신문과 뉴스에 보도가 되었는데, 내가 아는 얼굴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모두가 다 같이 확진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처한 입장에 따라 느끼는 감정들은 다를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대회를 참가했던 코치님이 제일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일이 터지고 나면 사실 결과론적인 책임이 따른다.

회사나 주변에서 뭐라고 콕 집어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무서운 책임감과 자책으로 힘들 것이다.

최초로 확진되었던 아이의 부모, 그 아이 또한 큰 대회 전체를 마감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클 것이다. 

더불어 확진된 아이들과 부모들은 누구를 탓하지는 못하겠지만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왜 그런 대회를 열어서 이 난리냐!'

라고 탓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사실 참여하는 아이들이나 코칭스텝들, 부모들까지 큰 위험부담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맞다.

선수들이 며칠 동안 합숙을 하며 단체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게 되는 위험에도 더 크게 노출되어 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저하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신체 활용 능력도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마스크를 끼고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운동선수를 지향하는 아이들도 훈련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여기저기 폐쇄된 운동장들 때문에 운동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사회는 대안을 찾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적응해가고 있다.

학원은 수업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체 운동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비대면의 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올림픽을 비롯해서 올해에는 작년에 취소되었던 큰 국제 스포츠 경기들이 우려 속에서도 속속 재개되고 있다.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최대한 방역수칙을 지키는 선에서 아이들의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스포츠 대회는 주로 지방에서 열린다.

지방 넓은 땅덩어리에 스포츠 시설을 건설하기도 용이할 것이고, 스포츠 대회가 개최되면 전국 각지에서 온 선수며 관계자들이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선수들과 관련자들이 며칠 동안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지출하는 것이 지역 상인들에게는 큰 수입원일 것이다.


그래서 지방 단체들은 많은 스포츠 경기를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전체 규모로 봐서는 수도권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지역 간 이동 자체가 없어지면서 지역의 경제도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처음 겪어보는 자책의 시련, 운이 없었던 것. 


전국 대회 참가 전 선수들과 코치진, 부모들 모두 코로나 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기사에도 해당 선수가 코로나 검사를 받을 때만 해도 음성이었기 때문에 참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방역수칙을 몰래 어기고 참가했다고 볼 수도 없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대회 기간 동안 방역 수칙을 잘 지킨 탓에 지역 감염이나 타 팀 감염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팀 관계자들은 모두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 


그렇지만 내가 코치님이나 최초 확진 부모 입장이었다면,  나로 인하여 큰 피해가 생겼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너무 괴로울 것 같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나로 인해서 일어났다는... 어느새 가해자가 된 듯한 심적인 고통이 클 것 같다. 


어쩌다 확진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자책과 정신적인 고통은 코로나 이전에 사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초유의 사태를 겪은 축구교실은 괜찮을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그 축구교실 학부모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걸 피할 수 있을까 싶다.



시련은 전화위복의 기회인데 바이러스를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을까?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진다며, 보통 시련을 겪고 나면 그 시련으로부터 인간은 성장한다.

시련을 통해서 무엇이든 간에 개인에게 돌아오는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한 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통찰을 얻을 수 없다면 시련 또한 느끼지 말아야 한다. 

그 일은 그냥 일어난 팩트 일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야 하고 어떠한 임팩도 남기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저 미친개한테 재수 없이 물렸다'라고 생각하고 툭툭 털어버려야 되는 일이지, 

곱씹고 책임지려 할수록 상처만 돌아오지 상처 이후 얻어지는 새 살은 없다. 


그저 길을 걷다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이것은 일어난 '사고'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치료 후 완쾌를 기다려야 한다.



'설마'라는 안이함도 경계해야 하지만 '~할걸' 하는 후회와 자책도 가지지 말기.

무탈한 일상에 감사하기


주변에서 확진되는 사례가 늘면서 '설마 나는 괜찮겠지'라는 마음도 조금씩 자신이 없어진다. 

코로나는 정말 '설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곳에 꼭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이 닥쳤다고 해도 '~하지 말걸, 그때 그렇게 할걸..' 이런 후회와 자책도 가질 필요 없다. 

어차피 사고처럼 벌어진 일은 돌아보지 말고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가면 된다.


바이러스가 모두 물러갈 때까지 얼음땡 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를 수도 없고, 한 걸음씩 조심스레 디디다 괜찮아진 것 같아서 뛰려고 하면 바이러스가 발을 살짝 내밀어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느낌이다.


넘어지고 또 넘어질 수 있다. 조심스럽게 또 조금씩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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