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 믿음의 무게

Villar de Mazarife – Astorga

by 비아루나 Via Luna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밖은 깜깜해 헤드랜턴 없이는 한 발자국 내딛기도 어려웠지만, 그 대신 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을 볼 수 있었다. 의외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날이 점점 짧아지고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순례자들의 출발도 조금씩 늦어지는 듯했다. 작은 알베르게였기에 함께 나서는 이가 더 적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른 시간의 발걸음은 거의 혼자였다.



저 멀리 가로등 아래 귀여운 철제 순례자 조형물이 보였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옥수수밭이 나타났는데,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키보다 훌쩍 큰 옥수수들이 빽빽이 들어선 밭을 잠시 헤매다 다시 다리 쪽으로 돌아오니 멀리서 헤드랜턴 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롤란드 아저씨 일행 같았다. 그들은 너무 빠르게 걸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같은 길 위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방향이 맞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마을의 하늘은 보라색, 주황색, 짙은 분홍색이 섞인 수채화처럼 번져 있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들에도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순간들이 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멈춰 서서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뿐.


“올라!”

영국에서 온 로리와 독일에서 온 마크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환하게 인사했다.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젊은 청년들보다 내 눈길을 끈 건, 그들과 함께 걷는 60대 캐나다인 다이애나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청년들과 같은 속도로, 같은 리듬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햇살이 따뜻했다. 아스팔트가 끝나고 시골길이 이어진다. 소목장을 지나자 오르막이 시작됐는데 생각보다 가파르다. 아니, 오늘 내 다리가 영 무거운 걸지도 모른다. 걷다 보면 유독 몸이 둔해지고 배낭이 천근만근 느껴지는 날이 있다. 인생에도 그런 날이 있듯이.


길가의 작은 돌무덤 옆에는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 같은 순례자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를 탄 순례객들이 사진을 찍고 웃으며 지나간다. 나는 다시 호흡과 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들이쉬는 숨마다 맑은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고, 내쉬는 숨마다 내 안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상상을 한다. 생각은 잠잠해지고, 남는 건 오직 호흡과 발걸음, 그리고 길뿐이다.


자전거를 탄 두 명의 여성 순례자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의 자전거 순례객은 남자인데, 그들의 모습은 유난히 멋져 보였다. 자갈 내리막에서 균형을 잡는 집중과 근력은, 내가 걸으며 느끼는 리듬과 또 다른 종류의 고요였다.


다시 오르막이 나타났고, 길가에 돌로 만들어진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LOVE.** 너무 흔해 식상하게 느껴질 법한 말. 문학과 음악, 영화 속에서 수없이 쓰이고, 상업적으로도 소비되는 단어. 그럼에도 이것을 대체할 다른 말이 있을까. 결국 삶의 모든 것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이 길을 걷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사연과 소망을 안고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든, 무언가를 놓아버리기 위해서든, 그 모든 시작에는 삶에 대한 사랑이 있다. 불편한 숙소, 단조로운 음식,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우리가 이 길을 택하는 이유는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알게 모르게 나는 이 길 위에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물건을 건네고, 마음을 건넨다. 그들도 나처럼 불완전하고 여리며, 나처럼 꿈꾸고, 나처럼 뜨겁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다. 그 만남 속에서 묘한 동지애가 피어난다.



단순함이 보여주는 것들


오늘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법은 어쩌면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비우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앞의 길은 더 이상 ‘목표 지점으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공간이 된다.


작은 들꽃의 색감, 담벼락에 기댄 담쟁이와 한 송이 꽃의 조화, 구름이 매번 새로 그려내는 풍경, 그리고 48색 크레파스로도 담기 어려운 미묘한 색감의 변화들. 평범했던 풍경들이 하나의 기적처럼 다가온다.


멀리 밀밭을 바라보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밀밭, 그 위에 놓인 건초더미, 그리고 푸른 하늘. 단 세 가지의 단순한 요소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려낸 따스한 시선은, 어쩌면 이런 풍경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조화로움—말로 하면 쉬워 보이지만, 삶에서 그것을 이루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믿음이라는 이름의 무게


오후 3시 반, 예상보다 늦게 아스토르가에 닿았다. 광장을 건너는데 멀리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어제 만난 한국 아주머니, 사라였다. 다리가 아파 일부 구간은 버스를 탔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식사 중이라 나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사라 옆에는 스페인 남성이 앉아 있었다. 사라는 스페인어를 거의 못하고, 그 남성도 영어가 서툴렀지만 두 사람은 놀랄 만큼 즐겁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십쯤 되면 말 안 해도 다 알아요.” 사라가 웃으며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함께 성당과 박물관을 보러 나섰다. 길에서 하얀 선원 복장을 입은 노인이 다가와 안내를 자청했다. 처음엔 경계심이 들었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친절했고, 현지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곳들까지 조용히 보여주었다. 봉쇄 수녀원의 성당에 들어갔을 때, 철창 뒤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수녀들의 모습이 오래 남았다. 엄숙하고도 단호한 등줄기. 나는 괜히 폐가 될까 싶어 오래 바라보지 못했지만, 발걸음을 떼고도 그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세상과의 대부분을 끊고 오직 신을 향해 살아가는 일—그 믿음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을 것이다.


나 역시 혈기왕성하고 불안정했던 20대를 지나 이제는 조금 담담해졌지만, 여전히 삶은 ‘흔들리며 피는 꽃’ 같다. 그래서일까. 그런 선택을 가능케 하는 믿음의 깊이가 부럽기도 했고, 동시에 그 뒤에 숨겨진 고뇌의 무게를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왔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다양한 모습의 마리아상이었다. 어떤 마리아는 후덕한 어머니 같고, 또 어떤 마리아는 엄격한 교사 같고, 다른 마리아는 오래된 초상화 속 미인처럼 보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인자한 미소의 마리아상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동양적인 어머니의 모습처럼 느껴졌고, ‘잘나든 못나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은 위안을 주었다.


아스토르가에는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궁이 있다. 담백하지만 상상력의 결이 분명한 건물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곳에서 스위스 순례자 마크를 다시 만났다. 그는 키가 크고 단단한 체구를 가졌지만, 한쪽 팔은 의수였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고 자신은 팔을 절단한 채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와 이야기할 때 이상할 만큼 안정감이 느껴졌다. 큰 시련을 지나 다시 자기 안의 반석을 세운 사람만이 갖는, 조용하지만 확고한 평온함.


가우디 주교궁을 둘러보고 나자 사라와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대로 알베르게로 들어가기엔 아쉬워 광장 근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잔을 시켰다. 그제야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놓았다. 사라는 출발 전 한인교회에서 “혼자 어떻게 걷느냐”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 나 역시 엄마가 위험하다며 순례를 반대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혼자 걷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리듬으로.


겉으로 보기엔 곱고 평온해 보이는 얼굴 뒤에도,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감내해야 할 사연과 깊이가 있다. 길 위에서 배우는 것은 단지 ‘걷는 법’이 아니다. 멈추는 법, 기다리는 법, 함께 걷는 법, 그리고 홀로 서는 법이다. 어쩌면 삶을 풍요롭게 사는 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것들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본질을 발견하는 일. 오늘 하루, 나는 그 단순함이 내게 건네는 지혜를 천천히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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