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orga – Foncebadon (27Km)
어제 너무 피곤했는지 오늘은 6시 반이 돼서야 눈을 떴다. 엄마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어제 채혈을 하셨다는 이야기였다. 어제 미리 사두었던 요구르트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7시 20분쯤 길을 나섰다. 알베르게 앞에는 덴마크 아줌마가 서 있었다. 어제 전 마을에서 묵었는데 침대에서 빈대가 나와서 몇몇이 함께 택시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앞에는 빨간 머리 아가씨가 길을 찾아 힘차게 걸어가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온 듯한 순례객 한 무리는 짐을 봉고차에 싣고 가벼운 차림으로 수다를 떨며 뒤를 따른다. 길을 따라 걷다 작은 성당 하나를 발견했다. 왠지 그 안에 들어가 기도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발걸음을 멈췄다.
성당은 아주 소박하고 작았다. 조용한 벤치에 잠시 앉아 어제 깊이 마음속에서 갈구했던 것들에 대해 천천히 기도를 올렸다. 부르고스나 레온의 크고 화려하고 정교한 성당보다 이런 작은 성당이, 나에겐 신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본질적으로 자연과 단순한 것들을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할머니가 순례자 증에 스탬프를 찍어주셨다.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늦게 출발한 데다가 성당에도 들렀으니, 어쩌면 한낮의 땡볕 아래에서 한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마을은 Murias de Rechivaldo였다. 이 마을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걷는 좁은 흙길 옆으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자동차들이 줄지어 지나가기 시작했다. 바퀴는 직경이 2미터는 돼 보이고, 장식도 화려하고 다양했다. 자동차 경주를 하는지, 쇼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이 길에서 정말 이쁘장하게 생긴 소녀를 만났다. 멕시코에서 온 그녀의 이름은 파멜라. 올해 스물일곱인 변호사인 그녀는, 스페인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카미노를 걷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열아홉 쯤으로밖에 안 보이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파멜라는 나에게 왜 카미노를 걷고 있냐고 물었다. 자주 듣는 질문이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대답을 하게 되었다.
Murias 다음 마을인 Santa Catalina에 도착해,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Santa Catalina는 알베르게도 집들도 모두 아기자기했다. 어제 이후로 유난히 작고 예쁜 마을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파멜라, 너는 왜 카미노에 오게 됐어?”
그녀가 말했다.
“얼마 전에 9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사실 그 친구가 청혼을 했는데, 너무 고민이 되더라고. 오래 사귀긴 했지만 정말 나랑 결혼할 사람인지 확신이 안 섰어.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랑 헤어지면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내 20대 전부를 함께한 사람이라서… 그 시간들이 다 부정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어. 마음이 너무 답답할 때, 어느 날 TV에서 코엘료의 카미노 순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게 됐고, 그 길로 바로 배낭 사고, 운동화 사고, 부르고스로 버스를 타고 와서 걷기 시작한 거야. 그냥 이 길을 걸으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하고, 자신감을 얻고 싶었어.”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나도 그녀 나이 즈음 누군가와의 이별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이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돌아보면, 그를 그만큼 사랑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내가 인생을 너무 이상주의적인 눈으로만 보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다.
Santa Catalina를 지나 El Ganso까지는 메세타에서처럼 비교적 평평한 시골길이 이어졌다. 작은 마을 도로 가까이를 따라 걷긴 했지만, 며칠 동안 큰 도시로 가는 고속도로 옆을 걸어오다가 오늘은 한결 평화로웠다. 오랜만에 말동무가 생겨서인지 걸음도 가벼웠다. 파멜라는 어제 멕시코에서 온 꼬마 둘을 데리고 온 아빠와 함께 걸었는데, 길을 헤매는 바람에 34킬로나 걷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 아침, 작은 성당에서 나는 ‘내게 합당한 배우자를 보내주시길’ 기도했다. 어쩌면 평생 처음으로, 내 인생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 사라 아줌마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동안 나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느끼게 될 실망과 상처를 피하고 싶어 끊임없이 도망가려고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어떻든 모든 일이 처음부터 다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결국은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되어 갈 것이라고 믿게 해달라고.
파멜라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녀는 사람을 돕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녀의 아버지는 기부금을 많이 내는 스타일이지만, 파멜라는 사람과 직접 부딪히고 접촉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에게도 나에게 맞는 방식이 있겠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와 희망을 주는지 직접 보고, 그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틀 전, ted.com에서 다운받아 둔 파일 중에 다르푸르에서 소년병이었던 에마뉴엘 잘(Emanuel Jal)의 스피치를 들었다. 그의 인생에는 Emma McCune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가족을 잃고 분노와 증오로 가득했던 소년병이, 노래하고 춤추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꿈을 꾸게 되기까지, 그 중심에는 이해와 사랑, 그리고 희망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I sing this song for Emma, and I believe that there are hundreds of Emmas out there.”
예전의 나는 파멜라처럼 타인의 고통에 더 민감한 사람이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타인의 슬픔에 함께 잠겨 버려, 오히려 내가 지쳐버리곤 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점점 메말라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상대방이 꼭 들어주리라 신뢰하며 부탁하듯이, 하느님에 대해서도 그런 소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 알프레드 수자
또 다른 구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솔직해집시다. 창조주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참으로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과연 나의 소망에 대해 순수하게 열망하고, 그만큼 노력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실망과 상처를 피하고 싶어서, 처음부터 반쯤은 포기한 채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며 체념해온 건 아닐까.
세상에는 분명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 특히 인간관계 같은 것들이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며, 그렇게 뒤로 물러서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