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cebadon – Ponferrada (28.9Km)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다섯 시였다. 아래층 침대 순례자의 뒤척임에 잠을 설친 탓에 세면도구를 들고 도미토리를 나왔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알베르게 주인은 스페인어로 뭐라고 고함을 쳤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기상 시간인 6시 30분 이전에 일어난 것에 대한 신경질인 듯했다. 나는 문이 열리기를 육십 분 가까이 기다렸다가 짐을 대강 싸서 도미토리를 빠져나왔다. 아침을 챙길 기분도 아니었다.
폐허 같은 폰세바돈의 길은 가로등도 거의 없어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몇 걸음 옮기자 십자가가 보였지만, 어두운 산길이라 감히 발을 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알베르게 근처로 돌아와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사설 알베르게에 머물던 로날드 일행이 나타났다. 나는 로날드와 피터, 마크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 걸었다. 평소 같으면 내 걸음이 그들보다 훨씬 느렸겠지만, 오늘은 어둠 속에서 혼자 걷는 것이 싫어 빨리 걸었다.
크루즈 데 페로(Cruz de Ferro)가 거대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사진으로만 보던 돌무더기 산이 보이고, 높이 솟아오른 십자가에는 수많은 염원이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대체 여기서 삶의 어떤 짐들을 내려놓고 가고 싶었을까.
저 철 십자가의 역사는 수수께끼처럼 아득하다. 일설에 따르면 고대 켈트족의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순례자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쌓아 길의 수호신에게 헌정하던 풍습이, 기독교 시대에 이르러 십자가 아래에서 하느님께 죄의 용서와 구원을 비는 형태로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순례자가 이 십자가 앞에서 멈추어 섰을까?
나는 집에서 가져온 돌멩이는 없었지만, 어제부터 단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내 평생 무거운 짐이 되어 온 “원망과 미움”. 이제는 어떤 조건 없이 그것들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틱낫한 스님이 말했듯, 화의 근원이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라면, 나는 그 고통을 끊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슬픔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묻는 순간,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나아가고 싶다. 오늘, 하느님 앞에 나의 원망과 미움만을 놓아두고, 나는 크루즈 데 페로를 등진 채 걷기 시작했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자, 나는 로날드 일행보다 조금 뒤에서 다시 내 페이스로 걷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시작된 산길은 자갈밭이어서 걷기가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긴 메세타 평원을 지나 만난 산길이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만국기가 펄럭이는 조그만 집이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1인 마을 만하린(Manjarín)이었다. 한 명이 사는 곳을 마을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적 없는 곳에 이런 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주인 할아버지는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옛날 영화에서 빠져나온 듯했다.
아침을 굶은 터라 핫 초콜릿에 바게트를 꺼내 먹는데, 고양이들이 며칠은 굶은 기세로 달려들었다. 바게트 조각을 조금 나눠주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양이가 갑자기 네 마리로 늘어서 난리법석이 났다.
이곳에 머물렀던 순례자들의 인상은 극명하게 갈렸다. 누군가는 불편하고 지저분해 오래 머물기 힘들다고 했지만, 또 누군가는 모두가 같이 식사를 하고 다락방에서 꾸부정하게 걸어 다녀야 하는 그 모든 것이 특이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악취 나는 폐가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동화 속 오두막이었다. 같은 환경도 시선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각자의 짐을 지고 걷는 이 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길을 걷다가 멀리서 조그만 마을이 보였다. 엘 아세보(El Acebo)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바에서 홈메이드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샌드위치는 근래에 보기 힘든 훌륭한 것이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 남은 것은 포장했다. 마크와 로리, 다이아나 아줌마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 든든히 아침을 챙겨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전경을 지나, 경사가 심한 자갈길을 뱅뱅 돌아 내려가는데 자꾸만 발가락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양말을 벗고 발톱을 확인하고 있는데, 일본인 아저씨가 지나갔다.
아베 아저씨는 항상 예의 바른 스타일이셨는데, 어느덧 동행이 되어 함께 걷게 되었다. 아저씨는 예순 살에 비해 정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셨다. 수의학 관련 공무원으로 일하다 올봄에 퇴직하셨고, 이미 1200킬로미터에 달하는 시코쿠 절간 돌아보기를 끝내고 카미노에 오셨다고 한다. 아저씨는 내가 조금이라도 그늘에서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엽서에 나올 법한 예쁜 지붕을 가진 마을, 몰리나세카(Molinaseca)가 멀리서 보였다. 우리는 마을 초입 성당에 들어가 아저씨는 스탬프를 받고 나는 잠시 앉아 기도를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몰리나세카는 빛바랜 검은색 지붕들이 정갈하게 얹혀 있는, 손꼽히게 예쁜 마을이었다.
오늘은 연이어 계속되는 내리막 자갈길이다. 자갈길은 발목을 접질리기 쉬워 조심해야 하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속도감이 붙었다. 폰페라다 초입에 도착했을 때, 아베 아저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앞서 가면서도 가끔 뒤돌아보며 아저씨가 제대로 오고 계신지 확인했다. 한참을 걸어 순례자 마크가 크게 보이는 성당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이미 긴 줄이 서 있었고 침대 배정받는 데 족히 오십 분은 걸렸다. 카미노를 걸으며 변한 것 중에 하나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마음 편하게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샤워하고 빨래 후 마당에서 캐나다 아줌마인 다이아나와 뉴질랜드 아줌마 제니퍼와 수다를 떨었다. 두 분 다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 한국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셨다. 한국의 안 좋은 점들도 많이 보였을 텐데, 좋게 봐주시니 마치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도 된 양 마음이 조금 뿌듯해졌다.
제니퍼 아줌마는 육십 대처럼 보이는데, 순례객 중 거의 유일하게 샤워 후 화장까지 마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달걀노른자만 한 둥근 반지와 수십 개의 실팔찌를 찬 그녀는 멋쟁이 순례객이었다. 나이가 들어 수수한 모습도, 제니퍼 아줌마처럼 젊은이처럼 자기를 꾸미고 다니는 것도 모두 나름대로 좋아 보였다.
슈퍼마켓에서 토마토, 피망, 달걀을 사서 간단한 요리를 했다. 나도 알 수 없는 레시피에 국적 불명의 요리가 나왔지만, 맛이 별로라도 이렇게 소박하게 먹는 밥상이 좋았다. 저녁에는 프랑스 할머니 두 분이 방에 앉아 계셨다. 초급 불어와 할머니들의 추측, 그리고 인내심이 결합된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할 말을 거의 했고 많이 웃었으며 사진까지 찍었다. 나이가 들어 친구와 함께 여행을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폰페라다의 밤은 그렇게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가벼운 연결 속에서 따뜻하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