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6. It's fear

Villafranca del Biezo – O celebrio

by 비아루나 Via Luna

아침에 알베르게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파멜라와 함께 길을 나섰다. 우리는 고속도로 옆 길을 택했고, 알렉산드라는 산길로 올라가는 쪽을 골랐다. 날씨가 무척 쌀쌀해서 점퍼를 두 겹이나 껴입고 걸었다.


어젯밤 라울과 통화를 하면서 조금 쓸쓸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제 오후 내내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고, 축제가 한창인 광장에서 혼자 차를 마시며 끝내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다 실망하고, 내 마음이 조금 상처받았던 것 같다. 확실하지 않은 내 마음, 복잡한 감정이 싫어서, 원래 계획대로 그냥 마드리드에서 제네바로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산티아고가 가까워질수록 ‘무엇인가 결론’ 혹은 ‘대단한 깨달음’을 얻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이 길에서 얻는 것은 인생의 상세한 플랜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 몸과 마음에 쌓인 독소들을 조금씩 정화하는 것. 그 이후의 세부적인 그림은 내가 천천히 그리면 되는 것이다.


카미노를 시작할 때 내가 품었던 소망,

– 좀 더 정화된 몸과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 초심 –

남은 기간 동안은 그 소망에 다시 집중해 보기로 했다. 이 길이 내게 건네는 것들을 조금 덜 계산하고, 그냥 받아들여 보자는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파멜라에게 라울 이야기를 간단히 해 주고, 내가 바르셀로나에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당연히 가야지. Live the moment.”라고 말했다. 내가 왜 그곳에 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지 설명하려고 하자, 그녀의 입에서 먼저 “It’s fear.”라는 말이 나왔다.


헉, 이 젊은 여자애는 참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녀는 자기도 한때는 ‘fear’, 그러니까 두려움과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에 시달렸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냥 가서 그를 만나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보면, 돈이 조금 더 들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걷다 보니, 어느새 나는 혼자가 되어 있었다. 길은 작은 마을을 통과하기도 하고, 다시 고속도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기도 했다. 고속도로 옆에서는 대형 트럭들이 꽤 자주 지나가서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안에 있는 평화가 얼마나 단단한 기반을 이루고 있는지에 따라, 이렇게 고속도로 옆을 지날 때나,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생길 때, 마음의 동요 정도가 달라지는 건 아닐까.


내 마음에, 좀 더 뿌리 깊고 단단한 ‘평화의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멜라의 말을 곱씹다 보니,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fear’, 즉 두려움 속에서, 혹은 ‘fear driven’ 사고 속에서 살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하느님이 나를 돌봐 주실 것이라는 믿음, 결국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삶을 더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를 만나서 실망하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아예 그를 만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다시 볼 수 있겠지만, 그때의 마음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그냥 친구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너무 쉽게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것은 결국 이 작은 순간들의 모음에 불과하니까.


La Faba로 가는 길에 작은 성당 두 곳에 들러 기도를 드렸다.

먼저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나에게 합당한 배우자를 보내 달라고,

엄마와 아빠의 건강을 위해,

라울과, 암 투병 중인 그녀의 쾌유를 위해 차례로 기도했다.


한참을 걷다가, 내가 너무 빨리 걷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왜 나는 이렇게 빨리 걷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미노에서 사람들의 걷는 속도를 보고 있으면 각자 다르고, 한 사람에게서도 날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함께 걷는 이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늦추고, 누군가는 햇볕 아래에서 걷는 시간을 줄이거나 알베르게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속도를 높인다. 어떤 이들은 주변 풍광을 더 오래 눈에 담기 위해, 혹은 다리에 무리가 와서, 아주 천천히 걷는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속도’ 그 자체가 아니라, 왜 자신이 그 속도로 걷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그 자각이 있을 때, 속도를 조절하는 일은 훨씬 쉬워진다. 삶의 속도도 비슷한 게 아닐까.


바나나와 요구르트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La Faba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가팔랐다. 오늘은 유난히 등 뒤 배낭의 무게가 평소보다 두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산중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 다시 걷는다.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알베르게도 하나 있었다. 마을은 여느 마을처럼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La Faba에 도착했을 때는 윗옷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는데, 바람은 또 몹시 차가웠다. 오후 한 시 반. 알베르게 어디에도 파멜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앞서 가는 것 같았는데, 어디로 간 걸까. 너무 허기져서 마을에 하나 있는 바를 찾아 걸어갔다. 허름한 바 안에는 로리와 다이애나 아줌마 일행이 있었다. 나는 Tortilla Francesa con Chorizo를 주문했는데, 아줌마가 다른 손님들 응대하느라 바빴는지 그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결국 30분 넘게 기다렸다. 다이애나 아줌마 일행은 오늘 O Cebreiro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나는 거의 탈진 상태였지만, 허기를 조금 채우고 나니 다시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 Cebreiro로 가는 길은 La Faba로 오를 때에 비해 경사가 심하지 않았다. 하늘에는 비가 올 듯 말 듯, 햇살과 구름이 이리저리 엉켜 있었지만 걷기에는 덥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산길을 혼자 걷는 것, 특히 오늘처럼 조금 경사가 있는, 꼭대기로 향하는 길은 유난히 아름답다. 이런 탁 트인 공간에 서 있으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삶을 용기 있고 모험(adventurous) 가득하게, 순간순간 충만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알베르게는 보기 드물게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나는 이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오늘 하루는 보이지 않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줌마도, 사라 아줌마도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사라 아줌마는 다리가 아파서 꽤 고생 중인 듯 보였다. 그래도 나를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미소 된장 가루가 있으니 같이 수프를 끓여 먹자고 제안하셨다. 아, 얼마 만에 먹어 보는 얼큰한 국물인가. 사실은 미소 가루뿐인데도, 속이 뜨끈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이래서 내가 한국 사람인가 보다, 싶었다.


사라 아줌마는 그동안 걸으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줌마는 신앙이라는 게 무엇인지 거창하게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우리가 무엇인가 필요할 때 누군가가 나타나 도와줄 때, 그 순간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게 신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카미노를 걷는 동안,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고도 했다. 어느 날은 길을 잘못 들어 한 1킬로미터쯤 더 걸어가 헤매고 있는데, 어디선가 스페인 아가씨 세 명이 ‘짠’ 하고 나타나 길을 안내해 준 적도 있고, 나를 만나기 전부터 왠지 한국 사람을 한 번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는데, 그 직후에 바로 나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마치 제때에 맞춰 등장한 것 같은, 작지만 분명한 도움의 순간들.


좀 있다가 파멜라도 도착했다.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소녀 같은 아가씨다. 파멜라는 La Faba에서 마음을 바꿔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나는 La Faba에 오르면서 거의 기진맥진했는데, 파멜라는 La Faba까지는 수월했지만 그 이후가 더 힘들었다고 했다. 결국 우리 둘 다, 점심을 먹고 남은 힘을 짜내 여기까지 겨우 올라온 셈이다.


파멜라는 도중에 만난 스페인 아가씨들 일행과 함께 문어 요리를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8시 미사를 갈지 말지 잠시 고민하다가, ‘빨리 먹고 미사에 가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스페인 여자애는 자기 일행이 있는 식당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이제는 이렇게 헤매고 다녀도 예전처럼 짜증이 나지 않는다. 나도 반쯤은 스페인 사람이 다 된 걸까.


스페인 처녀들은 정말 쿨한 스타일이었다. 대부분 사리아에서부터 걷기 시작했고, 며칠만 걷다가 내년에 또 이어서 걸 계획이라고 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우리는 되는 대로 영어와 불어를 섞어 가며, 가끔은 파멜라의 통역을 빌려 이야기를 이어 갔다.


문어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모두 밖으로 나가 석양을 구경했다. 구름에 가려서 해가 또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저녁이었다. 구름과 태양이 만들어 내는 오묘한 색의 조화는 정말 말로 다 옮기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스페인에서는 바게트를 반으로 갈라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조금 뿌려 먹는데, 빵이 잘 마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기름기가 좀 많은데…’ 싶었지만, 나도 따라 해 보니 제법 맛있었다. 초리소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소시지 음식인데, 짭짤하고 풍미가 진해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다. 어느새 빵을 몇 개째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페인 친구가 웃으면서 “너 초리소 좋아하는구나?”라고 놀렸다. 사실, 배도 좀 고팠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도착해 보니 스페인 남자 네 명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타파스를 이것저것 시켜 제대로 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모두 영어에 서툰 편이었지만, 우리는 축구 이야기, 88 올림픽 이야기 등을 하며 그럭저럭 대화를 이어 갔다. 나는 열심히 문어를 집어 먹었다.


시간이 어느새 밤 열 시 가까이 되어 가는데도,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베르게 문 닫는 시간도 열 시인데, 이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태평할까. 파멜라에게 다섯 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웃었다. 우리는 서둘러 계산을 하고, 나와 파멜라가 먼저 알베르게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밖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산 꼭대기라 그런지 공기가 매섭게 차가웠다. 내일 날씨는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파멜라, 있지. 난 네가 정말 친동생처럼 너무 좋다.”


“헤헤, 나도 그래. 이제 한국 언니가 하나 생겼네.”


우리는 산 정상에서 추위에 떨며 서로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서둘러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몸은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훈훈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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