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Cebreiro – – Samos / 30km
자신의 마음 안에 동요가 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 안에 없는 것을 내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에게 평화를 주려면 먼저 내 안에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 남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밸런타인 L 수자)
어젯밤 내내 잠을 좀 설쳤다. 80명이 한 공간에서 자다 보니 갖가지 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내 옆 침대에서 자던 로리마저 코를 곯았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온수가 안 나와서 뮤슬리와 바나나로 끼니를 때우고 길을 나섰다.
밖은 일곱 시가 넘었는데 아직 깜깜했고, 폭우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했다. 우비를 챙겨 입고 헤드랜턴을 켜고 길을 나섰다. 앞에 청년 세 명이 걷고 있어서 뒤를 따라갔다. 처음에는 도로를 따라 걸어서 생각보다 걷기가 힘들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도로 옆 흙길로 들어섰는데 너무 추워서 손에 장갑까지 껴야 했다. 마치 늦가을 날씨 같다. 덜덜 떨며 커피 마실 생각이 가득했는데 첫 번째 마을의 카페가 문을 닫았다. 오들오들 떨며 커피 한 잔이 너무나 절실했지만 별수 없이 계속 걸어야 했다.
다음 이어지는 길은 오르막이다. 어제로 힘든 코스는 끝인 줄 알았는데, 이건 뭐지—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숨이 차오르고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도대체 마을은 언제 나오는 걸까? 겨우 오르막길을 올랐는데 안갯속에 바로 앞에 카페가 있었다. 그 기쁨이란! 나는 마치 어린애가 사탕가게를 발견한 것처럼 좋아서 단숨에 카페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너무 춥고 녹초가 되어서 핫초콜릿에 초콜릿 과자까지 샀다. 몸이 꽁꽁 얼어 있었다. 비옷을 입었는데도 점퍼 팔 안쪽까지 젖어 있었다. 계산을 하다가 아줌마가 틀린 것 같아 한참을 따졌는데(안 되는 스페인어로), 나중에 보니 내가 잘못 계산을 했다.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아줌마는 미소로 나의 머쓱함을 지나쳐 주신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왜 내가 맞다고 생각한 걸까?
옆에 앉은 스페인 아저씨가 먹는 또르띠야(tortilla)가 맛있어 보여 나도 또르띠야 콘 초리소(tortilla con chorizo)를 주문하고 커피를 시켰다. 반은 점심으로 포장을 하고 빗속에 길을 나섰다.
밖에는 어제저녁 시간에 본 데이비드가 보였는데, 신이 나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를 보면 스페인 사람 특유의 뭐랄까, 경쾌하고 쾌활함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파멜라는 아침에 알베르게에서도 못 봤는데 어디 있는지, 데이비드도 그녀를 못 봤다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맨 앞에 걷게 되었다. 도로를 쭉 걷다가 한적한 산길이 나오는데 로리가 순식간에 앞을 지나갔다. 키가 2미터나 되는 그는 걸음도 빨라 곧 뒷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나의 속도로 빗속의 마을 길을 즐기며 걸었다. 사람이 얼마나 단순한지, 금방까지 죽겠다던 표정은 사라지고 배가 부르니 저절로 힘이 나고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인다.
오늘은 걸으며, 남은 며칠 동안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이 더 깨끗해지고 평화와 믿음이 내 안에 더 깊이 자리 잡도록 메시지를 보낸다. 한 걸음, 한 걸음 닿을 때마다 내 안에 남은 부정적인 기운, 슬픔이 내쉬는 호흡과 함께 사라지고 카미노의 좋은 기운들이 내 안에 들어오기를 기원한다.
비 온 후 개인 산 아래 마을 풍경과 앞을 걸어가는 순례객들 모습이 모두 다 너무나 맑고 평화롭다. 내가 스페인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 헷갈린다. 낯익은 농촌, 혹은 산 근처의 풍경들. 낡은 집, 문간에 빨래가 말라 가고, 저 멀리 낡은 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소들의 소리가 들린다.
이런 풍경 속에 있으면 그 궁색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느껴진다. 저 안에서 누군가는 또 누군가를 위해 불을 피우고, 빨래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삶에 대한 본질적 긍정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드디어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 도착했다. 파멜라는 30분 후쯤 온다고 하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차 한 잔과 카페 콘 레체 그란데를 마시고 다음 길을 향해 떠나야 한다. 산들바람에 오늘 오후 길은 덥지 않을 것 같다.
카페를 나와 길을 나서려는 순간, 저 멀리 파멜라가 보인다. 파멜라는 오늘 8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고 한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여기서 묵기로 하고,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사모스에 오는데 가이드북과는 달리 2시간 반이나 걸렸다. 처음에는 고속도로 옆을 30분 정도 걸었는데, 2시 반에야 걷기 시작한 까닭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씩 자전거를 탄 순례객만이 “Buen Camino!”를 외치며 지나갔다.
고속도로 옆 길이 끝나고 산속 길을 혼자 걷게 되었는데, 완전 숲 속에 혼자 있게 되었다. 낮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는데 여느 마을처럼 너무나 평화롭고 한적한 길들이 이어졌다.
렌체(Renche)는 말 그대로 소들이 가득한 곳으로, 소똥 냄새가 마을을 가득 채운 시골이었다. 소똥 냄새가 향기로울 것까지는 없지만, 언제 또 이런 길을 걸어 보겠냐 싶다. 이런 길을 걸을 때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호기심이 생긴다.
중간중간에 비도 오고 숲 속은 나무 때문에 4시인데도 꽤 어두웠다. 다행히 내가 거의 지쳐 갈 무렵, 항상 그랬듯이 사모스가 먼발치에서 보였다.
산중에 있는 수도원 때문에 유명한 이 마을은 멀리서 보면 동화 속 마을처럼 너무나 아름답다. 이 마을에 인터넷이 되는 곳이 구멍가게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한 십 년 전쯤에나 썼을 듯한 컴퓨터조차 오늘은 작동을 안 한단다.
나는 사설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부분이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시키고, 통조림 샐러드를 바게트와 열심히 먹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니다 다를까 바게트 아래에 곰팡이가 핀 것을 모르고 먹고 있었다. 복숭아도 상한 것을 주셨다. 순례자들이 일회성 고객이긴 하지만, 이 조그만 마을의 인심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내 기분은 금세 카페 안에 있는 할아버지 밴드 덕분에 좋아졌다. 마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나오는 할아버지들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노래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뭐랄까, 풍요롭지는 않지만 삶의 여유와 낙이 느껴진다. 왠지 이런 모습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수도원 구경을 갔다가 데이비드 일행을 만났다. 사모스 수도원(Monasterio de Samos)은 갈리시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베네딕도회 수도원 중 하나로, 지금도 수도사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7시부터 미사가 시작되었는데,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미사 초반에 그레고리안 성가 합창이 꽤 오래 계속되었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나는 혼자 기도를 했다. 미사 끝나고 다른 순례객 틈에서 성당 안을 구경했다. 성당 안에서 예순은 되어 보이는 신부님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스토르가의 봉쇄 수도원에서도 보았지만, 사모스와 같은 이런 작은 마을의 수도원에서 평생을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테레사 수녀님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신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궁금해졌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봉쇄 수도원이나 이런 작은 마을의 수도원에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임이 분명해 보였다.
성당을 나와서 잠깐 차를 마실까 알베르게 앞 바에 들렀더니, 데이비드와 그의 친구가 손을 흔든다. 바 안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데이비드 일행도 “스페인 남자치고 축구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며 바르셀로나 팀을 응원하느라 눈이 빠질 정도였다.
우리는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작별 인사를 했다. 데이비드의 일정은 거의 운동선수처럼 하루에 35킬로를 주파하기로 되어 있어서 앞으로 다시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사람의 인연이란 것은 알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