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pital da Cruz–Melide (28.5km)
오늘은 7시 30분에 길을 나섰다. 문을 여는 순간, 새벽 공기보다 먼저 어둠이 쏟아졌다. 밖은 생각보다 칠흑 같았고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르막길은 차도였는데, 차가 지나갈 때마다 ‘저 운전자는 나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토르가에서 공짜로 얻은 형광 팔찌는 하필 배낭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멀리 빛이 보였다. ‘순례객일까?’ 희망이 잠깐 솟았다가, 가까이 가서 보니 그냥 가로등이었다. 옆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개들이 짖으면 어떡하나 같은 잡념도 들었다.
그때 문득 내가 요즘 자꾸 떠올리던 단어가 ‘믿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어둠은 어쩌면 믿음을 더 단단하게 하라는 신호일까.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평화로움’에 집중해 보았다. 가로등이 고마웠고, 심지어 자판기 불빛까지도 고마웠다.
이 어둠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그냥 계속 걷는 것. 발을 내딛고, 숨을 고르고, 한 걸음씩.
그 순간 앞에 순례객 한 명이 보였다. 알베르게에서 막 나온 듯했고 조금 쌀쌀맞은 분위기였지만,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안이었다.
일 분쯤 지났을까. 바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문을 열었다.
“커피 마실 수 있나요?” 하고 묻자, 아저씨는 활짝 웃으며 “당연하지!”라고 했다. 방금 전까지 두려움이 한쪽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 짧은 대답 하나가 그냥 감사했다.
카페에서 엘레나(Elena)를 봤다. 이탈리아 여자였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녀는 종교적인 이유로 순례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한동안 같은 속도로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날이 밝아왔다. 조그만 마을들을 지나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바는 아직 문을 안 열었고 화장실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마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한 20미터 앞, 코너 집만 지나면 숲길이었다.
‘어떻게 하지’ 생각하는 순간, 코너집에 알베르게 마크가 보였다. 노크를 하니 아직 길을 떠나지 않은 여자 두 명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시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내가 정말 절실히 필요할 때쯤 무언가 나타나는 일이 신기했다. 예전에 사라 아줌마가 “순례길은 가끔 너무 잘 짜인 계획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라고 말했는데, 오늘이 딱 그랬다.
다음 마을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가 걷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비를 쓰고 걷는데 Paolo가 보였다. 그는 나보다 한 시간 늦게 출발했는데 걸음이 빨라서 어느새 나를 앞질렀다.
걷다가 큰 개들이 있는 골목이 나왔다. 겁이 났는데 Paolo가 앞에서 멈춰, 내가 안전하게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는 “개들은 멍청해”라며 코엘료 책에 나온 개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개에 물린 적이 있다던데, 나보다 더 겁이 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오늘의 그 개들은… 멍청해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몹시 사나워 보이기도 했다.
Paolo와 헤어지고 걷다가 Abe 아저씨를 잠깐 만났다. 그리고 다시 혼자 걸었다. 비가 와서 걷기 힘들기도 했지만, 머릿속을 정리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왼쪽 발목은 이제 괜찮은데, 얼마 전부터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렸다. 1시쯤 들른 마을에 작은 카페가 있었는데 한두 평 남짓한 공간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너무 비좁아 그냥 나왔다. Paolo가 자리를 양보해 주었지만, 나는 그냥 걷는 게 낫겠다 싶었다.
비 때문인지, 산티아고가 가까워져서인지,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멜리데(Melide)에 도착했다.
비에 젖은 채 지도만 들여다보며 골목을 몇 번이나 되돌아왔다. ‘여기가 맞나?’ 싶은 문을 밀었더니 안은 알베르게가 아니라 창고 같은 공간—상자와 잡동사니 냄새가 훅 끼쳤다. 멈칫하다가, 웃음도 한숨도 같이 나와서 다시 비 속으로 나왔다.
멜리데는 도시라고 부를 만큼 컸지만, 알베르게는 규모에 비해 너무 열악했다. 한 방에 침대가 거의 스무 개. 샤워실과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는데 문제는 샤워실에 문이 없었다. 카미노를 걸은 뒤 처음으로 샤워를 못하게 생겼다. 어젯밤도 제대로 못 잤던 터라 더 막막했다.
혹시 싼 호스텔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빵집에 들러 파이와 커피로 요기하며 일기를 적고 있는데, 밖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시몬!”
나는 얼른 뛰어나가 그녀를 불렀다. 그녀의 얼굴에도 반가움이 역력했다. 우리는 마치 헤어진 연인이 만난 듯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가게 문간에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시몬이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녀는 이제 막 도착한 듯했다. 어제는 곤사르(Gonzar)에 머물렀다고 한다.
우리는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는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몬은 프랑스 지역부터 걸어와 근 1200킬로미터를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가까워질수록 뭔가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고 했다.
“신기하게… 내가 뭘 원하면, 우연처럼 그게 와.”
“예를 들면?”
시몬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플라스틱 스틱이 싫어서… ‘나뭇가지로 된 스틱이면 좋겠다’ 생각했거든. 다음 날 내 스틱이 고장 났어.”
“그래서?”
“그날 오후에, 누가 길에서 나뭇가지 깎아서 스틱을 만들고 있더라.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이거, 그 사람이 그냥 줬어.”
또 어떤 날은 혼자 걷는 게 싫증이 나서 “진지한 이야기를 누군가와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우연히 만난 순례객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유일한 수건을 잃어버려 통역을 부탁하려던 순간, 네덜란드 사람이 자기 수건 반쪽을 가위로 잘라 건네주었다고 했다.
나는 시몬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아침의 어둠과 20미터 앞의 알베르게 마크가 떠올랐다. 누군가는 이 모든 걸 그냥 우연이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우연 이상의 무엇이라 할 것이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런 식으로—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삶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생겨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 믿음은 어쩌면 “삶이 나를 완전히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은 항복 같은 것이기도 하고.
시몬은 알베르게에 먼저 들르기로 하고, 나는 도시 구경 겸 호스텔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결국 호스텔은 찾지 못했고, 대신 성당에 가게 되었다. 성당에서 기도했다.
오늘 내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
혹은 그렇게 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게 오늘 내게 주어진 임무 같았다.
시간이 늦어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부엌에서 Abe 아저씨가 보였다. 엽서 하나가 필요해 아저씨가 내게 주신 것 중 하나를 돌려드리려 했는데, 어느덧 부엌은 아저씨와 젊은 독일 커플, 그리고 나—넷이 저녁을 먹는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알베르게는 요리 도구가 없어 우리가 만든 음식이라곤 바게트와 치즈 같은 것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충분했다. Abe 아저씨는 초리조에 푹 빠져 초리조를 통째로 들고 다니신다. 그걸 꺼내 들 때마다 우리는 같이 웃었다.
그때 시몬이 들어와 “문 있는 샤워실이 하나 있다”라고 알려줬다. 나는 ‘오늘 밤은 샤워하고 잘 수 있겠구나’ 하고 안도했다. 그러자 갑자기 여기 또한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사실 이 알베르게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 건 시설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지난 10년간 나는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가보지 않은 곳,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에 대한 환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내가 파리든 런던이든 싱가포르든 홍콩이든 베이징이든—그 도시가 가진 매력 이상의 무언가가 더 중요했다.
베이징의 허름한 기숙사에서 행복한 적도 있었고, 싱가포르의 고급 빌라에서 한없이 텅 비고 외로웠던 적도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그곳이 어디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나와 교감할 수 있는 사람, 마음이 헛헛할 때 편안하게 만나 술 한 잔, 차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이 있는가—그게 생각보다 훨씬 중요했다.
가끔 어떤 곳은 너무 아름다운데도 도무지 살 자신이 없는 마을들이 있다. 스위스 레만 호수 근처 같은 곳. 레만 호수와 층층이 쌓인 포도밭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천국 같았지만, 홀로 그 안에 있을 때 외로움의 깊이는 서울에서 느끼는 그것보다 한층 더 깊었다.
문 없는 샤워실 앞에서 잠깐 좌절했던 하루가, 부엌에서 빵을 찢고 초리조를 나누는 순간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오늘 멜리데에서 내가 도착한 곳은 도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작은 자리였다.
6시 4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7시 반쯤 아베 아저씨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어두웠지만 동행이 있어서 걷는 게 한결 수월했다. 말이 많지 않아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길의 체감이 달라진다.
산티아고가 20킬로미터 남았다.
오늘은 오른쪽 발목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비도 심하게 내리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걷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카미노 시작한 이래 두 번째로 많이 걸은 날이었다. 37킬로를 걷는다는 건 몸으로는 분명히 ‘긴 하루’다. 발목이 간간이 신호를 보내고, 발바닥은 둔해지고, 어깨끈은 어느 순간부터 살을 파고든다. 그런데도 오늘은 이상하게 발걸음에 리듬이 붙었다. 버겁지만 무너지지 않는 날의 리듬이 있다.
숲길을 걸을 때 십 미터도 넘어 보이는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무들이 너무 붙어 있으면 골고루 튼튼하게 자라기 어렵다. 어느 하나만 과하게 커지거나, 둘 다 얄상해지기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사라지고 서로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여백’이 줄어든다. 그 여백이 줄어들수록 새로운 것을 도전할 힘도, 낯선 경험 앞에서 자신을 열어둘 마음도 같이 줄어든다. 가까움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까움이 어떤 순간엔 서로의 숨을 막기도 한다.
요즘은 신기하게도 종종 혼자 걸을 때가 많다. 그냥 나 혼자 걷는 정도가 아니라 앞뒤로 아무도 없다. 길 위에 나만 남아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면 언제 걸어왔는지 갑자기 안 보이던 사람들이 잔뜩 보인다. 내가 화장실에 들르거나 바에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다 쏜살같이 지나간 것일까?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도 각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흩어졌다가, 어느 지점에서 다시 모이는 것이 카미노답다.
오늘 길은 조그만 마을, 특히 소목장이 많은 마을들을 지나는 것 빼고는 숲길이 참 많았다. 어느 숲에서는 새소리가 너무나 청아했고 숲의 연초록 색깔이 예뻐서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나의 발걸음을 멈추고 완전히 자연의 색깔과 냄새, 소리에 나를 몰입시켜 보았다. 걷느라 계속 앞으로만 향하던 몸이 잠깐 제자리에 멈추자, 오히려 주변이 더 선명해졌다.
마음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이 깊고 잔잔한 평화가 밀려왔다. 어쩌면 자연이나 인간이나 모두 본질적으로는 평화와 치유의 힘을 갖고 있는데, 각박한 생활 속에서 그런 것들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진 지금 이 순간에도 완전히 현재에 몰입하는 것, 잡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음이 자꾸 앞서가고, 그럴수록 지금의 한 걸음이 희미해진다. 그럼에도 이 길 안에서 내 안에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과 자연과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 같은 것들.
Santa Irene의 사립 알베르게는 웬일인지 닫혀 있었다. 무니시팔 알베르게는 근처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데, 그 주변에는 식당도 없다고 했다. 내 다리는 조금 더 걸어도 괜찮은 상태였다. 다음 마을이 3킬로미터 정도 더 가면 있다는 말에 다시 길을 나섰다. 잠시 도로를 따라 걷고 있으려니 다시 숲길이 나온다.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따라 숲의 색이 무쌍하다. 오늘은 유난히 발걸음에 리듬이 제대로 붙은 듯했다. 하기야 내일이 카미노 끝나는 날이니, 오늘쯤은 그래야 할 때가 된 듯도 하다. 뒤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어느 나라 할머니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카미노를 걷는 할머니들의 반 이상은 나보다 걸음이 빠른 듯하다. 나는 그냥 나의 리듬대로 할머니를 앞에 가시게 하고 계속 걸었다. 내 리듬을 지키는 게, 오늘의 컨디션을 지키는 방법 같았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알베르게는 보이지 않고 알베르게 광고판은 계속 보인다. 한참을 마을 안으로 걸어가는데 비가 그친 뒤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젖은 공기 위로 갑자기 빛이 올라오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조금 전까지는 축축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피부가 뜨거워진다.
사립 알베르게를 겨우 찾아 도착해 보니 네우스가 보인다. 사리아에서 보고 처음 본다. 안 되는 스페인어로 인사만 겨우 하고 끼니를 때우려 식당에 갔다. 스페인에 온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샐러드를 먹어보는 것 같다. 몸이 피곤하면 자꾸 탄수화물만 당기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초록이 필요했다.
샤워실에서 시몬을 만났다. 방금 도착한 모양이다. 아베도 보인다.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은 마을 알베르게에 머무르게 되었다. 길 위에서는 계속 흩어지고, 또 이렇게 만나게 된다. 내일이 끝이라니—그 사실이 아직은 실감 나지 않는다.
Pedrouzo – San Paio – Lavacolla – Monte do Gozo – Santiago de Compostela (20.3km)
7시 30분쯤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베도 시몬도 이미 출발하고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치즈와 바게뜨를 대강 먹은 터라 그냥 걷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인데도 마음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오늘은 ‘완주’라기보다 ‘통과’해야 하는 하루처럼 느껴졌다.
도시를 빠져나가자 곧 숲길이 시작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 없이는 길과 숲을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며칠 전 혼자 어둠 속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라 앞서 가는 사람을 따라가려 했지만, 그는 빠른 걸음으로 이내 사라졌다. 나는 길목에서 잠시 멈췄다가 뒤에서 오던 사람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랜턴은 내게만 있어서 내가 앞서 걸었다. 그런데 이 어둠 속에서는 내가 앞에 있다는 사실보다,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위안이 된다. 같은 길이라도 계절과 시간, 날씨, 그날의 마음과 동행에 따라 기억의 색은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의 숲은 어둠 때문에 더 촘촘했고, 그래서 사람의 존재가 더 또렷했다.
동이 트기 시작하자, 문득 혼자 걷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지막 장면은 혼자 보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그래서 속도를 조금 올렸다. 그러다 작은 마을의 바에 들러 모닝 커피를 마시려는데 아베의 배낭이 보였다. 조금 있다가 파올로와 안드레아도 들어왔다. 안드레아일행은 어제 Santa Irene에 머물렀는데, 새벽 숲길을 랜턴 없이 Paolo의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걸어왔다고 했다. 내가 전날 걸었던 숲길을 떠올리니, 그 새벽이 얼마나 긴장이었을지 짐작이 갔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다시 걷는다. 마을을 지나면 숲이고, 숲을 빠져나오면 또 마을이다. 어디가 어디 숲이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그 숲에서의 느낌—전체적인 색감, 새소리, 공기의 냄새—그런 것들은 그림처럼 남아 있다. 오늘의 숲길도 어쩌면 내가 예전에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걸었던 숲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자연이 만들어낸 조화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딛고 있다는 사실이 유난히 선명했다. 그저 감사했다.
아침에는 배낭이 누가 들어주는 것처럼 가벼웠는데 시간이 지나자 오른쪽 발목에 압박감이 생기면서 배낭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끝이 가까워질수록 몸은 마지막 점검을 하듯 신호를 보낸다.
산티아고 전 마지막 마을, Monte do Gozo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편이었고, 월요일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니 카페에 아베가 앉아 있었다. 다리가 괜찮냐고 묻자 그는 “걸을만해”라고 말하며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마지막 구간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몸을 돌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끝까지 간다.
카페 옆 작은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소박한 성당을 보면 늘 애틋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했을까. 가족의 건강, 농사일,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소망과 부족함…. 나는 무릎을 꿇고 잠시 앉았다.
산티아고까지 이제 5킬로미터. 내 여정은 어땠는가.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요 며칠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카미노를 걸었다고 내가 완전히 달라지는 건 아니다. 길 위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지키려면 또 다른 여정이 필요하다. 그 여정은 결국 내가 돌아갈 일상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뿌리를 가진 변화가 된다.
산티아고 시내는 생각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됐다. 화장실 때문에 들른 카페에서는 차에 케이크까지 서비스로 주고 1.1유로였다. 친절한 아저씨는 대성당까지 20~30분쯤 걸린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내 마음은 놀라울 만큼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안도감이 있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건 ‘그냥 걷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무념무상에 가까운 상태로, 나는 방향을 찾으며 도시를 통과했다.
안드레아의 말이 떠올랐다.
“산티아고에 도착한다고 카미노가 끝나는 게 아니야. 그 여정 자체—매일매일이 내게는 카미노였어.”
도착이란 무엇일까. 목적지란 무엇일까. 우리는 매일 살아가며 종착지—죽음에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건, 삶 안에서 어떤 소망 하나를 ‘완결’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마다 의미는 다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엔 종교적 이유보다, 삶에 변화가 필요해서 걷는 이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구시가지로 들어서며 나는 빵집(Panadería)에서 작은 초콜릿 파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대로 걷고 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누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안드레아였다. 안드레아, 파올로와 함께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섰다.
성당은 장엄했다. 청명한 하늘 때문인지, 미사를 끝내고 나온 사람들 때문인지, 아니면 ‘여기가 끝’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무덤덤하게 서 있는데 저 앞에 시몬이 보였다. 우리는 포옹을 했다. Simon은 도착하자마자 감정이 너무 강해서 한 시간이나 울었다고 했다.
성당 앞에 앉아 있자 지난 한 달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초반의 발목 통증, 스틱을 목발처럼 짚고 오르막을 오르던 날들, 38도의 무더위 속에서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던 시간, “이제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기 직전 마을이 나타났던 순간들…. 그리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Keep walking. 내 여정은 그 말 하나로 요약될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했던 만남 속에서 행복했고, 평화로웠고, 혼란스러웠고, 힘들었지만—계속 걸었다. 힘들면 조금 쉬고, 내 리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내 속도로.
이 길이 나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성당 앞에서 그 질문을 오래 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