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8/29. 느리게 걷는 연습

Samos – Teiguin – Sarria – Barbadelo

by 비아루나 Via Luna

어제 늦게까지 걸었던 탓인지 오늘은 거의 일곱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아침 샤워를 하고, 오늘은 한참 동안 바가 없을 것 같아 tortilla con chorizo를 시켰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원했던 건 tortilla francesa con chorizo였다. 딱딱한 바게트 안에 말린 소시지를 씹어봐도 너무 질기고 딱딱해서 먹기가 힘들었다. 커피도 주문했지만 아가씨는 다른 주문을 먼저 받느라 내 주문은 까먹은 모양이었다. 우선은 어제 사둔 요구르트에 바게트를 꾸역꾸역 먹고 계산을 한 뒤 걷기 시작했다.


걸은 지 거의 30일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왜 아직도 사소한 일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 바람이 쌀쌀하지만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어제 미사를 보았던 6세기에 지어진 성당을 지나 바에서 카스텔라 빵을 샀다. 왜 내가 이걸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입으로 들어간다. 아, 내가 온몸에 불량식품을 아침부터 쑤셔 넣고 있구나.


길이 제대로 맞는지 불안해질 즈음, 다행히 카미노 표시가 나타난다.


한참을 도로 옆으로 걷는다. 가끔 큰 트럭이 지나가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길이 평평한 덕분에 아침부터 무겁게 느껴졌던 배낭을 지고 가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다. 삼십 분쯤 걸었을까, 숲길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지금부터는 두 갈래 길을 가로질러 조그만 마을 여러 개를 돌며 Calvo로 가는 것 같다.


오르막을 오르자 완전한 적막 속에 새소리만 들리고 사람은 그림자조차 없다. 안개가 자욱한데 하늘도 숲도 너무나 평화롭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너무 빨리 걸어온 건 아닐까.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거리가 있고, 오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면 일정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이니까 정말 천천히, 내 호흡과 발자국을 느끼며 걸어 보기로 한다.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어쩌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우리 안에 평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까지도 처음부터 다 주셨는지 모른다. 다만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정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들을 늘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건 아닐까 싶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몸과 마음의 독소가 빠져나가고, 자연과 카미노의 맑은 에너지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며 발을 옮긴다. 다른 때 같으면 10분이면 거뜬히 지나갈 길을 오늘은 두 배쯤 느린 속도로 걷는 것 같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카미노 길을 걷지만, 그들 각자의 경험은 모두 너무나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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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배낭이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어제는 10킬로나 더 걸었는데, 오늘 사리아 근처에 도착해 보니 아베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내가 오늘 속도가 무지 느리긴 한 모양이다. 원래 계획은 포토마린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어려울 것 같다.


사리아는 생각보다 큰 마을이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를 얻고 다시 길을 걷는다. 슈퍼에서 사과 두 개와 요구르트를 하나 샀다. 가다가 인터넷 카페에 들렀는데 1시부터 4시까지는 휴식 시간이라고 한다. 스페인에 와서 말로만 듣던 시에스타가 정말 있나 없나 했지만, 아주 큰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불문율처럼—특히 가게들은—오후에 두세 시간 정도 문을 닫는 것 같았다. 쇼핑하는 사람도 없고 문을 연 가게들도 거의 없다. 아예 영업시간표에 시에스타 시간이 ‘영업 외 시간’으로 박혀 있는 느낌이다.


사리아에서 반가운 얼굴을 또 만났다. 네오스였다. 나는 네우스가 한참 뒤에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벼룩에 물렸던 것들은 거의 다 나은 것 같았다.


사리아 길을 걷던 중 눈에 띄는 아가씨 두 명을 보았다. 그냥 한눈에 한국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스무 살 초반쯤 되어 보이는 두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 가방이 내심 불안해 보였다. 비라도 오면 어쩌려고 종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지.


두 친구는 레옹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오늘 사리아로 왔고, 오늘부터 걷기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세상에나, 열흘 걷는 것에 대비해 햇반과 라면까지 가져왔다니. 걷는 첫날부터 샤워 타월까지 알베르게에 두고 온 나로서는 헉 소리가 절로 났다.


이 친구들은 정말 예쁘고 날씬했는데, “열흘간 걸으면 살이 얼마나 빠질까요?” 하고 묻는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거의 살이 빠질 생각을 안 하는 나로서는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긴 하다. 내가 걷는 체질인가? 아니면 한국에서는 일 때문에 너무 바빠 세끼를 제대로 못 챙기다가, 여기서는 꼬박꼬박 챙겨 먹어서 그런가?


그래도 사라 아줌마와 헤어진 뒤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라, 나만 유난히 반가웠던 듯하다.


사리아 중심부의 언덕을 내려오는데 교회에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것 같은데, 유명한 사람이 돌아가셨는지 방송국 차까지 대기 중이었다. 나는 인파를 헤치고 도시를 빠져나와 시골길 위에 섰다.


조금 걷다 보니 무인 자판기가 보였다. 소들이 간간이 지나가는 이 시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자판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마땅히 바나 식당이 없어 순례자들을 위해 설치한 것 같았다. 자판기 앞 테이블에서 젊은 커플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20대 초반의 배낭여행이 떠오른다.


그때 한 달 넘게 유럽을 여행하며 매일 식빵에 잼을 발라 먹는 게 일상이었고 가끔 먹는 맥도널드가 그렇게 호사스러운 한 끼였었다. 그런데 그때를 떠올리면 남루했던 기억은 전혀 없다. 모든 것들이 새롭고, 매일매일이 신나고, 설렘으로 충만했던 것 같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없어도 도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만으로 빛날 수 있는 날들. 그때의 나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을까—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식빵을 먹으면서도 런던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볼 돈은 아깝지 않았던 시절. 패기 하나로 살았던 시절. 지금 저 연인들도 언젠가 지금 이 시간을 남루함이 아니라 충만하고 따뜻한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드디어 바바델로 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는 야외 트럭에 있는 바와 사설 알베르게에 있는 식당이 전부였다. 공공 알베르게도 있고 사설 알베르게도 있는데, 사설 알베르게는 좀 비쌌다. 그래도 16세기에 지어진 건물을 가정집처럼 개조해 만들었다는 설명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오늘은 따뜻한 물로 여유 있게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에 사설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오늘 여기 묵는 사람은 나 혼자인 것 같다. 내가 들어간 방에 침대가 네 개나 더 있었는데, 혼자 방 전체를 쓰게 되었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마친 후, 트럭 바에 가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근처 알베르게에서 쉬고 있던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젊은 청년 둘. 이전에 몇 번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아, 라울과 함께 식사를 하던 이탈리아 청년들이었다. 이름은 파올로와 루디.


라울과도 통화했다. 라울은 심리상담가도 만나고 요가도 시작했다고 한다.



Day 29. 완벽한 안전이라는 환상


새벽의 개들, 그리고 Paolo

오늘은 7시 30분에 기상했다. 같은 숙소에 머무르는 사람이 없어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밖은 아직 깜깜했다. 샤워를 마치고 짐을 챙기는 사이, 창밖이 조금씩 밝아왔다. 16세기에 지어졌다는 이 집은 아직도 모두 잠들어 있는 듯 고요했다.


조심히 문을 열고 나오자 어제 봤던 큰 개 세 마리가 마당에 있었다. 나를 빤히 보는데도 다행히 짖거나 덤비지는 않았다. 저 앞에 순례객 하나가 보였다. 오늘은 거의 30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

아침으로 사과를 먹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리하여 아침 식사는 반쪽짜리 사과가 되고 말았다.

어제 회사 이메일을 잠깐 확인한 탓에 잡생각이 올라왔지만, 이내 다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제 봤던 이탈리아 남자애였다. 이름은 Paolo.


생각해 보니 예전에 라울 일행과 다닐 때 저녁을 가끔 같이 먹긴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Paolo는 어제 내가 머문 숙소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며, 야채수프와 토끼고기, 치즈케이크가 모두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

그는 11년 동안 해오던 기계 엔지니어링 일을 얼마 전에 그만뒀다고 했다. 혼자 걷는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그리고 오래 품어온 소망인 카미노를 이루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5년 전에도 폰페라다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은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알베르게도 훨씬 많아지고 순례객도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점퍼를 풀어 배낭에 매달고

점퍼를 두 겹이나 껴입었더니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Paolo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안에 입었던 점퍼를 배낭에 매달았다. Paolo는 저만치 앞서 갔다.

한동안 작은 마을과 나무들, 소 목장, 소박하고 조금 낡은 집들의 풍경이 이어졌다. 그러다 다시 숲길. 갈리시아에 들어와서는 수백 년은 된 듯한 나무를 곧잘 본다.

길 건너 카페에 들러 커피를 시켰더니, 얼마 전에 봤던 캐나다 여자애가 앉아 있었다. 나는 애플케이크까지 함께 주문했고, 우리는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이메일을 교환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혼자 걷고 있는데 뒤에서 스페인 젊은 친구 네 명이 큰 소리로 떠들며 다가왔다. 조용히 걷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 그들을 앞에 두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멈추는 듯했다. ‘이때 내가 확 앞서가야지’ 생각하던 찰나, 그중 한 명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사진을 찍어주고 나서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라울 일행과 다닐 때도 누군가에겐 저렇게 보였을 수 있겠구나. 나는 조금 더 조용히 걷고 싶어서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앞질렀다.


화장실이 급해질 즈음, 조그만 바가 나타났다. 가이드북에는 없는 마을의 바. 이런 걸 만나면 왠지 공짜로 뭔가를 얻은 기분이 든다.

10시 30분쯤, 아침 겸 점심으로 tortilla de patatas(토르티야) 플라토와 차를 마셨다. 순례객들이 옆을 계속 지나갔다. 사리아에서 출발한 사람들 같았다. 내가 오늘 늦게 출발하긴 했나 보다.


작은 마을을 지날 때 닭들이 밖에 나와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내리막길에 조그만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안에 의자가 없었다. 예수님 상과 사람들이 쓴 수많은 기도문, 낙서가 벽을 채우고 있었다. 이런 작은 교회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아주 짧게 기도하고 다시 나왔다.

오늘은 덥지 않아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Portomarín, 콜라 한 캔

Portomarín을 약 5킬로 남겨두고, 테라스에 유리문까지 갖춘 예쁜 알베르게 겸 바에 들렀다. 오래된 돌 구조 위에 유리로 벽을 만든 곳이라 이례적으로 현대적이면서도 분위기가 있었다. 그곳에서 안드레아(Andrea)를 만났다. 안드레아도 오늘 Hospital da Cruz까지 간다고 했다. “저녁에 알베르게에서 보자”며 우리는 다시 각자의 속도로 걸었다.


Portomarín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됐다. 중간중간 기념품과 가방을 만들어 파는 집도 보였다. 작은 마을들이 순례객 관련 비즈니스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멀리 Portomarín 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1시가 넘었다. 다리가 슬슬 아파오고, 햇볕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성당 근처 바에 들어가 콜라를 마셨다. 캔이 차가워 손바닥이 젖었다.

엄마에게 문자를 확인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다음 주에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마음이 바로 놓이지 않았다. 언니는 생각보다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나만 걱정하는 게 습관이 된 걸까.


어제 들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안전을 갈구할수록 더 불안해진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곳에 속할 수 있다는 말. 나는 ‘안전’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때, 오히려 더 안전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건강을 걱정하고, 집을 걱정하고, 돈이 없어서 혹은 있는 부를 유지할 수 있을까 봐 걱정하고, 교통사고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봐, 떠나갈까 봐 걱정한다. 걱정하려면 끝이 없다. 어떤 부분은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쥐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아마 “완벽한 안전”이라는 환상일 것이다. 남은 며칠 동안, 삶에 대한 믿음—삶이 결국 선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믿음—그 바닥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Portomarín을 떠날 무렵 파멜라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로리를 만났다. 파멜라는 어제 내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크레디트가 부족해서 못했다고 했다.


오후의 숲, 구름, 그리고 기록

2시가 넘어서 다시 길 위로 나왔다. 길은 곧 숲으로 접어들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걷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고요함 속에서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아직 3시밖에 안 됐는데 어쩐지 이미 늦은 시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끔 자전거 순례객들이 휙 지나갔다. 어느 구간에서는 곧 도로 옆으로 붙어 걷기도 했다.

오늘 하늘의 구름은 장관이었다. 멀리 옥수수밭과 하늘, 구름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숲길의 낙엽과 연초록이 공존하는 색은 빛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그 오묘함은 카메라로 담기 어렵다.


어쩌면 사랑도, 아름다움도, 절절하고 찬란한 감각도 그 순간에만 각인되는 것인지 모른다. 글이든 사진이든 기록은 그걸 다시 떠올리는 일을 도울 뿐이다.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은 때에는 배낭의 무게가 더 또렷이 느껴졌다. 속도를 조금 내보려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마침내 알베르게 홍보판이 보였다. 곧 Gonzar가 나올 것 같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Gonzar의 바에는 순례객들이 많았다. 대부분 늦은 점심을 끝낸 듯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돌아보니 캐나다 Gillian이었다. 그녀는 이미 2시에 도착해 샤워까지 마치고 말끔한 모습이었다.

Gonzar 알베르게는 이미 다 찼다고 했다. 시간이 꽤 늦었고, 앞으로 한 시간은 더 걸어야 Hospital da Cruz에 도착할 것 같았다. 나는 오렌지 주스 한 잔만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숙소는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이럴 때는 단순한 믿음이 필요하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도로 옆 오솔길로 들어가기도 했다. 어떤 곳은 블랙베리 천지였다. 어제오늘 블랙베리를 따 먹느라 시간이 지체돼 자제 모드였지만, 문득 상상했다. 옛날 순례객들은 자연이 주는 것들을 먹고, 교회에서 탁발하거나 잠을 청하고, 가끔은 풀밭이나 숲 속에서 자기도 했겠지.


카미노가 끝나면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여기서 얻은 많은 것들이, 그것을 지키려는 내 안의 노력과 기도 없이는 일상의 각박함 속에 금방 묻혀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경험해 본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카미노를 걸어본 나는 결코 예전과 똑같은 내가 아닐 것이다.



Abe 아저씨, 엽서, 그리고 Spanish time

지친 다리를 끌고 Hospital da Cruz 알베르게에 도착했더니, 1층 부엌 옆 휴게실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Abe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어제 Barbadelo에 머물 예정이었는데 길을 못 찾아 더 걸었다고 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7시에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라고 알려주셨다. 남았다며 엽서와 우표도 내게 건네주셨다.


아저씨는 우리 아빠보다 조금 젊을 텐데, Abe 아저씨를 보면 우리 아빠도 저렇게 자기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 세대는 삶을 늘 생존 모드로만 살아와서,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샤워를 마치고, 오늘은 너무 늦어서 처음으로 세탁기와 드라이어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알베르게에서 Paolo와 Andrea도 다시 만났다. 이제 3일 남았다.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Abe 아저씨가 두리번거리고 있자, 스페인 사람으로 보이는 순례객들이 “Spanish time!” 하고 웃었다. 아저씨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스패니시 타임, 스패니시 타임”을 연발했다. 일본과는 많이 다르다며 즐거워하셨다.


아저씨는 카미노가 끝나면 한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철저한 계획과 효율이 지배하는 일본과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이 대책 없는 '스패니시 타임'은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해방감을 주었다.

완벽한 숙소 예약도, 아빠에 대한 걱정도, 내일의 날씨도 사실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주인이 오지 않는 식당 문 앞에서 허허 웃는 아베 아저씨처럼, 나도 이제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단순한 믿음에 몸을 실어본다. 그 믿음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가장 안전한 안식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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