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0. 길 위의 천사들

Religeos – Leon

by 비아루나 Via Luna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 무리한 탓인지 다리가 영 감각이 없었다. 한참 뒤척이다 오늘도 더울 것 같아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조용히 짐을 챙기고 바나나를 먹고 발목 통증 완화를 위해 이보페민을 삼켰다. 밖은 아직도 깜깜했지만, 별이 가득했다. 작은 동네라 먼저 출발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헤드랜턴을 비추자 어렴풋이 노란 화살표가 보였다. 며칠 동안 지나온 작은 동네마다 흙이나 볏짚으로 만든 집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황토집과는 다른, 시골 마을 특유의 모습이 신기했다.



마을을 거의 벗어났을 때 갈림길이 나타났다. 카미노 표식도 보이지 않았다. 5분쯤 망설이다 지도를 보고 앞 쪽 길을 택했다. 저 멀리 마을의 불빛과 휘영청 밝은 달만 보였다. 길이 끝없이 뻗어 있어다. 그런데 저 멀리 숲에서 불빛이 반짝거렸다. 사람인가? 아니었다. 반짝거리다 옆으로 가니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말해주던 도깨비불이 스페인에도 있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걷는데도 표식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도의 시골길이 이 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뒤에서 스틱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새벽노을 위로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다. 아, 오늘도 정말 더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뒤에는 열흘 전 나와 같은 방에서 심하게 코를 골았던 오스트리아 아저씨가 다른 남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저 사람은 내가 자기를 심한 코골이로 기억하는지 꿈에도 모르겠지.’ 피식 웃음이 났다. ‘뭐, 누군가도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



아침이라 날씨가 조금 쌀쌀했다. 한 시간 반 만에 작은 마을에 도착해 따뜻한 카페오레와 갓 구운 빵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이 마을은 어제 머문 곳보다 훨씬 컸다. 마을을 거의 빠져나올 무렵 또 갈림길이 나타났다. 나는 도로를 피해 숲길로 갔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이 길이 맞냐고 물으셨다. 길 중간에는 넘어진 듯 무릎을 살피는 여자도 있었다. 나는 함께 걷던 남자와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갔는데, 한참 뒤 그 사람이 되돌아왔다. 길이 틀린 것 같다고 했다.


지도를 다시 보니 길은 도로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나무숲을 걷고 있었다. 나는 되돌아가기로 했지만, 남자는 계속 가겠다고 했다. 다시 마을 어귀로 돌아가니 내가 가지 않은 그 길에 카미노 표시가 있었다. 순간 프루스트의 시가 떠올랐다. '가지 않은 길.' 오늘은 되돌아올 수 있었지만, 인생의 선택에서 되돌릴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이 길이 맞는지 물어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태양이 뜨거웠다. 오늘은 계속 도로와 바짝 붙어 가는 길이었다. 자가용은 괜찮았지만, 초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건조한 길을 걸으니 라울과 함께 걷던 길, 그리고 그와 나누었던 대화가 그리워졌다. 라울도 이제 아스토르가 어딘가를 걷고 있겠지?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 자신이 가는 길을 가장 빨리 알고 계획하면서도,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제 내 발 주치의인 라울도 없는데, 오른쪽 새끼발가락뿐 아니라 왼쪽도 물집이 생길 조짐이 보였다. 어제 무리한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세 번째 마을 입구의 작은 바에서 토르티야 프란체사를 주문했다. 바게트 빵 안에 계란이 얹혀 나왔다. 여기서 오스트리아 아저씨들을 또 만났다. 계속 걸어 레온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바 앞에서 젊은 순례자 두 명이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이별하는 걸까? 보는 나까지 슬픔이 전염되는 듯했다.


부르고스 정류장에서 그와 긴 포옹을 하고 싶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그가 많이 보고 싶어질 것 같았다. 나는 그저 환하게 웃었다. 다시 언제 볼지 모르지만, 웃는 모습으로 항상 기억되고 싶었다. 순례길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우리가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땀에 절인 옷을 빨고, 짧은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맨 채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물질적인 것과 멀리 떨어져 있는 순례길이라서, 우리는 영혼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레온에 다다르자 한참을 도로 옆을 걷다 다시 산 중턱을 올랐다. 레온 시내가 한눈에 보이다가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내리막길을 처음 걸었던 피레네 산맥이 떠올랐다. 그때는 배낭이 앞으로 쏠려 넘어질까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이런 내리막길쯤은 거뜬해졌다. 지난 450킬로미터를 그저 걸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도시 한복판을 걷는 것은 특히 37도가 넘는 날씨에는 더 힘들었다. 오늘은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머물 예정인데, 도시가 큰 탓인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원에서 좀 쉬다가 올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주유소에서 요구르트를 두 개 샀다. 주유소 주인은 지도까지 꺼내서 내가 가야 할 곳을 알려줬다. 나는 아직 도시 맨 끝자락에 있었다. 2~30분은 더 걸어야 할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길치인데 외국에서는 길을 잘 찾는 편이다. 지도가 쉬운 것도 있지만, 잘 물어보는 습관 덕분인 것 같다. 문득 평소 일을 할 때는 왜 그렇게 질문을 망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일 텐데, 확실하지 않은 것을 '그렇겠지' 하고 넘어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카미노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통해 나의 일상과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평소 여행에 익숙해진 내가 이번 카미노에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이 여행이 내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파울로 코엘료처럼 인생의 소명을 깨닫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반 이상 지나온 길을 걸으며, 이 여정의 끝에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수도원을 개조한 알베르게에서는 저녁 미사와 축복 시간이 있었다. 미사 시간에 스페인어는 못 알아듣지만, 엄숙한 분위기가 왠지 좋았다. 이곳은 한 방에 50개의 침대가 있는 대형 도미토리였다. 샤워 후 낮잠을 자고 거리로 나섰다. 약국은 4시 반에야 문을 열었다. 오른쪽 물집 약과 바셀린 로션을 사야 했다. 레온은 정말 아름다웠다. 부르고스와는 달리 위압적인 분위기 없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발목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도시의 아름다운 기운 덕분인지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오늘은 혼자 저녁을 먹었다. 혼자 먹는 게 익숙해졌지만, 다니엘, 라울, 마르타와 함께 웃던 저녁이 문득 그리웠다. 바에서 저녁을 주문했는데 감자와 문어볶음 비슷한 것이 나왔다. 얼마 전 순대처럼 생긴 음식을 보고 무척 신기했다. 우리가 모르는 문명의 교류가 어느 역사 한 시점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대성당 구경을 갔으나 종료 10분 전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수위 아저씨에게 애원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는데 왜 나는 안 되는지 물어봐도 스페인어만 반복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성당 맞은편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늘 저녁은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가로등 빛 아래 거리는 유럽 도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런데 알베르게를 찾는 게 복잡했다. 한 시간을 헤매다 알베르게를 찾았는데, 9시 반 미사 때문에 문이 잠겨 있었다. 다행히 나만 못 들어간 게 아니었다. 밖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꽤 많았다. 10시쯤 되자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순례객이 50명도 넘게 모였다. 모두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듯했다. 벨을 눌러도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 열쇠를 가지고 나타났다. 휴, 길에서 노숙하는 신세는 면했다.




오늘 내 옆 침대 아래칸에서 자는 아줌마가 벨기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냐고 물었다. 아줌마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알베르게 욕실에서 사고를 당하셨다고 했다. 제발 생명에 지장이 없기를 바랐다. 길을 걸으며 이 길에서 돌아가신 사람들의 무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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