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Nicholas del Real Camin– Religeos
순례길에서 가장 많이 걸은 날이다. 새벽 6시 20분에 출발해서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사하군에 들어서니 도시 어귀부터 호텔과 레스토랑이 보였다. 날씨가 꽤 쌀쌀해서 따뜻한 카페라테와 토르티야를 시켰다. 모던한 분위기에서 아침 식사를 하니 마치 관광객이 된 기분이었다. 햇살이 따가운 걸 보니 오늘도 무더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1.5리터짜리 물을 사서 빈통에 나눈 후 배낭 양쪽에 매달고 다시 걸었다. 사하군 시내에는 규모가 큰 알베르게가 많았다. 그중 하나는 교회를 개조한 듯 보였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면서 단체로 오는 순례객들이 눈에 띄었다. 단체 순례객들은 배낭은 밴에 싣고 가벼운 짐만 진 채 걷고 있었다. 나는 번잡한 사하군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더위 탓인지 마을은 텅 비고 황량해 보였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험한 코스와 편한 코스였다. 나는 약 이천 년 전 로마 병사들이 걸었다는 ‘카사 로마나’ 길을 택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걸었던 길과는 딴판이었다. 진한 황토색 땅은 먼지가 날렸고 마치 미국 서부 영화 세트장에 있는 듯했다. 작고 동그란 모양의 나무들은 아프리카의 스텝을 연상시켰다. 끝없이 펼쳐진 길 위에는 집 한 채, 사람의 손길도 보이지 않았다. 사막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이천 년 전 로마 군사들은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걷다 보니 옆에 독일 아줌마와 말동무가 되었다. 아줌마는 독일에 한국인 친구들이 많다며 반가워했다. 육십이 넘었지만 활기가 넘쳤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이 왔다. 땀을 닦으며 간헐적으로 보이는 나무 그늘에 감사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줌마는 잠시 쉬어 가겠다고 했고, 나는 다시 혼자 걷게 되었다. 아직 정오 밖에 되지 않았는데 배낭은 무거웠고 다리가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물은 이미 한낮의 열기로 미지근하다.
‘조금만 더 힘내자’ 저 앞에 마을이 보였다. 하지만 마을 입구로 들어서도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수도꼭지를 발견하고 찬물에 얼굴을 씻으니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잠시 후 독일 아줌마도 도착했다. 조금 더 걸으니 아담한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이미 몇몇 순례객들이 정원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다이어트 콜라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독일 아줌마는 조금 더 걸을 예정이지만 중간에 쉬운 길로 걷겠다고 했다. 나는 같이 갈 수 있는 데까지 아줌마와 함께 걷다 헤어지기로 했다.
길을 따라 걷는데 화살표가 헷갈렸다. 마을을 빠져나와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길 왼쪽은 밀밭 다른 쪽은 황량했다. 우리 둘 외에는 길에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 다행히 화살표를 발견했다. 어느덧 아줌마와 내 길이 나뉘게 되었다. 그녀는 내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몇 시간 같이 걸었을 뿐인데 정이 든 느낌이었다. 우리는 서로 포옹하며 ‘부엔 카미노’를 외치고 각자의 길로 걸어갔다.
흙길이 다시 시작되었다. 오전에 걸었던 길보다 더 황량한 ‘카사 로마나’였다. 태양은 정오처럼 맹렬히 열기를 뿜었다. 더위에 지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보이는 것은 마른땅과 올리브나무뿐이었다. 한참을 걷다 화살표가 넘어져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 이르렀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은 없었다. 남은 물도 많지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직진하기로 했다. 자전거 바퀴 자국이 보여서 완전히 틀린 길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얼마 후 노란 화살표가 보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오후 3시가 넘었다. 평소 같으면 도착했을 시간인데 길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이 길을 즐기기로 했다. 황량한 길에 혼자 있는 것은 외롭기도 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의 오래된 상처들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태양아래서 슬픔이 바짝 말라서 훨훨 날아가기라도 한 듯,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 구름이 모여들더니 내가 서 있는 반경 한 500미터에 그늘이 생겼다. 그 순간, 내 마음을 하늘이 들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신비로운 기운을 느꼈다.
그늘은 잠시 머물다 사라졌고, 나는 다시 뜨거운 햇볕 아래를 걷게 되었다 눈물이 마를 때쯤, 기차역 선로 근처를 걷게 되었는데 거의 다 왔나 싶었는데 왠 걸 앞에는 대규모 공사가 한 창이라 난 공사판 한가운데를 뚫고 화살표를 따라 언덕 배기 같은 산을 또 올라야 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기 시작했고 땡볕에서 거의 열 시간을 넘게 걸은 나는 정말 한 발자국도 더 옮기기 어려웠다.
나무들이 즐비한 숲 길에 순례자를 위해 마련된 돌로 된 테이블에서 마지막 남은 사과 한 조각과 물을 마시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언덕을 넘으니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저 마을까지는 족히 몇 킬로미터는 될 것 같은데 나는 탈진 일보 직전으로 도저히 더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경운기라도 있으면 태워달라고 애원할 태세였지만 사람은커녕 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 걷다가 한 2평 정도 되어 보이는 창고를 찾았다. 우선 창고 그늘에 앉아 발목을 살폈다. 발목이 영 신통치 않아 로션을 바르고 발가락에 물집도 다시 살피고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저 멀리 보이는 마을까지는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아, 뒤쪽 마을로 되돌아가 확인하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이 마을이 오늘 목적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경운기라도 타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터벅터벅 걸음을 걷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화살표다! 이 마을이 그럼 맞는 거야? 난 반쯤 죽어가면서도 갑자기 힘이 솟았다. 물어물어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니, 벌써 여섯 시가 넘었고 나는 저녁 먹을 힘도 없어서 샤워하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나 잤을까? 이층 침대에서 내려와 어슬렁어슬렁 바에 가보니 이미 날은 어둑해져 있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가 죽은 사람이나, 나라는 사람이나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 다 계획을 하기는 한단 말인가?
어쩌면 에머슨의 말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고 행복하고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난 너무 심각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