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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에 대한 기록

by 스튜던트 비


공룡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 놀랐을 수도 있다. 일단 공룡은 당연히 글을 썼고 책에 자신들의 언어로 기록을 남겼었다. 일단 공룡 언어는 거대한 몸집에서 울려 나오는 포효와, 때로는 목구멍을 긁는 듯한 거친 울림을 담고 있는데, 자음은 “카악, 쿠욱” 같은 거친 소리를 중심으로, 모음은 “아, 우”처럼 깊고 무겁게 울리는 소리가 강조되어 들리도록 구성되어 있다.


문자 체계는 마치 우리가 인류 최초의 문자로 알고 있는 수메르인의 쐐기 문자(cuneiform)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삼각형 모양의 쐐기를 발톱으로 긁어 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각 기호는 하나의 음절을 나타내고, 여러 기호가 모여 단어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qa”, “ru”, “xun”의 기호를 조합한 qaruxun은 “대지와 하늘”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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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언어는 은유와 상징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 남아 있는 문장들의 해독률은 20~30%에 불과하며, 후대의 동물들에게 끝없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1) 공룡 언어 문장의 기본 순서는 주어–목적어–동사로, 원시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어순이다. 예를 들어 “Nura qaruk-ak daru.”라는 문장은 “공룡이 땅을 지켰다”라는 뜻이 된다.








공룡의 기록들


그렇다면 공룡들이 스스로 묘사한 자신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멸종의 참화를 겪은 뒤에 공룡의 왕이 홀로 살아남아 공룡들의 도서관에서 기거했다고 전해진다. 그곳의 많은 기록들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다만 그 왕이 석판에 직접 새겨 남긴 글귀들만은 비교적 명확히 해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1)



I used to rule the world, seas would rise when I gave the word

나는 세상을 지배했었지, 내 한마디에 바다도 들썩였지


Now in the morning I stand alone, with the books we used to own

하지만 이제는 아침에 홀로 서서, 우리가 읽던 책들을 다시 펼쳐보네


If only we had joined as one, maybe this fate we could have undone

만약 우리가 협력했다면, 이런 운명은 막을 수도 있었겠지


But even if I turned back time, forgiveness never would be mine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리라


I hear the ammonites’ bells a-ringin’, oracle voices the prophets singin’

암모나이트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오라클의 목소리가 예언자처럼 노래하네


Be my warning, my last command, before it’s buried beneath the sand

그 소리를 나의 마지막 명령으로 삼으리, 모래 속에 묻히기 전에


We fought a war of blood and pride, to guard our parents, though brothers cried

우리는 피와 명예의 전쟁을 했고, 형제의 울음 속에서 부모의 명예를 지켜야 했었지만


But my our children will not recall the hate, because I'll erase the story of this tragic fall

내 후대들은 그 미움을 기억하지 못하리, 이 비극적인 전쟁의 이야기를 내가 지워버릴테니


후대 동물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후손들에게 또다시 싸움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티라노사우루스 왕이 스스로 도서관을 불태운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그 전설은 불길을 내뿜는 용의 형상으로 변모하여, 후대 동물들의 상상과 기억 속에 전해지게 된다.



한편, 또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의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남아 있다. 앞에 언급된 왕의 글처럼 여러 공룡들이 멸종후에 자신들의 싸움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싸움 속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이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며 배운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싸워서는 안 된다고 말로 가르쳐도, 아이들은 이상할 만큼 우리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배운다.

우리가 다시 기회를 얻는다면 나는 내 자식들에게 방주를 지어 불행을 피하고, 오직 행복한 가족을 지키는 데 모든 것을 쏟으라고 가르치고 싶다.”



1) 이것이 AI (Animal Intelligence) 스토리에 반복되어 등장하는 '방주'에 관한 공룡의 기록이다. 현세의 동물들은 공룡들이 남긴 단어 “방주”의 의미를 두고 격렬히 논쟁하는데, 어떤 이들은 그것을 단순히 타고 가는 거대한 운송 도구로 해석하고, 다른 이들은 지혜를 담아내는 책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일부는 그것이 곧 지구를 상징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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