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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대 - 인류의 등장

by 스튜던트 비

세상을 지배하게 된 포유류들


공룡이 사라진 뒤, 그들이 한때 ‘털북숭이’라 불렀던 포유류가 지구의 주인이 된다. 포유류가 지배종이 된 이후에는 고생대나 중생대처럼 거대한 대멸종을 겪지는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굵직한 사건들을 한두 차례 맞이하게 된다.



송곳니 동맹

당시 포유류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존재는 오늘날 코끼리의 친척인 털북숭이 거인 맘모스와 호랑이의 친척인 검치호랑이였다. 흥미롭게도, 이 두 동물 사이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압도적으로 길고 위압적인 송곳니였다.



이 ‘송곳니 동맹’은 서로의 외모에서 묘한 친근감을 느꼈고, 그 비슷함은 곧 깊은 공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공감은 점차 하나의 공동 목표로 발전했다. 그들의 사명은 단 하나, 빙하기가 끝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시베리아에서 만난 둘은 마치 운명처럼 함께 공부하고 방법을 모색하며, 지구가 더 이상 더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서로 연구해 온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균열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우정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치명적인 소문이 퍼졌다.

“맘모스들이 깊은 구덩이에 빠져 죽었는데… 그 배후에 검치호랑이가 있다더라.”


이 소문은 두 종의 관계를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넣었고, 우정은 차츰 증오로 뒤바뀌었다.

결국 기후를 지키겠다던 서약은 산산이 부서졌으며, 서로의 결속을 상징하던 송곳니는 이제 상대를 겨누는 무기로 변했다. 그들의 갈등은 끝내 전쟁으로 번졌고, 그 전쟁은 두 종이 함께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1)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빙하기”는 신생대 제4기, 약 26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이어졌던 플라이스토세 빙하기를 가리킨다. 바로 이 시기에 맘모스와 검치호랑이가 활동했다.








호모 사피엔스 - 갈등 뒤의 숨은 배후


한편 이 시기의 역사는 한 존재에 대한 설명 없이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사피엔스, 즉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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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사실 처음부터 혼자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곁에는 언제나 거대한 수호자, 맘모스가 있었다. 맘모스는 이미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뻘인 호모 에렉투스 시절부터 인류를 지켜봐 왔으며, 호기심과 배움에 열려 있던 그들을 후배이자 수제자로 여겼다. 그리고 특히 순수한 눈을 한 그들의 아이들을 보면 한없이 마음이 약해져, 인간들의 성장을 돕겠다고 기꺼이 약속해 주었다.


인간이 불을 다루게 된 것도, 석기를 깎아 쓰게 된 것도, 맘모스의 오랜 가르침 덕분이었다. 맘모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인간들에게 힌트를 주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맘모스를 ‘거인’이라 부르며, 두려움 속에서도 깊은 존경과 친근함을 품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인간들은 세월이 흐르고 스스로의 힘이 커질수록 맘모스의 뜻과는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해 지구가 따뜻해지기를 바랬지만, 맘모스와 검치호랑이는 춥고 매서운 빙하기를 끝까지 지키려 했다. 결국 인간은 더 이상 스승의 뜻을 따를 수 없었고, 마침내 맘모스를 배신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맘모스를 끌어내리기 위해 은밀한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이전의 어떤 동물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치밀함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맘모스들의 사체에 검치호랑이의 이빨 자국을 새겨 넣고, 그들의 털을 흩뿌려 냄새까지 덧입혔다. 그렇게 해서 마치 호랑이들이 맘모스를 습격한 듯한 흔적을 남겼다.


맘모스의 사체가 발견된 충격적인 사건 이후, 맘모스와 검치호랑이는 끝내 서로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불신은 갈수록 깊어졌고, 갈등의 골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갔다. 그리고 두 종이 힘을 모아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던 모든 노력은 완전히 멈추게 된다.


물론 맘모스들이 이 속임수를 끝까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검치호랑이와의 오랜 전쟁 속에서 모두가 스러져가던 어느 틈새, 한 맘모스가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인간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너희가 시작한 일이지? 솔직히 말해도 된다. 원망하지는 않으마.”


인간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군 채, 다른 동물의 이름을 꺼냈다. 빙하기를 견디기 힘들어하던 또 다른 파충류, 메갈로니아의 소행이라고 속삭이며, 끝내 진실을 흐려버렸다.


하지만 맘모스는 더 이상 인간을 추궁하지 않았다. 끝내 그들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간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또 하나의 생명임을 이해했고, 무언가를 바로잡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결국 맘모스는 모든 진실을 시간 속에 묻어 두기로 한다.




1) 이 시기를 인간의 관점에서는 구석기 시대(Paleolithic, ‘Old Stone Age’)라 부른다. 약 25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불과 주먹도끼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열렸고, 기원전 약 1만 년, 농경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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