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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헌문학 Oct 22. 2023

그리움은 불치명


바람 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이외수의 6월 이라는 시인데요.    

      

비가오면 람들은 저마다 조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얼굴 그리고 장소 

또 몸살이 나도록 못 견디게 듣고 싶어지는 그런 추억의 음악 몇 곡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사막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기억나시죠. 신비한 여우는 그리도 사랑했던 어린 왕자에게 일러주죠.      

추억이란 우리 마음 저 깊은 데 두레박 드리워 

아무리 길어내도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의 화수분을 만듭니다. 

메마른 마음 밭에 촉촉한 빗물이 내리면 

응어리진 감정은 유연히 유동하게 하지요.

나만의 추억으로 추억 속 음악으로 비 오는 날의 그리움 병과 추억에 촉촉히 젖어보는 거... 

뭐 그런 로맨틱한 병을 앓아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지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유되지 않는 그리움이라는

만성 불치병을 견뎌서 살아가는 법일테니까요.     

그리고... 어른들이 말씀들 하셨죠. 모름지기 영육이 병을 앓고 난 뒤엔 

더 강한 생명체로 거듭나게 되는 법이라고들도 말이예요.



그런 불치병으로 폭풍 속에서 노래했습니다...


폭풍 속의 얼쑤   

'장마가 시작되던 초여름 어느 저물녘.

이 적요한 그림으로 이 몸도 스미고만 싶어라-' 

악동의 휘파람처럼 거리를 가르던 바람. 그 수상했던 녀석이 경기 일어난 빗발이 되어 신음하며 불어대는 요상한 저녁이다. 라디오와 TV는 일제히 '폭풍주의보 발령'을, '사고속출' 소식을, 현장의 허둥대는 불운을 긴박하게 타전하는 중이다. 미약한 감전에 저려오는 빈집. 이 작은 집을 진동시키던 전원스위치라곤 모조리 꺼버리자. 창 창마다의 문고리들도 죄다 걸어 잠근다. 집주인 엄마 아빠는 어디론가 먼 곳엘 가셨는지 출타 중이시고 여기 빈집은 순식간에 밀려든 칠흙태풍에 점령되었다. 얼 빠져 투항해버린 빈 집. 적막한 틈새로 새어든 불안한 평온만이 미세한 파문 속에 일렁이지. 

이 무슨 헐레벌떡 조율되지 않는 민망한 리듬의 심박이려나? 그 어디 먼데서 다가오는 요란한 사이렌 울음. 급박한 구급 엠블란스의 요 새빨간 비명은 그 누구 위태한 명줄 한 자락을 위해 저리도 숨 골 치받아 내달리고 있는 것일까. 너와 함께 '아 아 아- 목말라' 적막하게 타들어 가는 걸까. '이 집의 주인들은, 아빠, 엄마는 비바람 속에 자꾸만 귀가가 늦어지시고..... 이상하지? 왜 아직까지도, 그 누구 한 명 오지 않는 걸까? 그 무슨 까닭으로 목젖은 떨려만 오는 것일까? 실없게. 지겨운... 잡념들은 어느새 또 슬그머니 독초처럼 피어올라 천장 가득 맴을 돌고 있는데. 

이런 날엔 때론 그 모두가 길을 잃는다......'

나 또한 그 어떤 까닭으로 순간 젖은 표정 하나를 갖는다....

나는 마치 이 저녁. 아픈 아기를 태우고 칠흑어둠의 겁을, 회한뿐인 시간의 터널을 뚫고 내달리는 전시(戰時)의 피난열차라도 된 기분이다. 멀미난 전갈을 쥐고 그 어데 지도에는 없는 타국 향해 내달리는 전령사라도 된 심정이다. 

소리. 저 징그러운 소리. 저 포효를 좀 들어봐. 지금 세상은 작정하고 몰아치는 광기어린 폭풍의 열기에 휩싸였는데. 단말마의 괴성으로 호통을 치는 날이 선 회초리다발. 윙윙잉잉잉이이---소리. 바로 저. 소리. 악마의 허밍인 듯 소름이 끼쳐. 추잡한 죄목들 호되게 추궁하는 듯하다네. 오늘만큼은 사람들 오만한 외투를 벗고 작아져선 천둥치는 찰나쯤 신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해, 돌아가야 할 지붕과 기다려주는 인연에 관한 상념의 근방을 서성일 것이다. 고독, 급작스런 운명, 유예된 관계, 그리고 심판이라는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단어들을 불현듯 상기해볼지도 모른다. 그래, 오늘은 정말 이례적인 날이다. 간만에 도래한 이례적인 초속의 강풍이다. 늘상의 정물화 같은 나날. 정물화처럼 그 어떤 사건도 없이 무료하던 나의 생. 닫힌 하루. 침전된 나날. 침전된 사유. 메마른 나의 창에 오늘은, 격정의 낭만주의 아니, 다다이즘 화풍의 꿈틀대는 제목 없는 그림 한 점이 채워져 있네. 유리를 뚫고 망막서 심장으로 투영되어오는 저 나무들. 동공을 지나 좌심방 우심실 저돌적으로 처박혀 들어온 나무들은 숫제 일생일대의 시련을 맞아 견디고 있었다. 녀석들은 일제히 머릴 풀고 비명 내질러 울부짖고 있었다. 벡진스키의 그림서 빠져나왔다는 듯이 끝내는 불 질러진 정념에 홀려버린, 바람결에 몸 사르는 나무의 정령인 듯.

쫓기는 짐승 다급히 문 두드리는 몸짓으로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광풍의 시적 자기파괴. 그 바람 놈이 온 몸 부대 켜 자멸하는 窓. 그 하늘 올려다보려면, 찰 칵! 미쳐가는 세상과 귀가할 줄을 모르는 아가 부모, 인두로 지져진 하나의 난해한 이름. 희석되려는 운명에 드리운 그림자의 채도. 끄끝내는 이내 끝나버리려는 한 시절 막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저 번개로 인화되고 있었다. 그래- 그러하다면 이제 출렁이는 피곤과 낮잠을 위해. 저 장난감 실로폰으로 눈길을 던져볼 도리 밖에. 도. 레. 미. 그래, 그래 하여, 속죄하는 맘으로 눈빛으로나 두드려 보는 일곱 색깔 무지갯빛 실로폰.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마지막 여음의 끝자락에선 옛 할머님의 애수띈 자장가구음도 들려올 듯만 하다. 고지대 원주민들의 주술음조와 비스무레한. 이 천년 전 먼 나라 그리 추웠다던 그 밤의 산고를 가늠해 본다. 산고 끝의 성스런 밤과 구유 속 아기, 그 성령이 남기셨다는 마지막 계명이 공중을 맴돈다. 어쩌면 이 저녁은 그 밤처럼 못내 썩지 않은 숨겨진 미련들, 광명을 구하는 기원들, 광휘의 신성한 별을 쫓던 그 순연한 갈구와 기도들... 벼락인 듯 반짝. 몸 비추어 스스로를 드러내는 순간인 건지 모른다. 나무들 소스라쳐 소스라쳐 휘둘려 꺾일 듯 시험에 든 이 밤. 불안하고 아름다운 밤. 인간이 얼마나 유약한지 그 생명들에 고인 사랑은 또 어찌나 벅차게 겨운 희열일지를, 이 밤. 폭풍우는 설법하신다. 우리는 할당된 몫 가소로운 시간 안에 해갈되지 않는 형벌을 안고 아슬한 목숨 부지해가메 가끔은 사랑이라는 벅찬 불길의 세례를 받지. 그렇게 미망 육신들은 온순한 짐승이 되어 가슴들 부벼 체온을 나누기도 한다지. 

여기 수난당하는 빈 집을 채우는 이 저린 취기란...

어쩌면...

사랑일까?

우주의 근본 에너지. 우주를 팽창시키는 에너지의 이름은 어쩌면

어쩌면 그래, 이 같은 외로움였을까? 

이젠 그만, 미친 바람아 휘몰아처 이 그리운 심사를 담아 내달려 주. 내 벗님같은 호흡들에게. 빗물 젖은 가슴들에게로. 맨 처음 빅뱅을 일으킨 역학의 기원이란, 사랑일까? 아가야. 너의 禪한 미소는 알고 있니...? 이 밤 영문 도통 알 수 없이 휩싸이는 겨운 전율의 연유......숨 막히다. 너. 회오리쳐 오르는 광풍의 광속. 동공으로 날려 보낸 습기 한 줌으로도 기어이 씻겨지지 않던 한 모금 질긴 업. 허망토록 우습은 연들. 비밀한 세상만사. 어쩌자고. 어쩌자고... 세상은 이리도 끄끝내 미쁘고 아픈 건가요?

삼라만상의 만물님. 만물 속 그대와 호흡하리라. 

아가야. 너의 禪한 미소는 알고 있니...?

이 밤 도통 영문 알 수 없이 휩싸이는 겨운 전율.......

날카로운 비바람 소음에 묻어 길 잃은 미아처럼 울어 보고픈 감정의 연유.

네 어린 령과 미련한 이 검은 종자가, 저 휘돌리는 키 작은 버드나무와 내가 한 개 생명체인 듯 할딱이는 이 순간. 끝내 손목 놓지 않는 자를 수 없는 탯줄.

징그럽게 줘잡고 있는 우주의 거대한 기운.

또 하루치 허무한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부끄런 동력.

어쩌면... 우리 모두는 우주의 탯줄에 매달려 새로운 차원의 부활을 기다리는 태아들인지도.... 

알 수 없다. 한없이 멀어지는 은하계 티끌보다 미약한 우리가 서로의 자장을 이리 추적해보는 인력의 이름도 이 징그럽고 지겨운 불안하고 거룩한 괴물, 사랑,

사랑이란 놈일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니?

네들 이토록 가공할 고요로 앓고 있는 이유. 이다지 극으로 몸을 푸는 이유. 

-거실 시계 괘종 추가 울린다.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창을 열자. 바람 네 놈. 그저, 나와 함께 번개로 치자. 우지직. 금 가자. 나무야, 번개 맞고 타올라 죄 불지피자. 즐겁구나, 즐거워, 겨웁게 즐거워라. 사랑아. 사랑아. 사랑아. 골난 광풍아. 내 징글맞은 미쁘고 못미더운 사랑 놈아. 매장했데도 썩어 문드러지지 않는 이 숨골 끊기지 않는 징그러운, 정념아. 그럼에도 살아내자하는, 살아보겠다는 생의 열망아. 

아가야. 아프지 마렴. 우지 마라. 제발 아프지는 마, 아가야 제발, 꽃신을 신겨줄테니 우지는 말아-. 아픈 것들, 아픈 것들아. 나 같은 잡 것들아. 아프지 마렴. 이젠 그만 아픈 거... 그만하자. 

바람아. 망령을 그저 패주려마. 이 밤 그 모든 아픈 천지와 어울린다면, 판 벌여 오광대 춤을 추어나 본다면 문둥탈의 병신 춤사위를 추어나 보자. 이 녁, 오늘 이 도시의 밤을 즐거이 몽유하리라. 

창 창 창이 흔들린다. 우는 창문은 불 타고 있었다.

풍압 견디던 창입이 열릴 차례다.

허공에는 문이 하나. 열려진 문.

한 개 그림자 뒷모습이 어리운다.

그 힘 사랑의 존재.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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