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넷 딸, 쉰 일곱 엄마와의 40일 유럽여행을 결심하다
엄마랑 유럽여행을, 그것도 한 달도 아닌 40일을 가겠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말렸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넌 말이야, 아빠를 40일이나 혼자 두려고?"
라며 삐친 척 툴툴거리며 말씀하셨지만,
사실 혼자 남겨질 아빠 자신보다는 엄마의 나이와 체력, 그리고 엄마를 "모시고" 다녀야 할 딸 걱정이 더 컸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엄마와 28년을, 딸과 24년을 함께한 아빠는 두 여자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너는 파리 가면 카페에 앉아서 책도 읽고, 여유도 부리고 그러고 싶을 거 아냐. 너 엄마랑 가면 그런 거 못하는 거 알지?"
"그리고 생각을 해봐라, 엄마가 20대인 너랑 같냐? 너 어디 가고 싶어도 엄마 다리 아파서 같이 못 다녀."
"너 솔직히 말해봐. 진짜 엄마랑 같이 가고 싶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엄마한테 처음 유럽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복학하기엔 이미 늦은 애매한 3월 말에 인턴십이 끝나기도 했고,
이제 남은 마지막 학기를 마치면 졸업, 그 후에 취업까지 하고 나면 영영 장기 유럽여행은 떠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배낭 메고 유럽 곳곳을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러나 위험하다며 국내 여행조차 혼자 못 가게 하는 부모님께 혼자 유럽여행을 그것도 한 달 넘게 가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 "엄마, 나 휴학하는 김에 유럽 가려고!"
엄마: "누구랑?"
나: (당황한 듯) "어? 혼자 가려고 했는데
(머뭇거리며) 엄마, 나랑 유럽 갈래?"
이렇게 된 거다.
그 미끼를 엄마는 덥석 물어버린 것이고.
"2주도 아니고 40일이야. 당신이 얘 따라다닐 수 있겠어?"라는 아빠의 말에,
"못할 거 뭐 있어? 이제부터 운동해야지~"라고 능청스럽게 답하는 엄마를 보니 가슴이 저릿하다.
아무래도 엄마랑 가야겠다.
해외출장이 잦아 안 밟아본 대륙은 남극과 북극 밖에 없는 아빠와,
크루즈 승무원이라서 이곳저곳을 항해하다가 9개월에 한 번씩 한국 땅을 밟는 언니,
그리고 교환학생 간다, 영어캠프 아르바이트 간다, 온갖 핑계를 대며 비행기 탈 기회만 엿보는 나까지.
그 세 명 때문에 짐 정리에는 도가 텄으나 정작 본인은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엄마랑 가야겠다.
이미 유럽에 다녀왔던 한 친구에게 인턴이 끝나면 혼자 유럽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었다.
"유럽 좋지. 혼자 가도 좋긴 한데, 아쉬워.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풍경을 혼자만 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나 친구랑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같이 갈 친구도 없겠다, 남자친구는 더더욱 없겠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엄마랑 함께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