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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뉴 May 06. 2020

눈물의 몽마르뜨 언덕

엄마도 나도, 결국 울고 말았다

오늘의 시작은 더없이 완벽했다. 날씨는 좋았고, 오늘의 첫 여행지였던 로댕미술관은 사람도 많지 않아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화근이 된 것은 <칼레의 시민>과 나의 사진 욕심이었다. <칼레의 시민>을 보자마자 오두방정을 떨며 그 앞에서 엄마의 사진을 찍은 뒤, 내 사진도 찍어달라고 엄마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엄마 딴에는 열심히 찍은 사진이 내 눈에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고 사진 찍는 것을 반복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아량 넓은 신은 못난 딸에게 쓸데없는 짜증으로 남은 하루를 망치지 않도록 기회를 주기로 했으니, 바로 기막히게 좋은 날씨였다. 그깟 사진 한 장 때문에 기분을 망치기에는 날씨가 아까웠으므로, 사진은 뒤로하고 몽마르뜨 언덕에 가기로 했다. 근처의 유명한 빵집에서 따끈따끈한 빵을 사고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파리 전경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피크닉을 하자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은 기회뿐 아니라 시련도 주기 마련, 몽마르뜨 언덕까지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구글맵에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검색했더니 구글맵은 우리를 공동묘지로 데려갔던 것이다. 공동묘지 안에서 헤매고 있는 여행객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위안이 되었으나,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방황이 길어지면서 완벽한 피크닉 계획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몇십 분째 길을 헤매면서 지친 엄마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흐르더니,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찾는 와중에, 혼자 건너편 도로로 가버린 엄마를 보고 나는 2차로 짜증, 아니, 화를 내고 말았다.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 엄마를 보면서도 나는 화난 마음에 일부러 엄마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았고, 그런 나를 보며 엄마도 내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목이 타서 음료를 사려했는데 이게 웬걸, 오늘 아침에 엄마가 가방에 들어있던 현금을 다 빼놓은 바람에 수중에 현금이 하나도 없는 거다. 파리에 몇 유로 하는 음료 사면서 카드결제를 받아주는 아량 넓은 가게 주인은 없었다. 길은 못 찾겠지, 뭐 좀 마시고 싶은데 뭘 마시지는 못하지, 그때부터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짜증을 엄마에게 내기 시작했다. 시련은 신이 주신 기회라던데, 못난 나에게 시련은 시련일 뿐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몽마르뜨 언덕. 그러나 이미 마음은 상한 후였다.


우여곡절 끝에 몽마르뜨 언덕에 도착하고, 빵집에서 샀던 타르트 한 스푼을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 입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숟가락에는 침 묻은 타르트가 약간 남아있었다. 여전히 엄마에게 심통이 나있던 나는, 평소 엄마와 수저를 섞어 쓰고 빨대 하나로 음료를 나눠 마셨으면서도 "아, 다 묻혔네"라고 하지 않았어야 할 말을 굳이 내뱉었다.


그 한 마디는 몽마르뜨 언덕에 오르는 내내 엄마가 꾹꾹 눌러온 눈물샘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엄마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엄마가 뭐가 그렇게 밉길래, 너는 엄마를 그렇게 구박을 하니.


아차 싶었다.

당황했다.

여행 오고 처음 보는 엄마의 눈물이었다.


곧이어 엄마랑 좋은 추억 쌓자고 온 여행에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오히려 엄마에게 상처만 입힌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화가 뒤섞여 나도 울어버리고 말았다.

조용히 눈물을 닦아내는 엄마와, 그 옆에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딸. 이 두 사람은 즐겁게 피크닉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몽마르뜨 언덕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엄마보다도 더 서럽게 우는 나를 보며 당황한 엄마는 나를 사크레쾨르 성당 안으로 데려갔다. 어두컴컴한 성당 안에서는 남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한번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는 나는 성당 의자에 앉아 한 시간 가까이 눈물을 쏟았다. 물론 엄마도 함께.




엄마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딜 가든 주변의 음식점부터 파악해두고, 엄마를 고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길치이면서도 열심히 길을 찾느라 예민해져 있던 나.

내가 그런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당신 속상한 건 말도 못 꺼낸 채 나의 짜증을 다 받아주면서 속으로는 내내 상처를 받았던 엄마.

우리는 그동안 서로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에만 꾹꾹 눌러 담아뒀던 생각과 감정을 모두 꺼냈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눈물도 감정도 모두 쏟아낸 후, 엄마와 손을 꼭 잡고 성당 밖을 나왔다.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는 동안 놓았던 두 손을 내려가는 길에는 놓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미안함으로, 자책감으로, 후회로 뒤엉켜있었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음식점과 엄마가 좋아할 만한 편한 길을 찾으려다가 엄마가 싫어할만한 말과 행동을 해버린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탓에, 여행 온 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엄마를 울리고 마는구나. 나, 참 나쁜 딸이다. 하는 온갖 생각들로 뒤덮인 나의 마음처럼, 맑았던 파리의 하늘은 어느새 구름으로 뒤덮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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