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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뉴 May 03. 2020

엄마도 미술관을 좋아한다

20년이 넘도록 몰랐던 엄마의 취향

엄마와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나서 여행코스를 짤 때, 걱정되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에서의 미술관 여행이었다. 머나먼 프랑스까지 가서 교과서와 책에서만 보던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보고 오지 못한다면 너무나도 아쉬울 터. 그런데 한국에서는 한 번도 미술 전시회에 가본 적 없는 엄마가 과연 매일매일 미술관 1-2개 정도를 도는 여행코스를 감당하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고민이었다.


그래서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과 같은 다소 빡센(?) 미술관은 처음부터 일정에 넣지 않았다.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 떠난 곳은 바로 지베르니. 미술관은 아니지만 모네의 예술세계가 담겨있는 곳이기에 첫 미술 여행지로 선정한 곳이었다.


파리에서 지베르니까지는 시간도 꽤 걸리고 동선도 복잡해 그냥 가지 말까 했지만, 그래, 이렇게 날도 좋은데 가보자! 해서 나선 여정은 역시나 험난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역무원과 손짓 발짓 이야기를 해가며 간신히 환승을 하고, 기차역 창구에서 기차에 타서 표를 사라고 하길래 기차에 탑승한 후 검표원에게 표를 사겠다고 했더니만 2배 비싼 가격을 내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만원 넘는 돈을 추가로 내는 씁쓸한 일도 있었다. "그러게 표 어떻게 사는지 아까 옆에 있던 한국인들한테 물어보지, 엄마가 무슨 말만 하면 못하게 하냐"는 엄마의 핀잔에 삐진 것은 보너스.


화창한 날씨와 달리 꿀꿀해진 기분으로 도착한 지베르니 - 모네의 집, 정원, 그리고 마을은 너무나도 예뻤다. 그럼에도 꽁-하게 있다가, 무려 33살 차이나 나는 엄마와 나를 보고 쌍둥이 같다고 하신 한 귀여운 프랑스 할머니 덕분에 피식 웃고는 금세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모네의 집과 정원 곳곳을 구경했다. 잠시 쉬러 들어간 지베르니의 어느 한 카페에서는 모네에 빙의해 엄마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면서.


지베르니 - 모네의 집에서. 둘다 모자 쓰니까 쌍둥이 같기도 하고 :)


지베르니의 미술관 아닌 곳에서 미술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관 여행을 시작했다.


오전에는 지베르니 정원에서 본 풍경을 마음에 담고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을 감상한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그 명성만큼이나 어마어마하게 작품이 많은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유명한 작품들이 아니더라도 그냥 실내 인테리어와 천장 화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루브르였다. 모나리자도, 비너스상도, 스핑크스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냥, 아, 이게 이거구나 하는 느낌. 그 감흥 없음에 약간 실망스러운, 그런 묘한 감정만이 남아있어서 당황스러웠던 엄마와 나.


이후로도 베르사유 궁전, 오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 등 웬만한 미술관은 다 가보았으나, 어딜 가든 유명한 작품을 볼 때마다 그 작품의 예술성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유명한 작품을 보고서도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 더 놀라워했던 우리였다.


루브르에서 퐁피두까지, 계속 되었던 엄마와의 파리 미술 여행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건 엄마도 미술관을 좋아한다는 것.

다리 아프다고 힘들어하시지는 않을까, 지루해하시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보다도 더 씩씩하게 미술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작품 설명까지 꼼꼼히 살펴보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엄마를 몰라도 참 몰랐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 한편이 시큰했다.


엄마는 미술에 관심이 없어서 미술관에 안 간 것이 아니라, 그저 미술관에 갈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엄마가 빨래와 청소에 관심이 있어서 줄곧 빨래하고 청소하는 데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엄마, 이번 주말에 나랑 미술 전시회 갈래?"라고 한 번만 물어봤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그러나 친구들과 수많은 전시회를 가면서도 정작 엄마에게는 한 번도 같이 가겠냐고 물어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던 엄마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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