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어요

성장소설 읽기 | 나의 그녀

by 김패티


나의 그녀 -반올림04 이경화 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나의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녀와 사랑을 하기 위해서죠. 소년들이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가 사랑 하나뿐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열여섯 살 준희는 지금 사랑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두통에 시달리다가 몽롱한 잠에 빠져드는 느낌.

가득한 물에 푹 잠겨 있다가 갑자기 수면으로 떠오르는 느낌. 가위에 눌려 있다가 머리맡에 있는 고마운 찬물을 마시는 느낌.” (7쪽)

사랑에 달뜬 소년의 마음입니다.


나보다 20살이나 많은 나의 그녀. 나의 그녀는 바로 논술 과외 선생님입니다. 그녀는 한껏 참았던 숨을 내뱉었을 때 느끼는 해방감, 타는 듯한 갈증과 두려움을 풀어주는 존재입니다. 준희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른은 권위적이라고 준희는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책임은 져주지 않으면서 권위만 세우는 존재. 과외 선생님은 다른 어른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준희에게 건강을 묻는가 하면 쓸쓸함과 심심함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뿐만 아니라 학생 모두에게 공평하기까지 합니다. 그닥 주목받지 못하는 학생인 자신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선생님의 애정이라고 준희는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권위와 공평에 누이와 연인과 여신의 모습을 보는 준희의 사랑이 어떻게 흘러갈까요.



아무도 몰라요, 준희 마음을



준희는 습관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읽는데요, 판타지 속 주인공보다 주인공의 후견인이 되어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는 인물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들처럼 보살펴주고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고 가르침까지 준다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생각합니다. 준희는 현실에는 없는 부모상을 판타지 속 후견인의 모습에서 찾는 것 같아요.


열 살에 돌아가신 엄마나 술에 절어 사는 아빠는 이유가 어떻든 무책임한 어른이라고 준희는 생각해요. 안타까운 건 ‘아빠가 시시해질 만큼’ 아들은 컸는데, 아빠는 준희의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해줄 힘이나 의지도 없습니다. 기도로 삶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게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할머니도, 준희의 장래를 위해 유학길에 오르는 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고모도 준희 마음을 이해하려는 어른이 아닙니다.

준희는 늘 외롭습니다. 외로울수록 선생님을 그리는 마음은 커집니다. 생각이 어디에 있는 준희의 삶은 여느 중학생과 다를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성적이 좋지 않은 중학교 3학년의 생활. 친구에게 시달리기도 하고, 친구의 관심을 받기도 하지만 준희는 그럴수록 ‘철저하게 혼자일 수 있는 곳,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는 곳, 나만이 주인공이고 나만이 가장 빛나는 곳’을 찾습니다. 그렇게 도망치듯 숨어든 곳이 판타지의 세계입니다.


“그곳은 바로 상상의 세계뿐이다.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 나는 당당하고 용감하고 믿음직스럽다. 현실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커튼을 쳐주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것도 ‘상상 속의 나’이다.”(57쪽)


준희는 현실에서 느끼는 결핍을 판타지 공간에서 채우고자 합니다.



준희의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준희의 ‘나의 그녀’, 논술 과외 선생님, 이희진 선생님은 준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준희의 마음을 선생님도 압니다. 준희가 데이트 하자는 말에도 특별한 반응 없이 허락합니다. 선생님은 준희가 하는 어떤 말에도 화를 내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준희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굳이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고 할 수 있으면 하고 안 되면 못한다고 담담히 말합니다.


준희가 고대했던 선생님과의 데이트.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커피 마시고 나니 할 일이 없습니다. 수업할 때와 달리 할 말이 없다는 준희에게 선생님은 “너하고 나는 학생, 선생 사이니까. 그게 가장 어울려”라고 대답합니다. 준희는 선생님과 커플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선생님은 준희에게 데이트 기념으로 <데미안>을 주는 것처럼 둘은 계속 어긋납니다.


선생님이 준 <데미안>은 판타지 소설만 읽던 준희가 새로운 책을 읽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선생님은 데미안의 아프락삭스는 판타지에서처럼 허황된 신이 아니라 발은 땅에 붙이고 있되 하늘 높이 비상을 하는 신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데이트는 <데미안>을 다 읽는 날 하기로 했는데, 선생님 대신 같은 반 친구 정아와 하게 됩니다.

“너는 내가 좋은가 보다. 고마운 일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되면 나는 네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날 거야. (---) 너무나 소중한 네 인생. 네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바로 네 마음이야.” (161쪽)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어린 제자에게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이희진 선생님은 준희에게 필요하고, 준희가 원하는 사랑이 이성의 친구가 아니라 엄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요.


준희는 이제 사랑을 잃었을까요? 선생님의 사랑은 잃었을지 모르지만 선생님과 친구는 얻은 것 같아요. 짜장면 배달을 하면서 신나게 사는 장준희도 있고요.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았던 준희의 만화를 잘 그리는 재능을 인정해준 정아도 있습니다.


준희가‘나의 그녀’를 마음속에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보여준 어른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기억의 힘으로 건강한 사랑을 하기를 바랍니다. 연인으로서 그녀의 존재가 부재한 엄마의 모습이었음을 깨닫고 엄마한테 받은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나 무엇에도 쉽게 흔들리고 불안정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아이들, 안정도 위로도 느끼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준희처럼 또 한 세계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생각해 보기>


1. 준희는 현실의 세계보다 판타지 세계에 머물기를 원해요. 준희가 판타지 세계에 머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 엄마와 연인은 어떻게 다른가요?



3.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는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고 바둥거렸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로 탄생하기를 원한다면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준희가 파괴해야 하는 세계는 무엇인가요?


3-1. 나도 새로 탄생하기 위해서 파괴해야 할 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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