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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l 24. 2019

[산책 22~24일]
멍 때림은 영혼의 샤워

하루 20분 나는 한다.


   足 발 족

   발 (그냥) 발

   探 찾을 탐

   靜 고요할 정

   記 기록할 기.


   이름하여 ‘족발탐정기’.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의 연재 글입니다.







2019. 7. 22.(월)   흐림



   저마다가 산책하기에 매력적인 시간이지만, 특히나 아침의 여유로운 산책이 좋다.



   AM 6:30. 산책길을 나섰다. 아침 산책을 즐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청취의 ‘고요함’‘맑은 공기’를 전적으로 사랑한다.



   아침에 맞는 고요함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돈다. 하루를 시작하려는 부산스러움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분명 특유의 팽팽한 분위기가 살짝 감지된다. 시원한 생수에 작은 레몬 한 조각을 짜낸 풍미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적함 역시 함께 녹아있다. 믿으실지 모르겠으나 나는 본래 북적이고 시끄러운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평화로우면서도 적당히 번뜩이는 아침의 고요함을 즐긴다.



   또한 아침의 공기는 어느 시간보다 맑다. 사람과 자동차가 이산화탄소를 내뿜기 전, 산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기를 들이마시면 폐 속에 한껏 청량감이 깃든다. 채 마르지 않은 아침의 촉촉한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고, 뱉을 때 심장을 때리는 상큼한 타격감을 즐긴다. 내 날숨에서 배출되는 CO2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는 것 같아, 만인에게 조금 죄송할 따름이지만(우리의 지구와 북극곰에게도).



   가끔 내가 아침형 인간이라 다행이라 느낀다.



   그나마 정상적인 상태에서 써서 그런지, 드디어 덜 이상한 일기가 된 것 같아 새삼 뿌듯하다. 그런데 영 심심한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태생적으로 아침형 인간인데, 내 글을 읽으니 오전부터 졸음이 몰려올 지경이다. 


   방심했다가 별안간 이상한 일기가 되어버렸다.



   스물두 번째 날이다.





2019. 7. 23.(화)   또 흐림



   PM 11:40. 어제는 그토록 아침 산책에 대한 예찬을 늘어놔 놓고서, 막상 오늘은 늦은 시각에 산책을 했다. 밤 산책도 좋아한다. 나는 이토록 말 바꾸는 걸 일삼는 조변석개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밤 산책의 묘미는 아무래도 음습한 고요함이 아닐까. 아침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어제 일기에도 썼듯, 아침의 고요함에는 정갈한 긴장감이 있다. 하지만 밤의 고요함에는 한껏 풀어지고 곤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밤공기 속에, 그런 연기 같은 감정이 담겨 피어오른다.



   그리고 어둑한 밤에는 그것 만의 으슥함과 은밀함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히 이상하지만, 도둑이 밤 시간을 노리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밤의 매력적인 청취에 중독되어 있을지도. 나와 같은 고독한 어둠의 사나이는 그런 으슥함과 은밀함에 익숙하다. 문제는 아침형 인간이라 이른 밤부터 잠이 몰려온다는 점이지만.



   선선한 밤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쉽게도 달은 찾을 수 없었다. 하늘의 색은 마냥 까맣지 않다. 뭐랄까, 썰물 때 볼 수 있는 갯벌 색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시려나. 지상에서 뿜는 인공의 빛 때문에 이런 색채를 띄는 것일까, 호기심이 생긴다. 궁금하신 분들은 기회가 있다면 평안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시길.



   스물세 번째 날이다.



   역시나 재미없는 일기가 되어버렸다. 이 일기 덕분에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 글이 무적의 수면제가 될 수 있겠다 싶다.





2019. 7. 24.(수)  비



   AM 6:50. 다시 아침 산책으로 돌아왔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이슬’이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17도의 청량한 ‘참이슬 후레시’ 때문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굳게 믿으려 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유난히 멍 때릴 때가 많다. 시시각각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가지만, 그 상념의 틈새를 비집고 ‘멍’이란 녀석이 부지불식간에 들어온다. 그래서 무념무상한 채로 걷게 되는 것이다. 내가 걷는 것인지, 멍이 걷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호접지몽을 말했던 장자만이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멍 때림.



   그것은 내게 잡생각을 게워내는 시간이다. 일종의 신비로운 의식이다. 그렇다고 ‘어랏, 멍 때리기 10분 전이네.’ 혹은 ‘어이쿠, 이제 슬슬 멍을 때릴 준비를 해야겠군.’ 하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시점에 불현듯 나를 찾아온다. 신기하게도 이 녀석은 왔을 때는 모르는데, 막상 정신이 번뜩 들 때면 녀석이 이미 다녀갔음을 알아챈다. 그러고 나면 메케했던 영혼이 깨끗하게 맑아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제멋대로 ‘멍 때림’을 ‘영혼의 샤워’라 부르기로 했다.

   산책은 멍 때리기에 최적의 행위다.



   아, 오늘만큼은 잠시 고집을 꺾고 꽃뜰 작가님의 간절한 염원대로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그런데 비에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스물네 번째 날이다.



   비로소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족발탐정기'에 부합하는 평온한 글을 쓴 것 같다. 그런데 다시 한번 느끼지만, 역시나 심심한 글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난감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에는 몇몇의 작가님들께서 스스로에게 건 특별한 약속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 )

Illustrated by 방울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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