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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l 21. 2019

[산책19~21]인생은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

하루 20분 나는 한다.


   足 발 족

   발 (그냥) 발

   探 찾을 탐

   靜 고요할 정

   記 기록할 기.


   이름하여 ‘족발탐정기’.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의 연재 글입니다.







2019. 7. 19.(금)   태풍



   부산에는 이미 태풍이 상륙했다.

   그 말인즉슨, 오늘 나는 ‘다나스’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태풍을 뚫고 기어이 산책을 했다는 말이다.



   PM 10:20.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채 길을 나서려 했다. 진정한 산책러는 이런 태풍쯤에도 혼자 고독히 걸어야 한다. 하지만 바람에 날아갈지도 모르는 유약한 남편이 걱정됐는지, 에스코트를 명목으로 아내도 따라 나왔다.



   고독한 산책은 이미 물 건너갔다. 허나 예상치 못한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우리는 방금, 영화 ‘알라딘’을 보고 왔다는 점이다. 그 흥겨운 음악과 노래, 그리고 화려한 비트와 퍼포먼스에 이미 정신줄을 반쯤 놓은 상황이었다.



   상상하면 조금 당황스러우시겠지만,


   태풍으로 비바람이 부는데,

   우산을 쓴 젊은 남녀 한 쌍이,

   어두컴컴하고 적막한 밤길을,

   알라딘 OST를 들은 채,

   (막)까지 추며,

   걸었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던 산책이었다.

   꼴사납게 우산도 몇 번 뒤집혔다.



   열아홉 번째 날이다.



* 전혀 예상치 못 했는데, 산책 중 아내가 대뜸 이런 말을 날렸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비비안 그린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었다. 멋진 말이다.





2019. 7. 20.(토)   완전 태풍



     고무라면전(傳)



   라면은 논골 출신이다. 논골의 라면 가문은 본래 명성이 자자한 알아주는 양반가였으나, 가세가 기울어진 지 오래였다. 개구진 어린 라면은 골목골목을 제집마냥 쏘다녔고, 좀 자라서는 마음 맞는 벗과 칼싸움을 하고 홀로 한적한 산책을 즐겼다. 그러나 놀이가 마냥 즐거울 수 없었다. 거리에 나뒹구는 민초들의 삶이란 그야말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손객들은 논골에 당도하면 인심이 후한 라면의 집에 묵었다. 그곳은 나그네들의 사랑방 같은 장소로, 어지러운 시국에 관한 흉흉한 얘기가 오갔다. 걔 중에는 가끔 얼굴을 비추는 비취색 옥팔찌를 한 신비로운 사내 하나가 있었다. 그는 어리지만 당돌한 라면에게 선물이라며, 고무총 하나를 건넸다. 호기심 그득한 초롱한 눈으로 이를 받자마자, 라면은 운명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였다 한다.



   라면의 소문은 날로 퍼졌다. 그의 백발백중 고무총은 사대문 안 백성들에게는 이미 전설로 회자되고 있었다. 그의 고무총 무예로 말할 것 같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손바닥만 한 짱돌을 장전하고, 날아가는 새 서너 마리쯤은 돌 하나로 맞추는 것은 기본, 심지어 선량한 농민의 밭을 휘젓는 사나운 멧돼지도 고무총과 돌 하나로 황천길에 보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리 불리게 되었다.



   高(높을 고)

   武(굳셀 무)

   라

   


고  무  라  면



   라면에게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다. 장원급제. 암행어사가 되어 전국을 떠돌며 탐관오리를 색출하고 백성의 삶을 회복시키는 것. 허리춤에 찬 고무총은 그의 마패와 함께 탐관오리의 오금을 저리게 할 것이다. 그는 필시 그렇게 믿었음이 분명하다.



   갈고닦은 그의 문무는 그야말로 낭중지추였다. 이미 기울어진 양반가 자제인 라면에게는 아무런 연줄도 없었으나 매관매직과 부정부패를 뚫고, 단번에 영조대왕의 마음을 빼앗아 암행어사가 되었다. 마패를 받아 들던 날, 그토록 그리던 꿈을 이룬 그는 희망에 부풀었다. 수탈당하는 백성들의 고초를 해결하자.



   중매쟁이가 줄을 섰다. 김 대감의 처자는 그 미모가 경국지색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 대감의 처자는 지혜가 조선에서 으뜸이라 하였다. 허나, 라면은 이 모든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연모해왔던 연상의 낭자가 있었으므로.



   그러나 지금 세상은 난세의 영웅을 받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했다. 이 부패한 조정 아래에서 ‘암행어사 출두야’는 한낮 작은 소동과 다름없었다. 포박을 받은 탐관오리는 어느새 유유히 옥에서 빠져나왔고, 그의 음흉한 웃음을 본 라면은 이 땅에 희망이 없음을 알아챘다. 이 썩어빠진 조정에서 어떤 벼슬아치도 별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마패를 내려놓기로 했다. 영조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그에게 청사포를 하사하였지만, 라면은 이것이 자신이 받지 말아야 할 물건임을 알았고, 미련 없이 그 자리에 두고 길을 떠났다.



   넓은 삿갓과 작은 물통, 그리고 고무총만이 그와 함께했다.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며, 부패한 관리를 혼내주는,

   산책을 즐기는 바람 같은 정의의 사도.



   그 후로 고독한 방랑자 고무라면의 얼굴을 본 이는 없다. 다만 가난한 백성들의 집 앞에는 작은 엽전 주머니와 그의 이름을 딴 ‘고무라면’ 한 봉지만이 놓여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무라면전(傳) 끝.




   오늘은 산책을 못 했다.

   태풍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이 매우 크다.

   그래서 망상을 한 번 해봤다.

   부디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폭풍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다.   


   스무 번째 날이다.





2019. 7. 21.(일)  비 조금, 흐림, 태풍은 소멸



   PM 6:15. 이른 저녁을 먹고 아내와 산책을 떠났다. 오늘도 폭풍우가 몰아칠 줄 알고 만발의 준비를 했으나 다행히 날이 갰다. 빗속에서 화려한 스텝을 자랑하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는데, 조금은 아쉽다(기대하지 마셔요. 저 춤 못 춥니다).



   사진을 찍으려 쪼그린 자세로 꽃에다 핸드폰 카메라를 대는 순간, 옆에 있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남성 호르몬이 바닥난, 갱년기 남성 같다, 야.”



   내가 제우스 같은 신적 존재라면, 아내 자리에만 비를 퍼부어 춤추게 만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스물한 번째 날이다.



   그나저나 태풍은 소멸했지만, 부산은 큰 피해를 입었다 한다. 부디 얼룩진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라볼 뿐이다.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에는 몇몇의 작가님들께서 스스로에게 건 특별한 약속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 )

Illustrated by 방울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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